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자, 피폭국’이란 말은 있지만 ‘가폭자, 가폭국’이란 말은 없는 현실
원폭 투하 책임 묻지 않으면 핵무기 의존 국가 계속 늘어날 것!
주제 1 발표를 맡은 오은정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국원폭피해자의 입장에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이를 위해 미국이 단지 핵폭탄을 투하한 주체였을 뿐만 아니라 피폭된 조선인들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한반도로 서둘러 귀환한 과정에 관여한 주체라는 것에 주목하는 한편, 한국원폭피해자들이 자조 조직인 원폭피해자원호협회를 결성하고 미국의 정치적 책임을 물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한국원폭피해자들은 초창기부터 원폭을 투하한 미국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물었으며, 강대국 사이에서 희생된 자신들의 존재가 ‘핵시대의 십자가’임을 자각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 십자가를 짊어지게 한 주체는 그것을 불가피한 희생으로 정당화하면서 그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정당화의 기제는 20세기의 핵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 패권 체제와 공고하게 연결되어 있다”며 “그런 점에서 한국원폭피해자들은 냉전체제 하의 핵의 지정학, 반공주의, 포스트식민주의 관점을 복합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토론자로 나선 오쿠보 겐이치 일본반핵법률가협회 회장은 “누구도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있지 않다”며 피폭자, 피폭국이라는 말은 있지만, 가폭자, 가폭국이라는 말은 없다면서 “원폭을 누가 사용했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책임은 추궁당하고 있지도 않고, 재판받지도 않았”다며 “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핵무기 국가는 핵무기 의존을 계속할 것이고, 핵무기에 의존하려는 국가는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국제인도법은 무차별적 살상이나 파괴를 초래하는 무기나 군인들에게 잔학한 죽음을 초래하는 무기 등의 사용을 금지한다면서, 원폭국제민중법정은 바로 미국에 그러한 ‘부정의’와 ‘위법성’을 자각시키기 위한 운동이라고 자리매김한다.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 국제정보대학교 교수는 논점을 심화시키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한다며 먼저 ‘조선인 피폭자’의 범위를 넓힐 것을 제안한다. 한국인 피폭자뿐만 아니라 북한, 일본, 미국의 조선인 피폭자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 또한 “미국은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에도 관여했으며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계속 관여하고 있다”며 “미 국무부와 CIA, 나아가 주일대사관 및 주한대사관 등에서 작성된 외교문서를 정밀 조사하면, 미국의 피폭 조선인 인식에 대한 기록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일본·미국은 원폭 투하 80년이 다 되었는데도 한국원폭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원폭피해자가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불법의 책임을 물어 법적 정의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한국원폭피해자는 피해자·생존자의 위상을 넘어 핵무기의 잔혹성과 불법성에 저항하는 사람들로 명명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국제인도법, 환경법, 인권법, 핵무기금지조약을 근거로 보더라도
인간, 환경, 미래세대에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게 확실한 핵무기 사용은 불법!
주제 2 발표를 한 다니엘 리티커 교수(로잔대학·서포크대학 겸임교수, 국제반핵법률가협회 공동회장)는 국제법의 여러 분야, 즉 국제인도법, 환경법, 인권법, 그리고 핵무기금지조약을 근거로 핵무기 사용의 적법성에 대해 구체적 사례를 들어 가며 분석한다. 그 결과 핵무기 사용이 인간, 환경, 미래세대에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 어떤 핵무기 사용도 국제법상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저위력 또는 전술핵무기가 국제법의 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는 일부 국가의 주장도 입증되지 않은 억지라고 말한다.
야마다 토시노리 메이지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국제형사법 관점에서 핵무기 사용을 제노사이드,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개인의 형사책임 네 분야에서 검토한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설립으로 일정한 국제범죄에 대해 범죄 행위자를 소추 및 처벌하는 절차가 정비되어 왔다”며 “제노사이드 협약 및 ICC 규정 하에서 핵무기 사용은, 모든 경우는 아니더라도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한 죄 혹은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고 “그 사용을 결정한 국가지도자 개인의 형사책임도 추궁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맨프레드 모흐 국제우라늄무기금지연합 공동의장은 핵무기 사용의 불법성 문제는 보다 광범위하고 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면서, 리티커 교수와 토시노리 교수의 발표문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마니 로이드 웰링턴 빅토리아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핵무기 사용으로부터 세계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특정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논리는 안보와 비폭력 간 인식된 딜레마의 기저에 있는 근본적인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으로, “궁극적으로 이러한 주장은 폭력/위협 또는 무기 사용에 대한 아이디어를 대변하려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확장억제 포함해 미국이 추구하는 핵억제 정책은
현명하지 못하고, 위험하며, 불법!
주제 3 발표문 ‘(확장)억제의 불법성과 이의 한반도·동북아 평화와의 양립 불가성 및 극복 방안’에서 찰스 막슬리 포드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핵무기 사용과 사용 위협이 미국에 의해 인정된 국제법 규칙에 따르더라도 불법”이며, “핵무기가 합법이라는 미국의 주장 속에서 미국이 보통 중요시하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는 국제법의 그 밖의 규칙에 의해서도 핵무기 사용과 사용 위협이 불법”이라고 말한다. 또한 “확장억제를 포함해 미국이 추구하는 핵억제 정책이 현명하지 못하고, 위험하며, 불법적”이라고 단언한다.
이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의 확장억제 : 법적 정책적 우려’에 대해 발표한 안나 후드 오클랜드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역대 정부는 다양한 이유로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것을 옹호해 왔는데, “확장억제는 언뜻 보기에는 한국과 일본의 안보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면밀히 검토해 보면 국제법상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양국의 평화와 안전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한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핵 사용 위협이 유엔 헌장 2조 4항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핵억제가 매우 불안정하고 취약하여 실제로는 안전이나 평화에 대한 보장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 토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사실 관계와 법리 측면에서 미국이 남한에 제공한 확장억제에 대한 주최측의 몇 가지 이견을 제시한다. 먼저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가 ‘미국이 필요시 한국 방어를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조목조목 밝힌다. 또한 “핵억제든, 재래식 억제든 모두 불법으로 국가안보 개념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며 “국가안보는 방어 개념에만 의거해서도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다”면서 “그 길만이 동맹과 집단방위에 의해 위기에 처한 유엔 헌장과 유엔 중심의 집단안보를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군축 연구자 존 키롤프는 한국과 일본은 군축회의 회원국임에도 “다른 모든 핵보유국과 핵보호를 받는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두 나라는 군축회의에서 핵군축에 관한 교섭을 개시하기 위해 다른 군축회의 회원국이 제시한 제안을 주도하거나 수락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2017년 7월 7일 채택되어 2021년 1월 22일 발효된 핵무기금지조약 교섭 및 채택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2차 국제토론회에서는 1945년 미국의 핵무기 투하 이후 제정된 제네바 4협약과 추가의정서, 인권법, 환경법, 국제형사법, 핵무기금지조약 등의 국제법에 의거해 핵무기 사용의 불법성을 밝힘으로써 2026년 뉴욕 민중법정과 향후 미국 법정에서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핵무기 투하를 비롯한 핵무기 사용과 위협을 불법으로 단죄해 낼 수 있는 법리를 확립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고영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공동대표는 “(확장)억제의 불법성을 밝히는 것은 핵대결과 군비증강을 막고 핵군축을 통해 핵 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라며 “유럽과 함께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핵무기 사용 위협이 핵무기 사용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고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이 자료집이 한반도와 동북아 비핵화, 나아가 ‘핵 없는 세상’을 실현하는 데 하나의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