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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가장 문제적인 작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완성한 혼신의 유작
“내가 삶과 세계에 대해 느끼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을 여기에 담았다.” - 미시마 유키오
1970년 11월 25일, 미시마 유키오는 오랫동안 매달렸던 소설을 마침내 탈고했다. 그가 출판사에 건넨 원고의 마지막 줄에는 ‘『천인오쇠』 끝. 1970년 11월 25일’이라는 부기가 달려 있었다. 이 날짜가 가리키는 것은 소설이 완결된 날이자 작가 자신의 기일이 된 날이었다. 향년 45세의 일이었다.
미시마가 자신의 생과 함께 마감한 작품은 ‘풍요의 바다’ 4부작의 마지막 권이었다. 1965년 『봄눈』 연재를 개시해 1970년 『천인오쇠』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5년간 그는 이 소설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풍요의 바다’ 4부작의 배경은 메이지 시대 말기부터 1975년까지로, 미시마의 생애(1925~1970)는 그 한복판에 정확히 걸쳐져 있다. 그가 자신의 시대 위에 소설 속 시대를 겹쳐 올리며 묘출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풍요의 바다’ 4부작은 11세기 일본 산문 문학인 『하마마쓰 중납언 이야기(浜松中納言物語)』를 모티프로 한 연작 소설이다. 윤회환생을 소재로 한 ‘모노가타리’의 구성을 순문학 장편에 도입한 것은 당시 파격적인 시도였다. ‘풍요의 바다’ 1권의 주인공은 2권, 3권, 4권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환생해 다른 시대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시리즈 전체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 혼다 시게쿠니는 후작가의 후계자, 정치에 빠져든 열혈 청년, 타이의 공주, 사악한 고아라는 네 개의 환생한 자아를 연결하는 고리로, 이들 모두를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 네 자아에 자신의 정체성을 나누어 녹여내고, 궁극적으로는 인식자 혼다를 통해 자신을 대변하고자 했다. 시리즈 마지막 권에서 노인이 된 혼다는 그간의 모든 일들이 실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궁극의 허무에 도달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이르렀다.’ 혼다의 이 깨달음을 최후의 문학적 전언으로 남기고 미시마 유키오는 목숨을 끊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그가 연출해 보인 정치적 쇼보다 더 그의 진실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시대를 관통하는 명작, 비길 데 없는 걸작을 탄생시킨 미시마 군과 동시대인이라는 행복을 축하하고 싶다. 미시마의 찬란한 재능은 이 작품에서 위험할 정도로 격정적인 정열로 순수하게 승화되어 있다. 이 새롭고 운명적인 고전은 아마도 국가와 시대, 논평을 넘어 살아있을 것이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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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아름다움과 잔혹함, 긴박하고 흥미진진한 최고의 걸작
‘풍요의 바다’ 4부작 각 권 줄거리 소개
1권 봄눈(春の雪)
마쓰가에가의 후계자 기요아키는 빼어난 미모로 주위의 선망을 받는 탐미적 몽상가이다. 그는 아야쿠라 백작의 딸 사토코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냉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사토코와 황족의 결혼이 결정되자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사토코와 금지된 관계에 빠져든다. 기요아키와 반대로 냉철하고 이지적인 그의 친구 혼다는 배후에서 그들을 긴밀히 돕지만 둘은 기다리는 것은 파국의 결말뿐이다. 이루지 못한 생의 집념은 다음 생을 향해 나아가며, 혼다는 그 모든 것의 목격자로 남겨진다.
2권 달리는 말(奔馬)
깊은 우정을 나눈 기요아키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지 십팔 년, 어느덧 서른 여덟 살이 된 혼다 시게쿠니는 오사카 항소원의 판사로 지내던 중 우연히 오미와 신사의 검도 시합에서 아름답고 절도가 넘치는 한 젊은이의 옆구리에 생전의 기요아키와 똑같이 세 개의 점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순수한 소년 이사오는 부패한 정치, 피폐한 나라를 정화하기 위해 재계 주요 인물의 암살을 계획하다 경찰에 붙잡히고, 혼다는 이번만은 기요아키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이사오를 구하기 위해 판사직부터 하여 모든 것을 내던진다.
3권 새벽의 사원(暁の寺)
대형 소송의 건으로 태국을 방문한 마흔일곱 살의 혼다 시게쿠니는 그곳에서 자신이 일본인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일곱 살의 사랑스러운 월광 공주를 만난다. 과연 공주는 이사오가 체포된 날이나 기요아키와의 일을 정확하게 대답하지만 세 개의 점은 보이지 않는다. 이후 열여덟 살이 된 월광 공주 잉 찬이 일본에 유학을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별장에 초대하는 혼다. 혼다는 아름답고 관능적으로 성장한 잉 찬의 몸에 환생의 증거, 즉 세 개의 점이 있는지 집착한다. 위험한 관음증적 욕망과 잉 찬의 진실이 뒤섞이며 이야기는 기묘한 절정으로 치닫는다.
4권 천인오쇠(天人五衰)
어느덧 일흔여섯 살이 된 혼다 시게쿠니는 우연히 시미즈항에서 일하고 있는 열다섯 살의 도루를 발견한다. 언 듯이 창백한 아름다운 소년의 옆구리에서 세 개의 점을 발견한 혼다는 그를 양자로 삼아 치밀한 교육을 수행한다. 하지만 도루는 점차 악마적인 본성을 드러내며 노년의 혼다를 학대하기에 이른다. 정말 기요아키의 환생자라면 스물한 살이 되기 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 혼다는 육십 년 만에 월수사의 주지가 된 사토코를 찾아간다. 목격자 혼다를 기다리고 있는 환생 굴레의 끝은 과연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