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300년 전 클래식 음악에 현대인의 심장이 녹아내릴까?
처음 들었던 클래식 음악을 기억하는가? 아마도 〈반짝반짝 작은 별〉 〈엘리제를 위하여〉 〈터키행진곡〉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쉽고 귀에 쏙쏙 박히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 한없이 우아하거나 사랑스럽거나 신나는 그 음악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고사리손으로 열심히 건반을 누르던 유년의 추억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잠깐. 그 곡들은 왜 그토록 아름다울까? 무려 200년 전, 300년 전에 만들어진 그 음악들이 현대인인 우리 귀에도 왜 그토록 세련되고 아름답게 들리는지, 그리고 그 음악 뒤에는 어떤 사연들이 숨어 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이유가 있어서 명곡입니다』는 바로 그 지점을 콕콕 짚어주는 클래식 음악 교양서다. 팟캐스트 〈클래식빵〉에서 친절하고 유쾌한 클래식 해설자 ‘짱언니’로 사랑받고 있는 저자는 클래식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클래식 음악 뒤의 이야기와 ‘명곡의 이유’에 주목했다. 『이유가 있어서 명곡입니다』는 듣기만 해도 심장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던 그 곡에 숨어 있는 사연들과 함께 읽는 클래식 뒷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낸다. 주인공은 클래식 음악사를 주름잡았던 가장 대중적인 20곡의 피아노 명곡들이다.
고사리손의 추억, 피아노 악보에 담긴 아름다운 암호를 풀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의 정식 명칭은 〈바가텔 25번 가단조〉라는 밋밋한 타이틀이다. 심지어 베토벤이 작품 번호도 매기지 않았을 정도로 베토벤의 관심 밖이었던 곡이었다. 하지만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이 죽고나서 40년 만에 발굴되어 역주행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클래식 음악사상 최고의 대박을 터뜨렸으며, 지금은 ‘엘리제’가 대체 누구인지를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과 가설이 난무하고 있을 정도다. 2년 전에 이미 대작 〈운명 교향곡〉을 썼던 베토벤이 왜 이토록 심플한 소품을 썼을까? 그리고 〈엘리제를 위하여〉의 선율이 우리 귀에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나 아는 〈엘리제를 위하여〉에 스며 있는 ‘치밀한 완벽주의자’ 베토벤의 향기와 평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 했던 청년 음악가 베토벤의 삶을 함께 알면 익숙한 〈엘리제를 위하여〉의 멜로디가 훨씬 풍부한 감성으로 들려올 것이다.
모차르트의 〈반짝반짝 작은 별〉도 마찬가지다. 제목만 들어도 ‘도도솔솔, 라라솔~’이 머릿속에서 자동 연주될 만큼 유명한 〈반짝반짝 작은 별〉의 원래 가사가 귀여운 꼬마의 ‘고기도 싫고, 스프도 싫고 사탕이 좋아요’라는 ‘사탕 타령’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빵 터지고 만다. 〈반짝반짝 작은 별〉은 글로벌한 콘텐츠가 가장 멋지게 어우러진 작품이기도 하다. 원곡은 프랑스의 동요이고, 가사는 영국의 한 마을 다락방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시구이며,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ABC송〉이라는 불멸의 교재로 탈바꿈한 유서 깊은(?) 곡이기도 하다. 이 단순하고 귀여운 멜로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테크닉을 파헤쳐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은 17세기 작품이니 300년도 더 전에 작곡된 곡이지만 21세기에도 전혀 낡은 소리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겉바속촉’ 페이스트리처럼, 심플하게 느껴지는「캐논 변주곡」의 선율은 ‘2마디짜리 화성 구조에 멜로디 하나’라는 극강의 경제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곡을 해부해보면, 경제성을 추구하면서도 발전해야 하는 역설적인 명제를 실현하기 위한 ‘장인의 한 땀 한 땀 손길’로 다듬어진 정교한 디자인이 드러난다. 300년 세월을 뛰어넘어 사랑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쇼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녹턴〉은 어떨까. 우리는 쇼팽이 녹턴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것처럼 착각하기 쉬운데, 사실 녹턴은 유럽의 변방 아일랜드 출신의 음악가 존 필드가 창시했으며, 쇼팽은 그의 녹턴을 ‘대놓고’ 베꼈다. 하지만 쇼팽이 ‘녹턴의 왕좌’를 차지한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존 필드와 쇼팽의 〈녹턴〉을 나란히 놓고 한 땀 한 땀 비교하면서 쇼팽 〈녹턴〉이 최종승자인 이유를 알아본다. 후발주자인 천재 쇼팽이 녹턴의 왕좌를 차지하게 된 화려하고 섬세한 테크닉이 흥미롭다. 쇼팽과 존 필드의 녹턴을 비교해보면 ‘명품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클래식 1교시’, 이보다 쉬울 순 없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즐길 수 있을까? 아쉽게도 클래식은 즐기고 싶다고 해서 ‘자력으로’ 즐길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즐기고 싶은 마음만큼의 공부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연주하고 들어온 친숙한 곡을 통해 클래식을 배우는 재미, 그 맛을 경험하게 해드리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 출발점은 어린 시절 가장 먼저 클래식을 접했던 ‘피아노 수업’이다. 다시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아이가 되어 구면이지만 초면(?)으로 이 작품들을 만나려고 한다.”
지은이가 〈머리말〉에서 밝힌 대로, 어느 정도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클래식 음악 감상을 가장 친절하게 도와주는 ‘짱언니’의 안내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도 클래식 ‘빵단(0단)’을 벗어나 클래식 음악을 훨씬 친숙하게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유가 있어서 명곡입니다』는 ‘악기’와 ‘명화’를 결합시킨 『그림, 클래식 악기를 그리다』로 독자들에게 클래식 이야기를 신선하게 재구성하여 들려준 장금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클래식 음악이 품은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다채롭게 풀어내는 작가 특유의 발랄한 글솜씨는 여전하며, 내용은 정통 클래식 음악 속으로 한 발짝 더 걸어들어갔다. 클래식 음악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재미있고 아름답고 슬픈 사연과 그 곡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감성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린 시절의 그리운 피아노 소품을 떠올리며 가볍게 읽어도 좋고, 취미로 피아노 배우기 열풍이 한창인 지금, 연습하는 곡에 숨어 있는 아름답고 슬픈 에피소드를 떠올리면서 연습하면 훨씬 풍성한 클래식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도 좋은 티칭 부교재가 되어줄 것이다. 음악에 스토리를 입혀 맛깔나게 들려주는 클래식 이야기 『이유가 있어서 명곡입니다』를 통해 감성과 교양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