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연이 아닌, 은수와 볼보의 만남
고요했던 마을에서 시작된 소동
현실과 고민 앞에 주저앉거나 도망쳐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별것 아니라 넘기지만 당시에는 내 앞에 단단한 벽이 있는 것 같다. 벽은 아무리 노크하고 밀어 봐도 반응이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볼보와 볼보』의 은수를 비롯한 여러 인물은 벽에 맞서는 힘을 기르고 있다.
‘나는 어젯밤에 갑자기 K시로 오게 되었어. 지금 여기는…….’
그럼 새별이 왜? 라고 묻겠지.
‘왜냐하면 내가 아빠한테 맞았어. 너무 무서웠어. 그 순간 아빠가 괴물 같았어. 그래서 집을 뛰쳐나왔거든.’
그럼 새별이 또 묻겠지? 왜 맞았는데?
은수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라이온이 엉덩이춤을 추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p.17
은수를 시작으로 소설 속 인물들이 하나둘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심코 발견한 서로에 놀라거나 위로를 받기도 한다. 또한 스스로 혹은 함께 손을 포개어 힘을 보탠다. 이것은 우리가 조각난 하루 끝에 희망과 내일을 끌어안는 방식이기도 하다.
책 제목인 『볼보와 볼보』는 포클레인에 적힌 볼보와 몰티즈 강아지의 새 이름 볼보라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은유나 비유인 듯 연결된 제목처럼 그들의 만남은 손을 맞잡은 듯 따스하다. 과연 나지막한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이곳에서 어떤 소동이 벌어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꿈 정도는 꿔도 되지 않을까?”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장래 희망이 뭐야? 라는 질문을 한 번쯤을 들어 봤을 거다. 학교를 졸업 후 대학교, 인턴, 취업 등 정해진 절차가 있는 듯 군다. 이런 소리가 누군가는 잔소리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어렵게 주어진 출발선상 아닐까.
“네가 준 책 읽고 나서 요즘 꿈에 대해 생각을 자주 해. 난 이제껏 나처럼 불운한 사람은 꿈을 꾸는 것도 사치라고 여긴 것 같아.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뭐, 꿈 정도는 꿔도 되지 않나. 그런 게 있으면 미래가 기대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조금은 덜 막막하지 않을까? 학교 가는 게 지겹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날 주현은 어른이 되는 장거리 경주에서 동수가 막 자신을 추월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p.53
소설 속 인물들은 청소년기를 겪거나 빠져나오는 구간을 달리고 있다. 장애물을 만나 발을 헛디디고, 길이 끝나지 않는 수평선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모두는 다음을 위한 도약을 꿈꾼다. 이 소설의 미덕은 여기 있다. 무거운 현실에 짓눌려 몸을 웅크리는 것이 아니라 꿈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나에게도 보통의 어른이 되는 행운이 찾아올까?”
우리가 마음속에 품은 고민 한 줄기
만 19세가 되면 성인으로 분류된다. 나이를 한 살 먹었을 뿐인데 책임감, 법, 사회적 지위 등이 부여된 거다. 막상 나이를 먹고 자연스럽게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은 무수한 생각에 휩싸여 있다.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될까.
“나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 고등학교만 나와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할머니도 돌봐드려야 하고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면 가정을 꾸릴 정도의 돈도 벌어야 하고, 사회에서 내 자리 같은 게 있어야 할 텐데 말이야.”
p.51
주현은 외숙모 같은 어른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알고 있다. 작고, 약하고, 자신처럼 보잘것없는 존재한테 관심을 기울여 주는 다정한 어른.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려면 아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될 것이다.
p.111
청소년의 고민 중 하나가 ‘어른’ 되기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라는 소리가 있듯 청소년에게 어른이란 껍질이 아닌 번듯한 형체를 뜻할 거다. 소설은 이런 명징한 메시지를 각기 다른 인물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로 입혀 풀어냈다.
『볼보와 볼보』는 은수에서 출발해 볼보까지 저마다의 고민을 풀어내며 희망을 속삭인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 주었으니 독자인 ‘나’의 얘기를 할 차례다. 시시하거나 농담이어도 좋다. 모두의 이야기에는 행운이 숨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