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 전문가 신병주 교수의 친절한 설명과 통찰
이곳이 그 역사의 현장이었다!
살면서 꼭 한 번쯤 경험해봐야 할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
우리가 역사 공부를 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활동은 현장 답사다. 역사를 만들어 간 인물과 공간은 그 존재만으로 생생한 사건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은 신병주 교수가 실제로 현장 답사를 나가 설명한 내용과 그때의 경험과 느낌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실제 답사가 가능하도록 서울,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 각 지역별로 파트를 나누었다. 둘째, 역사의 현장에서 만나는 인물, 사건, 공간을 키워드로 하여 서술한 만큼 생동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셋째, 각 챕터마다 현장을 찾아가는 길과 관련 정보를 박스로 표기하여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서울 지역은 오랫동안 조선의 수도 역할을 했던 만큼 곳곳에 의미 있는 유적지가 가득하다. 서울 중심지에는 왕과 왕비가 살았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5대궁뿐 아니라 그들의 신주를 모신 종묘, 나아가 왕을 낳은 어머니들의 신주를 모신 칠궁 등이 모여 있다. 북촌은 양반들이나 고관들이 주로 거주했던 공간이었다. 북촌의 헌법재판소가 있는 자리에는 《열하일기》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와 개화파 정치인 홍영식의 집터 표지석이 있고 1885년에 설립된 최초의 병원 제중원 표지석도 있다. 서촌은 조선 후기 양반과 평민 사이에 위치한 중인들이 시와 문장 등의 문화를 즐기는 곳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시인 천수경이 주인이었던 ‘송석원’으로, 친일파 윤덕영은 그 자리에 한양의 아방궁이라 불리던 ‘벽수산장’이라는 저택을 짓기도 했다. 지금은 박노수미술관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박노수미술관 주변에는 시인 이상이 20년간 살았던 집터에 자리한 ‘이상의 집’, 연희전문학교 학생 윤동주가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음을 알려주는 ‘윤동주 하숙집’ 표지판도 찾아볼 수 있다.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산, 낙산, 인왕산, 남산, 백악산을 연결한 한양도성, 한명회의 화려했던 정치 인생과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압구정동의 유래가 된 정자 압구정, 석촌호수 쪽으로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삼전도비도 찾아볼 수 있다.
경기도 지역 여주에는 세종대왕의 영릉이 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무덤 헌릉(서초구 내곡동)의 서쪽으로 자신의 무덤 자리를 생전에 정한 왕이었고 사후 그곳에 묻혔다. 하지만 풍수지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계속 지적되고 문종, 단종, 의경세자 등 적장자 출신들이 연이어 요절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세종의 무덤은 경기도 여주로 옮겨졌다. 용인에는 성리학의 수용과 실천에 공을 세운 정몽주와 조광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과 구리시의 동구릉은 왕과 왕비를 모신 대표적인 왕릉군이다. 강화도는 고대 유적인 고인돌부터 고려시대 유적인 고려궁궐 터, 조선시대 유적인 정족산사고와 외규장각 등 시기별 유적을 잘 갖추고 있는 곳이다. 외규장각은 정조 때 지어진 것으로 궁궐 안은 전쟁이나 화재의 안전지대가 아니었기에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지어 왕실의 도서를 보존했다.
경상도 지역 안동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과 퇴계 이황 학문의 산실로 꼽히는 도산서원 및 퇴계종택이 있다. 근처에는 이황의 후손인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의 생가를 복원한 육우당도 있다. 산청에는 이황과 더불어 영남학파 양대산맥인 조식의 생가, 산천재가 있다. 경의 상징인 방울과 의의 상징인 칼을 찬 선비로 기억되는 조식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곽재우 등 많은 의병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남해로 가면 이성계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금산의 보리암, 노량해전의 이순신을 기린 관음포, 《사씨남정기》의 작가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를 만날 수 있다.
전라도 지역 담양에는 호남 선비의 풍류와 멋이 담긴 소쇄원이 있다. 소쇄원은 조선 최고의 민간 정원으로 조광조의 문인이었던 양산보가 스승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자 정자를 짓고 은거의 삶을 살았던 곳이다. 흑산도는 정약용의 형이자 《자산어보》의 저자인 정약전의 유배지로 정약전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책을 집필한 공간인 사촌서실이 있는 곳이다.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는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사건인 신유박해로 유배길에 올랐고 그들이 유배 기간 동안 주고받은 편지는 지금까지 전해온다. 강진은 정약용의 유배지다. 정약용은 강진에 다산초당을 짓고 거처로 삼았다. 외가인 해남 윤씨 종택인 녹우당이 인근에 있어 많은 책을 얻을 수 있었고, 근처 백련사에 거처하는 혜장, 초의 등의 고승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약용은 유배의 시간을 실학 완성의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 전주는 이성계의 고조부가 살았던 곳으로 전주 한옥마을 안에 위치한 오목대는 황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돌아가는 길에 들러 승전을 자축한 곳이다.
충청도 지역 아산에는 조선시대에 가장 이상적이고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청백리 맹사성 고택이 있다.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맹씨행단이라고도 불린다. 본래 고려 후기 장군 최영의 집이었는데 손녀사위였던 맹사성이 물려받은 곳이다. 공주에는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의 능인 무령왕릉이 있다.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원형의 형태로 발견되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옥천에는 〈향수〉를 쓴 시인 정지용의 생가가 있고, 그 인근에는 육영수 여사의 생가도 있다. 당진에 있는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으로 증조부 김진후,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 부친 김제준까지 4대의 순교자를 배출한 천주교의 성지다.
강원도 지역 강릉에는 오죽헌이 있다. 조선 전기까지는 여성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재산 상속에서도 남녀가 똑같이 재산을 물려받았고 처가살이가 관행적으로 행해졌는데 신사임당의 친정이자 이이가 태어난 곳이 오죽헌이다. 강릉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인물은 허난설헌이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이기도 했던 허난설헌은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뛰어난 재주에 비해 순탄하지 못한 결혼생활 끝에 27세에 요절했다. 허균은 외우고 있거나 친정에 흩어져 있던 누이의 시를 모아 《난설헌고》를 만들었다. 이 시집은 명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해져 허난설헌의 이름을 알렸다. 또한 오대산사고를 찾아볼 수 있다. ‘사고’는 《조선왕조실록》 등 국가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던 서고로, 혹시라도 모를 화재나 변란으로 소실될 것을 우려하여 임진왜란 이후에는 보다 안전한 산간 지역에 설치했다. 그중 하나가 오대산사고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은 1913년에 일본에 유출되는 비운을 맞기도 했지만 2023년에 오랜 타향살이를 마치고 오대산에 돌아와 자료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제주도 지역 애월에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침입에 맞서 삼별초가 최후까지 저항을 했던 향파두리성이 있다. 제주시에는 김만덕기념관이 있는데 김만덕은 1795년 제주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천금을 내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여 《정조실록》에 실린 여성 상인이다. 여성이 재물을 풀어 백성을 구제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것이 국가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서귀포시로 가면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가 1840년에서 1848년까지 유배생활을 했던 추사유배지를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은 청나라 사신으로 갔다 올 때마다 잊지 않고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을 위해 고마움을 담아 그린 김정희의 역작 〈세한도〉로도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