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웃음과 순도 높은 눈물이 번져오는
천국에서 보내온 사랑의 편지
『우리가 사랑한 천국』
충청도의 작은 마을 미봉리를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이 소설은, 인생의 페이지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스럽고 따듯한 시절로 우리를 안내한다.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의 아날로그적 감수성은 깊은 호흡과 밀도 높은 서사로 그려져 가슴 뭉클한 추억을 소환한다. 천국에서 보내온 사랑의 편지처럼 우리가 잊고 지낸 삶의 소중함을 되살려주고 지난날의 향기 가득한 감동을 전달한다.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때의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야
『우리가 사랑한 천국』을 만나는 순간 당신은 눈동자에 남은 순수를 마주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빛이 돌고 생기 가득한 과거의 당신을 오늘의 시간 안에서 대면하게 한다. 그리움은 추억이어서 아름다웠던 게 아니라, 당신이었기에 아름다웠음을 기억하게 한다. 그악한 이야기가 난무하는 시대에 이 소설이 선사하는 충만한 위안은 오염되지 않은 투명함과 순수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분초사회에서 지치고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혼탁한 마음의 뜨물을 가라앉히고 오롯이 떠오르는 자기 안의 동심을 발견하게 한다.
가장 작고 여린 존재를 통해
사랑의 단단한 중심을 보여주는 소설
버려지고 잊힌 존재들을 소중히 껴안아 삶의 가장자리에 뿌리내리게 한 시인이자 작가인 이윤학의 수채화 같은 문장은, 한 편의 장편 서정시로 우리의 가슴을 물들여주며 일상의 언어로 비일상의 체험을 경험하게 한다. 무엇 하나 온전히 꽃 피우기 어려웠던 시절 그 척박한 폐허의 군락지에도,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에 기대어 삶을 피워낸 온기 가득한 이야기를 읽노라면 우리가 손안에서 비벼온 오이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한 천국』은 우리의 천국이 먼 곳이 아닌 바로 우리가 사랑한 시간에 여전히 꽃 피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어른의 눈에는 그저 미친 여자였던 똥산이가 아이의 눈엔 천국의 비밀로 다가왔던 것처럼. 진실은 의외로 하찮고 평범해서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자에게만 감춰진 비밀의 통로를 보여준다. ‘나는 졸망제비꽃이 피는 여기도 천국이라고 믿어볼 거야.’ 소설 속 유란이의 애잔한 목소리가 웃음을 잊고 산 우리의 마음속에 물방울을 떨어뜨려 끊임없이 보조개 원을 퍼뜨린다.
벼꽃이 피어*
벼꽃이 피었다 지는 시간
두 시간
수정아, 너였구나
파노라마 선루프를 열어 놓고
의자를 제끼고 눕는 태양보다
먼 하늘들
다랭이논 피를 뽑던 내 애비도
금광쟁이 네 애비도
눈을 비벼 봐도
물에 뜬 벼꽃들
이윤학 시집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 (간드레, 2021) P69.
내 유년의 기억 속에도 있다. 풍우가 크게 인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날따라 아버지 표정은 더없이 굳어있었다. 아버지는 다랭이논 논둑에 쭈그려 앉아 벼 이삭을 헤치며 “올해 농사는 허사겠구먼” 하는 장탄식을 했었다. 간밤의 풍우가 벼꽃을 떨어 놓고 씻어내린 것이다. 그때 나도 아버지 곁에 쭈그리고 앉아 논물에 손을 담가 허옇게 뜬 벼꽃을 ‘보고’ 있었다. 마치 논물에 뜬 흰 벌레나 잡으려는 양 두 손을 모아 작은 손그릇을 만들어 흰 벼꽃을 손안에 넣곤 했었다. 그때 나는 벼에도 하얀 벼꽃이 핀다는 사실과 함께 “물에 뜬 벼꽃들”은 “눈을 비벼 봐”야만 겨우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몇 년 후, 농업 시간에 안 사실이지만 벼꽃은 곤충들이 가루받이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분受粉을 하는 제꽃받이 작물이란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벼꽃이 피었다 지는” 그 짧은 “두 시간” 안에만 “수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시인의 “수정아, 너였구나” 라는 외침은 다름 아닌 생명이 잉태하는 순간을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황홀을 감각화한 표현이리라. 그런데 사실 시인이 어떤 사물을 ‘잘 본다’는 것은 그 사물의 생명의 이치를 ‘잘 본다’는 것과는 좀 다르다. 사물의 생성의 이치 그 자체에 더 황홀해하는 사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 주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개는 사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오차 없는 정량화의 유혹에 시달린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과학자들이 그렇다. 이에 비해 시인의 ‘봄’은 우리를 사로잡는 사물들 그 자체, 그리고 그 사물들과 다른 사람과의 이치보다는 그 “수정”을 ‘봄’과 동시에 그 “수정”을 있게 한 “먼 하늘들”의 숭고를 ‘눈을 비비며’ 바라보는 자이다. ‘보는’ 것에 너무 황홀해서 ‘봄’의 결과를 정량화하는 데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자들이 바로 시인인 점을 보면, 시인은 성직자와는 비슷하고 과학자와는 거리가 멀다.
-김찬기(소설가, 한경대 교수)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기억의 저편을 들여다본 느낌입니다. 이젠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그 시절이, 그 사람이, 다시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곁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고 하나하나 이름을 나열해 적어봅니다. 한참을 잊고 산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해서『우리가 사랑한 천국』의 비밀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정미수(우리가 사랑한 천국 독자 평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