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의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 대부분은 많은 인기를 끈다. 그만큼 병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에는 수많은 군상의 다채로운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감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뛰어난 실력으로 어렵디어려운 관문을 뚫고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신성한 일에 종사하는 의사들에게 상반된 평가가 돌아가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한때 ‘사’ 자가 들어가는 직업이 전문직의 꽃으로 여겨지며 최고로 추앙되었다. 최근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으로 빚어진 의료대란이 심화되면서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고, 시대가 변하면서 현실도 많이 달라졌지만, ‘사’ 자 들어가는 직업들을 향한 우러름은 여전하다.
수술실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비록 포탄이 쏟아지지는 않더라도 죽을 만큼 아픈 고통, 어디에서도 희망 한 자락 찾을 수 없는 절망, 끝끝내 막지 못한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적을 상대해야 하는 사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비단 수술실만 그럴까. 하루가 멀다 하고 그런 곳에서 의술을 펼쳐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마땅한 지위와 존경, 보상이 따라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드높은 존경과 보장된 보상이라는 화려한 외피 속에 가려진 책임과 의무, 감내해야 할 현실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권위적 위계질서, 기득권 카르텔의 횡포, 조직 내 알력을 견뎌 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환자를 살리면 살릴수록 병원 적자만 가중시킨다고 악당 취급당하는 드라마 속 이야기는 픽션이 아니라 온전한 팩트이기 때문이다.
국경없는의사회 등에서 박애정신을 실천하는 의사들을 보면서 우리는 존경심과 동시에 도저히 그렇게 살 수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잘살기 위해, 안정적인 삶을 위해 의사의 길에 들어선 이들에게도 그런 거룩함은 하찮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자궁 맑음》에서 그러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직업적 소명에 대해 늘 묻고 답을 찾으려 노력해 온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수술실의 날카로운 긴장 속에서나 병실에서의 따뜻한 웃음 속에서도 끊임없이 질문한다.
“좋은 의사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
《오늘 자궁 맑음》에도 의학계 내부의 부조리나 조직 내 갈등, 연구자로서의 고뇌 등과 같은 직업적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그런 이야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고, 그들을 향한 이해와 애정이 녹아 있다. 환자가 있었고, 그 길고 지난한 여정을 함께했던 동료들이 있었고, 끊임없이 품어 온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저자의 열정과 도전, 용기가 있었다. 저자는 타협보다는 진실을 택했고, 그 때문에 때로는 불이익과 외로움, 고통이 따랐지만 굳굳이 그것들을 감내해 왔다.
한자로 의사(醫師)의 ‘사’ 자는 변호사(辯護士)나 박사(博士)의 선비 ‘사(士)’나 판사(判事)나 검사(檢事)의 일 ‘사(事)’가 아니고 스승 ‘사(師)’라고 한다. 아마도 저자는 건강한 몸을 되찾아 주는 치료를 통해 건강한 마음까지 회복해 소소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진정한 스승의 역할을 하는 것이 좋은 의사, 좋은 삶이라는 해답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