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소외, 해체와 갈등, 잊혀진 근원…
오늘날, 내일을 가능케 할 종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내일의 종교를 모색’하는 것은 어쩌면 순서가 뒤바뀐 명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내일의 종교’가 아니라 ‘종교가 내일을 가능케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의 근원에 대한 근원적 물음 앞에, 오늘의 시대는 어떤 답을 내놓았는가. 근대 이후 종교 앞에서 자신만만하던 이성과 합리성, 기존의 과학적 접근 또한 현대의 증상을 설명하는 데에 백기를 내걸었다. 창궐하는 나르시시즘, 조현병, 멀티 페르소나 등의 급물살 앞에서 인간의 인지적 접근과 합리성은 종교보다 더 구식인 무기로 전락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제 인지조차 인간을 소외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막강한 학습력과 데이터를 갖춘 AI 앞에서, 인간은 이제 인지와 비인지의 균열 속에 놓인 존재이며, 어느 분야에서도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없다.
존재가 삭제된 자리에는 이렇게 균열과 분열만이 남는다. 시대마다 비극의 양상은 다르지만, 이 시대의 비극은 분열증이다. 근원으로부터의 분리, 공동체, 역사, 가치로부터의 분열은 인간의 내면을 잠식하여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대립과 반목을 겪게 한다. 이 찢어짐의 아우성 속에서 인류가 간절히 기다리는 새로운 메시아는 통합과 일치의 등불을 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종교의 원형이기도 하다. 종교(religion)의 어원은 ‘연결하다(religio)’라는 뜻으로, 그 원형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근원과 시대, 역사와 공동체와 다시 연결되는 것만이 이 시대의 비극을 디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종교를 탐색하는 것만이 내일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인문학적 깊이로 삶의 자리를 묻고,
영성전통의 지혜로 일깨우는 내일의 종교
따라서 이 책이 제공하는 모든 통찰은 연결과 통합을 위한 길이다. 저자는 이 길을 위해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분석과 ‘영성 전통의 지혜’라는 통찰을 제시한다. 그 첫 여정은 내면으로부터 시작하는 ‘기도’의 문이다. 기도라는 말 안에는 불연속성에 대한 초대가 담겨 있다. 기도는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끊임없이 대처하고 변용해야 하는 연속성에서 벗어나, ‘고요한 정점’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저자는 이 고요함이 추상적인 초월로만 남지 않도록 ‘현상학’을 도입한다. 기도의 현상학은 유한과 무한을 연결하며, 삶의 모순과 역설 속에서 ‘전체적 의식’을 회복하게 해 준다. 기도가 첫 시작인 이유는, 기도로 들어갈 때 비로소 전체성을 방해하는 폭탄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폭탄은 우리 안에서 친밀한 배신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정체는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나르시시즘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를 고립시키며 진정한 자신과의 불일치를 낳는다. 저자는 진정한 자기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자기 부정’이 필요함을 말한다. 십자가의 요한은 자기부정은 가면을 쓴 자아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며, 진정한 자기가 질서 안에서 신적 가치와 연결되는 일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자기 안에서 근원과 연결된 인간은 다시 사회와 연결된다. 이때 나타나는 현상은 ‘숭고미’이다. 숭고는 현시할 수 없는 것을 현시하는 것, 그 균열 가운데서 발생하는 차원의 잉여를 현시하는 일이다. 이 풍요로부터 오는 사랑, 내어줌, 용서만이 우리를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젖줄일 것이다. 영성가 토머스 머튼의 깨달음처럼, 사랑의 근원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 태어난 영광스러운 존재였으며 그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하나에 대한 의식은 거룩한 공동체를 가능하게 한다. 프란시스 쉐퍼의 ‘라브리 공동체’는 종교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통해 의미체계의 변화와 존재 이유를 탐색하는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의 공동체 의식은 비단 인간 사이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그 연대의 지평은 모든 피조물과의 연합, 창조적 생명연대로까지 이어진다. 오늘날 대두되는 기후와 환경 문제의 핵심에는 세계관의 문제가 있다. 착취에 기반한 경제 모델과 이원론으로는 생태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 자연을 구원하는 일은 곧 그것에 깃든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문제이다. 이에 저자는 빙엔의 힐데가르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생명사상의 핵심은 신의 사랑을 통한 창조적 연대이다.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그것이 인간중심주의로 갈 수 없는 까닭은 인간의 가치가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간과 우주, 이 모든 세계에 공통적으로 맥이 뛰게 하는 ‘푸른 생명력(viriditas)’은 창조주의 사랑이 정해준 질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보고 전체와 겸손하게 관계 맺게 한다. 생명의 연합은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 인간도, 자연도, 영-혼-육 그 어느 것도 이 연합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 시대의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환상에서 깨어나 거룩한 ‘내일’을 창조하는 것이다. 토머스 머튼이 말했듯, 이 환상은 “분리의 꿈, 자기 고립의 꿈”이며, 이것에서 깨어나는 일은 연합과 연대의 현실을 창조하는 일이다. 이 해답이 바로 종교의 원형 안에 담겨 있다. 종교 안에 숨어있는 영적 지혜의 보고를 인문학적으로 탐색하는 일은 이 시대의 위기를 창조적 연대로 전환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