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엿보기]
김주경 시인의 시집 『난각번호 1번』은 현상에 그치지 않는 연상 작용으로 세계의 본질을 탐사한다. 모든 현상을 번역한다는 마음으로 시를 쓰면서 잘 번역된 세계를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다. 이때의 방법적 실행 중에서 탁월한 연상 작용이 단연 김주경 시인의 시를 남다른 반열에 올려놓게 한다. 형식에 구애받는 시조이면서도 내용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요인도 이처럼 활달한 연상 작용 덕분이다. 이 세계의 어떠함을 번역한 그의 언어가 현상에 그치지 않고 심미성을 확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주경 시인은 주로 생활인으로서의 감정과 감각을 바탕으로 시를 쓰면서도 세속사에 매이지 않는 시적 행보를 보인다.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그의 시를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시 쓰기 수행과 관련한 것, 다른 하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경우, 세 번째는 닭이라는 조류를 통하여 세계관을 표명하는 경우다. 그는 살아가는 일과 시 쓰는 일의 가치를 등가로 알고 있으며 이 점에 고무된 시인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말했듯이, 문학은 순수한 사람에게가 아니라면 적어도 이것에 알맞은 사람에게 맡겨진다. 김주경의 시편 중 상당수에서 한 편의 시 텍스트를 제작하는 자의 자의식이 드러나는 건 그가 순수한 사람이거나 시 쓰기에 알맞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혈연 중심의 가족 이야기, 어린아이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 젊은 층의 일자리 문제, 소유욕 등 삶의 치열성을 녹여낸 작품이 주종을 이룬다.
시인은 자기 자신이 아닌 존재로 간주되기를 바라면서도 결국 자기 자신인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가 시를 읽을 때 마주하는 주체는 시인이면서 시인이 아니다. 시인은 언제나 자기 내면의 타자와 살면서 양자 간 거리 조정을 통하여 어떤 말을 한다. 이 시집에는 시 텍스트 생산자의 발화일 법한 표현들, 예컨대 자서전·이력서·일기장·첨삭 등의 기표가 자주 등장한다. 시인의 세계관과 연접하는 이 문제는 이후에도 문체·주석 등의 글쓰기 기호로 하나의 표상을 만들면서 한층 깊이를 더하고 있다.
별을 본다는 건 하늘을 본다는 것
하늘을 본다는 건 고개를 들었다는 것
잘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바닥만 섬겼을까
직립을 배우지 못해 생은 자꾸 흔들리고
처세술도 모른 채 곧추세운 두 개의 뿔
맨발로 걸어온 문장만이
첨삭 없는
자서였다
- 「민달팽이」 전문
첨삭을 거치지 않은 시인의 첫말을 읽는 듯하다. 삶의 조건이 바닥인 자에게 불가능한 것이 하늘 바라보기인 점을 시사한다. 여기에 더해 시적 주체가 처세술을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이것이 무학無學에 대한 회한만은 결코 아닌 듯하다. 그가 반드시 배워야 할 것으로는 알지 않았던 것이 처세술임을 고백하는 측면이 있다. 직립의 불가능성을 선천적인 것으로 돌리지 않고 그러한 자세를 배우지 못한 것으로 아는 주체는 필경 민달팽이 같은 자라 해야 한다. 3차원의 세계가 있었음에도 2차원의 세계에 엎드려 있었다는 말은, 3차원 세계로의 진입에 배움이 필연임에도 이것이 자신과 먼일이었음을 뜻한다. 그만큼 그는 민달팽이처럼 맨발로 걸어 지금에 이른 시인이다. 이 같은 ‘자서’ 쓰기에 배움도 첨삭도 없었다는 말이 진정성 있게 들리는 것은 그런 이유다.
- 김효숙(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