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연스러운 우리말 『햄릿』으로 거듭나다
『햄릿』은 영어로 된 문학 작품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품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햄릿』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의 하나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어디선가 누군가에 의해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햄릿』은 모든 훌륭한 고전이 그러하듯 보편성을 갖추고 있다. 삶과 죽음, 정의와 불의, 실체와 허구, 이성과 격정이라는 문제를 둘러싼 『햄릿』의 갈등과 경험은 특정 시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주인공 햄릿의 고민은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보편적 경험이다.
그리하여 국내에도 『햄릿』의 번역본이 아주 많은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번역문들이 미세하게, 확연하게 다른 부분이 많다. 이 책은 『햄릿』의 깊고 넓은 문학사적인 의의는 차치하고, 오직 국내 번역문의 차이를 비교 분석한 뒤에 자신의 고유한 번역에 집중했다. 예를 들자면 이러하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최종철)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경식)
이대로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설준규)
존재냐, 비존재냐 -그것이 문제다. (이상섭)
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구나. (박우수)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김정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구나. (노승희)
살아남느냐, 죽어 없어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신정옥)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여석기)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역자 이진영)
한 문장에 대한 해석이 10인 10색이지만, 그러함에도 역자의 해석은 접근 방식에서부터 조금 색다르다. 9가지 번역이 모두 쓰여 있는 순서대로 ‘To be’를 먼저 번역했지만, 그는 ‘not to be’를 먼저 앞세운 논리를 펼친다.
그는 2가지 이유를 드는데 첫째, 우리 입말에는 ‘죽느냐, 사느냐’가 자연스러움을 든다. ‘사느냐, 죽느냐’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죽고 사는 문제’라고 하지 ‘살고 죽는 문제’라고 말하지 않으며, 어순 자체가 서로 다른 영어와 한국어의 번역을 논하면서, 쓰인 순서대로 번역해야 한다는 기계적인 사고방식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한다. 예컨대 영어의 ‘Ladies and gentlemen!’을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고, ‘bride and bridegroom’ 또한 ‘신랑 신부’라고 한다면서 어순 자체가 다른 우리 말의 특징을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둘째, 햄릿의 독백 “To be, or not to be”에서 ‘to be’(사느냐)가 ‘not to be’(죽느냐) 보다 ‘중요해서 앞으로 나온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상이한 2개의 동사로 대비하지 않고 하나의 동사(여기서는 ‘be’)에 ‘not’을 붙여 대비하기 위해 ‘to be’가 앞으로 나온 것일 뿐이다. 우리말에 비유하자면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야?”와 같은 구조로, 다시 말해서 “사느냐 죽느냐”와 “죽느냐 사느냐”는 의미가 똑같다는 것이다.
위의 예는 이 책의 흐름을 알리기 위한 한 예일 뿐, 책의 곳곳에는 이렇듯 역자만의 독특한 시각과 논리가 숨어 있다. 그는 ‘사명감’으로 『햄릿』을 번역했다고 한다.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가장 자연스러운 우리말 『햄릿』’을 반드시 펴내겠다”고 다짐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라고 역자는 자신한다. 원작자는 ‘슬픔’이든 ‘애통’이든 자기 마음에 드는 표현을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창작자로서의 특권이 있지만, 주어진 텍스트에 충실해야 하는 번역가는 오로지 작품의 맥락ㆍ흐름과 작가의 의도에 대한 파악 능력, 풍부한 모국어 어휘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 역자의 지론이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와 『햄릿』에 대한 설명은 최대한 핵심만 추려 싣고, 대신 E. 들라크루아가 그린 고풍스러운 삽화를 넣어 활자 가득한 본문에 숨통을 틔웠다. 또 작품에 실린 명대사를 원문과 함께 따로 엮어 『햄릿』을 읽는 맛을 증폭시켰다. 현재의 영어 체계를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위대한 작가의 고급스러운 문장이 독자들의 책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