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을 위해 2025년까지 사후 연보 수록
영화, 드라마, 연극, 가요, 뮤지컬이 된 시인
민족의 한을 시로 위로한 소월은 나라를 빼앗긴 깊고 무거운 어둠의 시대를 가볍고 찬란한 빛으로 바꿔준 사랑의 시어들로 100년이 된 지금도 우리에게 고단한 일상을 위로해 주고 메마른 감성을 촉촉히 적셔주는 치유의 공감을 느끼게 해준다.
소월의 시는 한국 시문학의 꽃 중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은 1925년 처음 간행된 이후 650종이 넘게 출간되었다. 그리고 그의 시 제목으로 영화는 1957년을 시작으로 8편이나 제작돼 상영되었고, 드라마는 1982년 MBC를 비롯하여 5편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TV단막극이나 다큐멘터리, 연극 등은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다. 또한 가요와 가곡으로도 60여 곡이 만들어 졌으며 특히 1977년 TBC에서 시집에 수록되지 않는 유작을 찾아 안치행 작곡가를 통해 만들어진 ‘실버들’은 1978년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고, 노래를 부른 희자매는 년 말에 선정하는 MBC가요 대상을 타기도 했다.
이렇게 김소월은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이자 사랑받는 시인으로 해외 출간도 이어지고 있다.
이 시집은 『진달래꽃』에 실린 첫 발간 당시의 의미를 살리되, 표기법은 원시의 느낌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게 현대어를 따름으로써 읽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김소월은 그 작품에 여성을 화자(話者)로 두고 한과 슬픔, 벗어나지 못하는 상처를 절제하여 담고 있다. 김소월 작품에는 일제에 짓밟힌 조국과 민중의 아픔이 절절히 시의 중심에 녹아있다. 때문에 가혹한 식민지시기를 보낸 시대와 이후 한국전쟁과 독재정권을 거친 우리 민족의 정서에 일치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진달래꽃』 시집에 실려 있어서 교과서에도 실린 「초혼(招魂)」이란 시에는 김소월의 가슴 아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1904년 김소월이 태어나고 2년 만에 아버지가 일본인들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 이상자가 되는 바람에 광산을 운영하는 할아버지 댁으로 이사하여 성장했다. 소월은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평북 정주의 조만식 선생이 교장으로 계시는 오산학교로 진학하여 스승인 김억의 도움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고 문단에 데뷔까지 하게 된다.
한편 김소월은 오산학교를 다닐 때 3살 많은 "오순"을 알게 된다. 둘은 서로 의지하고 상처를 보듬어주며 사랑을 나눴지만 그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소월은 오산학교 재학 중인 1916년 14세 때 할아버지 친구의 손녀인 홍단실과 강제로 결혼한다. 그 당시에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몇 년 후 오순이도 19살이 됐을 때, 억지로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연락은 끊겼지만 소월은 힘들 때 자신의 아픔을 보듬어주던 오순을 잊지 못하는 심정을 담아 시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사이에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난다. 결혼 후 3년이 되든 해 오순이가 그의 남편에게 맞아 사망한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심한 의처증에 걸핏하면 폭력을 일삼는 인간이었다. 소월은 아픈 가슴을 억누르고 오순을 떠나보내면서 사랑했던 그녀를 위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시가 「초혼(招魂)」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도 그리움, 슬픔, 아픔이 배어있어 「진달래꽃」에 이어지는 김소월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스토리텔링이 너무 좋다.
김소월 작품 세계의 주체가 여성으로 표현되는 것은 어머니와 숙모로부터 받은 영향이 큰 듯하다. 어머니는 남편이 일본인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이상자가 되자 아들 김소월에게 기대며 지나친 애착을 가졌고, 숙모 계희영은 신학문에 눈을 뜨고 여러 문학작품을 섭렵한 인물로서 조카 김소월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소월은 연이은 사업의 실패와 미래라곤 없는 듯이 느껴지는 암울한 현실과 경제적 빈곤, 문우 나도향의 요절과 이장희의 자살 등은 김소월이 삶을 포기하고 비관적 운명론에 빠지게 만들었다. 5, 6년에 불과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시를 창작하며 천재적 재능을 보이던 김소월은 결국 끝없는 회의와 실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1934년 12월 23일 아편을 먹고 자살했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사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소월은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지만 그의 작품은 교과서에도 실리고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가곡과 가요로 만들어져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으며, 금년에는 ‘어제의 시는 내일의 노래가 될 수 있을까’라는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공연되었다. 이렇게 김소월 시인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가장 가까이서 함께 지내는 시인이다. 윤동주가 한글을 가장 사랑한 시인이라면, 김소월은 한글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