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취향은 베토벤인가요, 라흐마니노프인가요?”
대답할 수 없는 당신에게 권합니다
충만한 인생을 위한 단 한 권의 클래식 가이드
교양 있는 취미를 즐기고픈 사람이라면 분명 클래식 음악 근처도 기웃거려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의 장벽은 먼 옛날부터 높디높았다. 너무 광범위해서 뭐부터 들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은 클래식 입문자들의 영원한 고충이다. 본격적으로 클래식을 즐기기 전에 기초 지식을 열심히 쌓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늘 따라다닌다. 큰맘 먹고 공연장에 갔다가 엉뚱한 타이밍에 혼자 박수 치면 어쩌지? ‘고인물’들이 따갑게 눈치라도 준다면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것이다.
『당신의 저녁에 클래식이 있다면 좋겠습니다』는 장벽 너머로 클래식 음악을 힐끔거리는 이의 눈을 마주치고는 덥썩 손을 붙잡아 꼭 쥐여주고 싶은 책이다. 누구보다 클래식을 사랑하고 그 세계에 깊이 관여했던 월드클래스 바이올리니스트가 유쾌하고 따뜻한 안내자로 나선다.
안내자가 가장 먼저 전할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200여 년 전 베토벤 교향곡 5번 초연 공연장의 맨 앞줄 정중앙에 앉았던 사람들만큼이나 클래식을 즐길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렇다. 클래식은 서양에서 1500년간 정식으로 작곡된 유일한 음악이었고 실로 누구나 향유하던 것이었다. 자격이 충분하다는 말은 사실 아무런 자격도 필요 없다는 말이다. 클래식 음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은근한 눈치든 노골적인 신호든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우리와 클래식 음악의 사이를 가로막아왔다. 안내자는 벽 앞에서 주춤하는 우리에게 단호하고 명쾌하게 말한다. 그런 꼰대들, 일명 고상쟁이들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말라고. 우리의 안내자는 엘리트주의와 특권 의식의 벽을 통쾌하게 부수어버리고는 백배 좋은 걸 건넨다. 바로 용기와 환대다.
『당신의 저녁에 클래식이 있다면 좋겠습니다』는 클래식을 전혀 모르지만 이제부터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훌륭한 입문서가, 예전부터 클래식을 사랑해온 사람에게는 새로운 방식으로 클래식을 향유하는 기쁨이 되어줄 것이다. 저자가 구사하는 발칙하고 신랄한 유머 덕분에 클래식에 아주 약간의 관심만 있을 뿐 아무런 소양도 없는 문외한도 충분히 즐기며 읽을 수 있다. 나아가 당신이 클래식 세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만큼 더 깊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유머, 잡담, 위트,
내 멋대로 클래식을 사랑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
저자는 세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고 명문 줄리아드스쿨을 거쳐 카네기홀에 섰다. 그녀는 첫눈에 클래식에 반했지만 그 세계에 속할수록 클래식은 숨 막히는 경쟁이자 달성해야만 하는 직업적 성취가 되어갔다. 거기서 빠져나온 후에야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서의 클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클래식 업계를 탈출하지 않았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내내 고상한 척하고 있어야 했을지도, 경쟁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르느라 농담 한마디 할 여유조차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렇게 평생 클래식계에 속해 있었던 경험을 살려 저자는 누구보다 신랄한 유머로 클래식계의 고상쟁이들을 고발한다.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클래식 음악계 인물들의 전형적인 이미지부터 줄리아드스쿨에서 겪었던 극심한 경쟁심의 다소 불건강한 표출 방식까지. 그래미어워드 트럼펫 연주자인 크리스 보티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좋은 책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웃길 줄은 몰랐다. 평소에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면, 혹은 들으려고 시도했다 실패한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
안내자는 클래식을 구체적으로 좋아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더 깊이 초대한다. 50여 개의 그림 자료와 200여 개의 각주를 통해 요모조모 짚어주는 시대, 작곡가, 형식별 필수적인 지식을 숨 쉬듯 자연스레 흡수하고 나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즐길 준비 완료!’ 그때 안내자가 엄선한 20여 개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200여 곡의 추천곡을 큐알 코드로 바로 들어보자. 나만의 클래식 취향을 알 수 있다. 어느새 불 꺼진 방에서 바흐를 들으며 낭만적인 저녁을 보내는 모습이 나의 삶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클래식계에 떠도는 미신, 저주,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악기의 가격 같은 알아도 별 쓸데는 없지만 기막히게 흥미로운 잡다한 이야기들도 가득하다. 한 가지만 소개해보자면 클래식 세계에는 작곡가의 9번 교향곡이 그 사람의 마지막 교향곡이 된다는 미신이 있다. 이 설은 말러 때문에 유명해졌다. 말러는 베토벤, 슈베르트, 드보르자크가 모두 9번 교향곡을 완성하고 나서 죽은 것 때문에 아홉 번째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 8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대지의 노래〉라는 교향곡 비스무리한 곡을 작곡함으로써 저주를 물리쳤다고 생각하고 9번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10번 교향곡을 완성하기 전에 죽었다. 말러 이후에도 시벨리우스와 본 윌리엄스가 이 저주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안내자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클래식 세계의 경험이 담긴 이야기를 깔깔거리며 읽어 내려가다 보면, 견고해 보이기만 했던 벽이 언제는 있었냐는 듯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환대의 손길에 용기 내어 클래식의 세계에 한 발짝 들어온 이들에게 이 책은 최고의 입문 수업이 되어줄 것이다.
“불 꺼진 방에서 바흐를 듣는 것만큼 낭만적인 저녁은 없다.”
읽다 보면 스며드는 클래식 입문 수업
저자 아리아나 워소팬 라우흐는 일곱 살 때 멘델스존 협주곡을 듣고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세 살 때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이후 까다롭기로 소문난 줄리아드스쿨의 오디션을 통과해 학사 및 석사학위를 받고 카네기홀, 보스턴 심포니홀, 케네디센터, 베를린 필하모니센터 등의 세계적인 무대에 서기까지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화려하고 빛나는 세계의 이면에는 창문 없는 방에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천천히 영혼의 목을 조르던 시간이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치열한 경쟁, 기술적 숙달을 이루기 위한 숨 막히는 완벽주의. 라우흐에게 클래식은 더 이상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바이올린을 내려놓은 이후에야 그녀는 멘델스존 협주곡을 듣고 처음 클래식과 사랑에 빠졌던 기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따뜻하고 유쾌한 안내자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어쩌면 독자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은 클래식에 관한 알찬 교양 지식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쏟아지는 배꼽 빠지게 웃긴 농담도 아니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을 소리 내어 좋다고 말하는 선언이자,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마음껏 즐기겠다는 다짐이며,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서 낄낄거리며 웃고 떠드는 소속감이다. 때로는 클래식 입문 강의 교수님 같기도 때로는 지나치게 흥분한 ‘덕후’ 같기도 한 우리의 안내자를 따른다면 클래식 세계 입성, 문제없다!
기쁠 때 클래식을 듣자. 환희의 함성을 지를 수 있을 것이다. 슬플 때 클래식을 듣자. 비통한 울음을 터뜨릴 수 있을 것이다. 지치고 고단할 때 클래식을 듣자.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깊은 위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때로는 자기 자신과 더 깊이 연결되는 통로가 되어주고, 때로는 앞서 살아간 작곡가들의 삶을 고스란히 배우는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자, 해는 지고 저녁이 되었다. 당신의 인생에 다가오는 클래식을 기꺼이 환대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