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신경림 시인에게 배워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도종환 시인(해설 부분)
가려진 아름다움을 찾아서
마지막까지 사라지는 것들의 편에 선 신경림
시인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밝은 눈으로 시를 썼다. “꽃 뒤에 숨어 보이지 않던 꽃이 보이고, 길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해 질 녘」)라는 그의 시적 통찰은, 평생을 어두운 곳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고 지켜온 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시인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새로운 것을 찾아, 생명의 별을 찾아 길을 나섰다. 그러나 시인이 찾는 별은 크고 우뚝한 별이 아니다. “별과 별 사이에 숨은 별들”이다. “큰 별에 가려 빛을 잃은 별들”이다. “낮아서 들리지 않는” 존재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 “작아서 보이지 않는” 그들의 춤을 보기 위해서, “흐려서 보이지 않는”(「별을 찾아서」) 그들의 웃음을 보기 위해서 간다. 그런 까닭에 그의 시는 늘 깊고 진실된 울림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이 서로 어우러져”(「월야(月夜)」)야 한다는 생각, 더럽고 슬픈 것조차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삶과 존재를 향한 무한한 연민과 애정으로 빛난다. “머지않아 가마득히 사라질 것이어서 더 아름답다”(「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역설적인 고백을 통해, 신경림 시인은 독자들에게 삶의 유한성을 긍정하고 현재를 충만히 살아갈 것을 당부한다.
“나는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끝내는 날이 될지라도.”
-「소요유(逍遙遊)」 부분
생의 끝에서도 시는 계속된다
신경림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
시인은 생의 마지막까지 길 위를 걸었다. 병상에서도 길과 사람들을 생각하며 행복하다고 했던 시인은 “빛보다 그늘이 더 빛난다”(「다시 길로」)는 삶의 깊은 진실을 끝없이 찾아 나섰다. “흙먼지에 쌓여 지나온 마을”이 돌아보니 “복사꽃밭이었다”(「고추잠자리」)라는 회고는, 고단한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의 탁월한 시선을 증명한다. 이번 유고 시집은 신경림 시인이 남긴 소중한 유산이자 한국문학이 오래도록 간직해야 할 값진 보물이다. 특히 병상에서 쓴 시들은 생의 끝자락에서 더욱 깊어진 성찰과 순한 연민의 정서를 진하게 담고 있다. 고통과 회한 속에서도 끝내 삶을 긍정했던 시인의 태도는 존재에 대한 겸허하고 단단한 고백이 되어 독자에게 다가온다.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라는 말은 시인이 남기고 간 유언에 그치지 않는다. 언제나 우리 곁에서 살아 있을 위로이자 격려다. 생명이기에 눈물도 있고 땀도 있으며, 그 모든 흔적이 모여 존재의 깊이를 이룬다는 믿음. 신경림의 시는 바로 그 믿음 위에 놓여 있다. 시인이 떠난 자리에 남은 이 시집은, 작고 하찮은 것을 끌어안는 따뜻한 시선과 굽힘 없는 시적 태도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허세도 장식도 없이, 한평생 낮은 곳을 향해 있었던 그의 언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과 조용한 응시를 남긴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짧은 문장이 지닌 울림이 그 어떤 정치적 슬로건이나 도덕적 선언보다 깊고 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신경림이 남긴 마지막 시들은 이제 독자들이 완성시킬 몫이다. 이 시집을 통해 우리는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흔들리면서도 다시 걷고, 슬퍼하면서도 다시 사랑하게 된다. 그것이 신경림이라는 시인이 남긴 가장 인간적인 유산일 것이다.
한편 1975년 출간 이후 한국 민중시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신경림의 첫 시집 『농무』의 특별한정판도 동시 출간된다. 50년 가까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수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전해온 『농무』는 신경림 문학의 출발점이자 정수로, 이번 유고 시집과 나란히 놓일 때 더욱 큰 울림을 전한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가 시인이 남기고 간 불꽃이라면, 『농무』는 그가 평생 추구해온 시의 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