도서의 개요
이 페이지를 열어 준 당신에게 우선 고맙습니다. 저널리즘을 내건 이 책이 당신에게 닿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많은 이가 저널리즘을 폄하하고, 특히 레거시 미디어를 외면하는 요즘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사람들은 갈수록 뉴스를 믿지 않습니다. 뉴스를 만드는 기자는 조롱받기 일쑤이지요.
권력 놀음을 했던 흑역사가 있었으니, 언론의 침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면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언론이 왜소해지는 현실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전면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을 테니까요. 이미 우리 사회에 건전한 토론이 사라져 가고 있고, 민주주의도 힘을 잃어 갑니다. 이대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해 보면 끔찍합니다. 모두가 정의를 얘기하지만, 종국엔 그 모두가 정의롭지 않게 되는 세상 속에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생각을 하면 참담합니다.
또 ‘사상 초유’의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2024년과 2025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다 보면 다시 언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정상이 이어질 때는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려내기 위해서는 합리적 판단 기준이 필요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언론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이 책을 손에 쥔 이유도 언론에 대한 버릴 수 없는, 미련 같은 애정이 있는 까닭일 겁니다.
이제 ‘언론이 더 잘 하겠다’는 다짐만 있으면 될까요? 언론에 대한 규탄과 이에 따른 성찰만으로는 미사여구로 치장된 장밋빛 청사진은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낡고 금이 간 그릇을 올바로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의 하나는 이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언론을 탓하지만 의외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언론, 기자의 생리를 알지 못하더군요. 그 현실을 모르고 그 안의 고민을 모르니 대뜸 손가락질부터 합니다. 그러나 손쉬운 욕지거리만으로는 문제를 푸는 첫 단추도 꿸 수 없습니다.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지적으로는 변화를 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잘 알게 되면 그때에서야 비로소 분명한 비판의 지점이 보일 것입니다. 알게 되면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습니다.
언론과 분리될 수 없는 모두를 위한 언론 자화상
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자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라 봤습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기자라는 명함을 갖고 살아온 20여 년의 경험을 풀어내 봅니다. 그리 훌륭하지도 않고 혁혁한 성과와도 거리가 먼 저의 담백한 고백을 녹여, 언론계에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고민과 과제 등을 솔직히 적어 보았습니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언론 내부를 여실하고도 넉넉히 반영하려 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동료 기자들을 향한 제안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올바른 당위를 바로 세우고, 위기를 벗어날 돌파구를 함께 찾아보자는 요청입니다. 대중의 외면과 수익성 하락, 기술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각자도생하기보다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언론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책임은 우리 스스로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에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책은 언론과 관계하는 업무 종사자들, 그리고 언론 지망생들을 위한 길라잡이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염두에 두고, 기자라는 직업인과 언론 현장을 가능한 한 생생히 묘사하려 노력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언론에 친숙함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제가 목표한 바는 거의 달성하는 셈입니다.
이 모두를 위해 취재와 보도의 원칙뿐만 아니라, 진짜와 가짜, 사실과 진실을 가리는 작업의 난해함, 주관적 인지 편향과 이로 인한 갈등, 미디어 및 기술의 환경 변화, 그리고 언론의 수익 모델 등을 두루 짚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독자, 기자, 지망생 등 언론과 떨어져 살 수 없는 모든 이들을 향한 언론의 자화상입니다. 이를 보고 기자와 언론을 이해해 주시고 따끔히 지적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가운데 다시 기대와 희망이 생겨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네요.
책은 앞선 현자(賢者)들의 다양한 글들을 종종 인용했습니다. 제 생각의 깊이가 도저히 그들을 따를 수 없는 탓입니다. 제가 탄복해 마지않던 그들의 지혜를, 독자 여러분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언론 일반에 관한 글임에도 제 성장 과정과 제가 속한 언론사에 대한 이야기로 글문을 열겠습니다. 저널리즘을 두고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는데, 제가 가진 시각이 그 연원부터 더 잘 이해되기를 바라는 취지입니다.
애정 담은 이해, ‘강의실 밖’ 언론학개론의 시작
졸저가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과 격려가 있었습니다. CBS, 그리고 CBS M&C의 선후배들은 질책과 응원을 통해,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통해 저를 기자로 길러 주었습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 또 다양한 출입처에서 함께 울고 웃던 동료 기자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덕분에 아직까지 외롭지 않게 언론계 안에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저널리즘이라는 진부한 주제임에도 저술을 지원해 준 ‘방일영문화재단’, 그리고 출판의 기회를 허락해 준 ‘광문각출판사’에도 각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배려에 힘입어 머릿속에서 막연히 품고 있던 생각들을 문자로 정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누가 되지 않게 글을 써보려 했지만, 재단과 출판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아 송구한 마음입니다.
부족함이 역력한 책이지만 선뜻 추천의 글을 써 주신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님, 배진아 한국언론학회장님, 우병원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장님께 깊이 머리를 숙입니다. 보내 주신 기대에 부합하도록 더 나은 저널리즘을 만드는 길에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 삶의 이유인 가족들에게는 내내 미안할 뿐입니다. 기자로 살아오면서 늘 예측하기 어려운 일상을 공유케 해 부담을 줬고, 사회부장으로 있으면서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는 휴일까지도 가족들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욕심을 부렸던 것, 그나마 개중 몇몇은 이뤄낼 수 있었던 그 뒤에는 가족들의 뒷받침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더 많은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독자, 그리고 뉴스 미디어의 독자 여러분들에게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저널리즘의 토대는 여러분들이며, 독자 없이 언론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독자 여러분들에게 더 성실히 다가가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음에 반성하고, 그럼에도 아직 기대를 접지 않은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영화 〈건축학개론〉 속에서 건축학개론을 강의하는 교수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게 바로 건축학개론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널리즘/리얼리즘》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 언론학개론을 지향합니다. 언론과 함께해 온 여러분의 애정 담긴 이해를 바탕으로, 강의실 밖 언론학개론을 이제 본격적으로 펼쳐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