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목적은 의사소통이다.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가 정련되고 재단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의 것이라면? 혹은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형태가 언어화될 수 없는 특수한 성격의 것이라면?
그때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하나는, 정보의 손실을 각오하고 이를 언어화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인간 사회에서 많은 수의 의사소통은 정확한 언어에 따른 올바른 정보 전달이 아닌, 이러한 손실을 각오함으로써 이뤄진다. 그것을 각오할 수 없다면, 우리는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르는 수밖에 없다. 침묵하기. 손실 없이 말할 수 없는 것 혹은 언어화될 수 없는 것에 스스로 입을 다묾으로써 언어를 통해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무언가가 ‘너’와 ‘나’ 사이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시적 언어가 근원적으로 불친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시적 언어는 은유와 환유를 축으로 삼아, 전달하고자 하는 바의 손실을 감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침묵하지도 않을 수 있는 제3의 선택지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시집, 오덕순의 「스탬프 씨, 안녕하세요?」가 갖는 함의가 숨어 있다. 그의 화자는 가독성 높은 일반적인 수준의 생활 언어를 활용하면서도 단어의 선택과 문법적 요소의 결합에 있어 기묘한 개성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화자가 전달하는 ‘말’, 문장은 개별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별다른 특이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연을 이루고 작품을 구성하는 순간 기묘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예컨대, 개별적인 문장 단위에서 축적된 언어의 결합을 통해 그 이상의 잉여적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