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 타임 루프 × 미스터리
풋내기 의사와 퉁명스러운 소녀
의사라는 직업에 관해 사명감을 짊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는 되살아난다』의 주인공, 시바는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입버릇처럼 “의사는 참 뭐 같은 직업이야.”라고 말하면서 “퇴직금으로 10억만 받고 관두고 싶다.”고 투덜거리는 풋내기 의사. 그런 그가 담당하는 환자는 난치병에 걸린 소녀, 미나토 하루카다.
늘 인상을 찌푸린 채 짜증스럽다는 듯이 굴면서 톡톡 쏘는 말투로 일갈하기 일쑤인 하루카 때문에 시바는 매일 아침 병실에 갈 때마다 속이 쓰리다. 자신에게 ‘돌팔이’라는 멸칭을 붙이고 퉁명스레 구는 환자를 어르고 달래는 게 지긋지긋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간호사로부터 하루카가 사라졌다는 연락이 온다. 또냐, 하고 한숨 쉬며 하루카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시바는 마침내 하루카를 찾아낸다. 하루카는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저기, 돌팔이. 의사란 직업은 병을 고치니까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는 거지? 존경할 만한 분들이니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거잖아. 그렇다면…….”
바람이 불며 하루카의 긴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내가 만난 의사 중에서 선생님은 단 한 명도 없었어. 안 그래, 돌팔이?” _본문 속에서
그제야 시바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루카가 홀로 고통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난간에서 내려오도록 상냥하게 달래는 대신, 신랄한 말투로 대꾸한다. 선생님이라 불릴 자격이 없는 의사에 불과하겠지만, 자신은 어떻게든 너를 구할 것이라고. 여기에서 뛰어내리더라도 이곳은 전문적인 도구가 갖춰져 있는 의료 센터이므로 너는 어떻게든 살아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시바는 하루카의 위험한 시도를 막아낸다. 그러고는 비로소 하루카라는 소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믿을 수 있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향해 한 걸음 내디딘 것이다.
같은 날짜, 같은 시간, 같은 수술대
끝없이 반복되는 타임 루프 속에서
수술 전날, 시바는 하루카의 끈질긴 부탁에 못 이겨 병원 근처의 신사로 향한다. 그곳은 하루카가 유난히 좋아하는 장소다. 병원에서는 늘 환자로 지내야 하지만 여기서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하루카의 말. 적막이 흐르던 가운데 하루카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자신을 살리겠노라 약속하라고. 시바는 하루카의 목소리에서 희미하게 묻어난 긴장과 불안, 공포를 읽어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연수 기간이 끝나면 이 일을 때려치우겠다며 투덜대던 풋내기 의사가 처음으로 사명감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하루카의 수술날이 다가온다. 명의인 칸자키가 집도하는 수술인 데다가 하루카의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으므로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나야만 했다. 하지만 수술은 실패하고, 그와 함께 이상한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이명과 현기증이 그를 덮친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신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존재는 ‘살아 있는’ 하루카다.
만약 운명의 장난으로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거라면. 아직 하루카가 살아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하루카를 구할 것이다. _본문 속에서
그리하여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외롭고 지독한 싸움이 시작된다. 수십 번, 수백 번을 거듭해도 죽어버리는 하루카. 제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운 루프의 감옥 속에서 시바는 조금씩 ‘진정한 의사’의 모습을 갖춰간다. 아득한 시간 속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앞날을 향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마냥 비관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자세
그래도 우리는- 되살아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의학적 성공과 실패를 다루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끝없는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려는 의지, 그리고 이를 통해 마침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게다가 “치명적으로 이상한” 지점을 발견하고 추적하는 장면에서 장르 소설의 문법도 놓치지 않는다.
나는 영웅도 신도 아니다.
보잘것없는 수련의일 뿐이다. (…) 그런 어디에나 있는 한심한 의사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래도 미나토 하루카를 살릴 것이다.
오직 그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_본문 속에서
소설은 의료계의 민낯과 불가해한 비극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안에 희미하지만 확실한 희망을 심어 둔다. 설령 실패가 계속될지라도, 설령 절망 속에 놓일지라도,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비관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자세가 결국 우리를 ‘되살아나게’ 한다. 막막한 세상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 우리에게 『그래도 그는 되살아난다』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