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제 삶에 이름표를 달아 주는 일입니다.
저의 시간은 이렇다 할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한 해를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로 규정하지만, 1월 1일의 해와 12월 31일의 해가 다르지 않듯이, 전업주부의 날도 어제와 오늘이 별다르지 않습니다. 시작과 끝을 감지하지 못한 채 그저 시간이라는 바다 위를 잠잠히 흐를 뿐입니다.
현대인들은 시간 또한 경제적 잣대로 가늠합니다. 시간당 받는 노동력의 대가로 가치를 가늠하고 많은 대가를 받는 이들에게 성공한 인생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줍니다. 이런 풍조 속에서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일은 세상의 허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허공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본들 빈손인 것처럼 전업주부의 삶은 이처럼 존재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삶 하나하나에 글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삶의 무게를 달아 주고 싶었습니다.
‘여백’, 저에게 붙여 주는 이름표입니다. 전업주부에게 붙이는 존재감입니다. 맛깔난 조연이 주연을 빛나게 하듯, 여백 없이 빛나는 존재는 없습니다. 존재의 배경이 되어 주는 공간이 여백입니다. 글을 쓰면서 제가 그런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간혹 허무한 날이 나를 찾아올 때면 글들이 저를 위로했습니다. 여백의 시간은 가장 존재다운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시간은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쌓여 가는 것이라고, 제 글들이 그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타인이 붙여 준 그럴싸한 이름표는 아니지만, 글들이 저에게 붙여 준 고유함입니다. 저만이 붙일 수 있는 이름표지요.
이 글들은 여백으로 살아가는 전업주부의 시간에 관한 얘기입니다. 전업주부에게 붙여진 무명한 시간들, 음식을 만들며 누렸던 시간들, 나답게 만들어 준 시간들과 일상을 떠나 잠시 누린 생소한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평범하고, 사소하고, 때론 보잘것없는 시간, 곧 여백의 시간 속에서도 삶은 고유하고 귀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마음의 뿌리에는 저와 함께하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 글이 시간을 꽉 채워 살지 않고 빈틈없는 목적을 따라 살지 않더라도 나의 존재는 고유하고 존귀하단 진실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략)
표현이 서툴러 다정한 언어와 섬세한 몸짓에는 둔했지만, 나의 흠결을 묵묵하게 받아들이고 참아 줌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말해 준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그는 분명 저의 울타리였습니다. 그리고 부족함이 많은 엄마의 사랑을 충분했다고 여겨 주는 듬직한 두 아들, 진우와 진성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너희가 있어서 엄마의 삶이 더욱 풍성했노라고, 너희는 엄마의 또 다른 생명이라고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