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까지만 해도 ‘카뮈’는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에겐 빛나는 별이기도 했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난해하고 어둡기만 한 별이었다. 특히 『이방인』을 두고 누구도 재미있다, 잘 읽힌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는 철학서를 읽듯 한 줄 한 줄을 밑줄 그으며 읽는다고 자랑하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누구도 『이방인』을 두고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독자들의 이해력이 높아져서라고 믿겠지만, 사실은 그때의 책이 쇄를 거듭하면서 문장 문장이 바로잡혀서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사이 나 역시 여러 번 재번역을 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작품의 짧은 양과 단순한 문장 덕분이었다. 그리고 9년, 카뮈는 내 인생행로의 북극성이 되었고, 지도가 되어 나를 지금의 길로 인도했다.
『이방인』이 워낙 논란이 되었던 책이기에 누군가는 내 다음 번역 작품은 당연히 이 책 『페스트』가 될 거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이후 프랑스어 작품 『어린왕자』를 번역하고 나서는 오히려 『1984』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 등의 영어소설을 번역했던 것이다. 매 권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모두가 결국 ‘이방인’이라는 별이 밝혀준 이 책으로의 노정은 아니었을까. 서로 다른 언어들끼리의 변환으로서의 번역이라는 세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준비과정으로서의.
그만큼 이 책은 어렵다. 내용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번역이 어렵다는 것이다. 양도 그러하거니와 작품 속 문장들이 『이방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문이 많거니와 수려하면서도 깊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방인』이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포용하고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상황’으로 보여주는 측면이 강했다면, 『페스트』에서는 의사 리외를 통해 인간의 연대와 행동, 헌신, 실존적 윤리를 ‘문장’을 통해 보여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그에게 대중적 열광 외에도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기기도 하는데, 그는 수락 연설에서 보편성을 강조한다.
“예술은 제게 고독한 즐거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통의 기쁨과 고통에 대한 특별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으로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예술가가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도록 의무지웁니다. 그것은 예술가를 가장 겸손하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진실에 복종시킵니다. 그리고 종종 자신이 다른 존재라고 느껴서 예술가로서의 운명을 선택한 사람은, 곧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만 자신의 예술과 그 다름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술가는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없어서는 안 되는 아름다움과 자신을 떼어낼 수 없는 공동체 사이의 중간에서 자신을 제련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가가 어떤 것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심판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바로 그랬다. 그의 말마따나 이 책 『페스트』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잘 읽히지 않는 어려운 소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페스트』 역시 초기의 이방인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잘 읽히지 않는 책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다만 양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역시 번역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앞서 낸 같은 책 『역병』 역시 다시 보니 번역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당연히 잘 읽히지 않았다. 의욕만 앞서 서두른 결과일 테다. 그런데 이런 말이 우리 사회에선 오히려 반발을 살 거라는 것도 나는 이제 잘 알고 있다.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10년이 지나 다시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래도 그게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누군가에게 반드시 가야만 하고, 갈 수 있는 길의 지도가 되고, 어두운 밤길의 작은 별 하나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쁠 일은 없을 것이다.
편집자의 말 _ “카뮈의 인물들을 따라 함께 걷고, 생각하고, 질문한다”
지금까지는 카뮈의 책을 읽으려면 “이번에는 끝까지 한번 읽어봐야지, 도전해 봐야지” 하는 결심 같은 것이 전제되었다. 어렵다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정서 번역가의 『이방인』이나 『페스트』는 그런 결심이 전혀 필요 없다. 몰입할 시간과 공간만 있으면 된다. 다만 조금 진지할 필요는 있다. 그래야 카뮈의 인물들을 따라 함께 걷고, 생각하고,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전염병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전염병은 단지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이 소설에서 카뮈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이다. 페스트(역병)가 창궐하는 도시에 갇힌 인간들의 다양한 면면, 인류애, 인간 위에 군림하는 법과 제도, 온갖 모순(카뮈는 이를 ‘페스트’라고 본다)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지식인의 고통 등을 다루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한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이정서 번역가는 원작의 문장 구조 그대로, 쉼표 마침표까지 살려내는 것을 중시한다. 왜 그럴까. 읽다 보면 안다. 작가와 함께 걷고, 쉬고, 멈추고, 한탄하다 보면, 작가의 숨결과 깊은 속내가 우리에게 더욱 육박해 온다.
또한 직역은 딱딱하고 거칠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리시라. 분명히 “이런 복잡한 구조의 문장을, 어떻게 이렇게 유려하고 아름답게 번역해낼 수 있을까” 밑줄 긋고 싶어지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