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은 플라톤을 어떻게 이해하고 가르쳤을까?
플라톤 철학의 해석과 전승 전통을 원전으로 읽는다
플라톤은 살아생전에 이미 유명인이었고, 그가 서기전 387년경에 세운 학교인 아카데메이아는 그의 철학에 매료되어 가르침을 구하던 수많은 영특한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플라톤 철학의 해석과 전승의 전통은 이후 서기 6세기까지 다양한 조직과 형태를 취하며 무려 900년 넘게 지속하였고, 다채롭고 복잡하면서도 고도로 체계화된 플라톤주의를 형성하게 된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이른바 ‘중기 플라톤주의’라고 철학사에서 부르는 서기 2세기에 활약했던 두 명의 플라톤주의 철학자, 알비노스와 알키노오스가 남긴 플라톤 철학의 교과서들을 번역한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책에서 옛사람들이 플라톤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했으며, 플라톤이 언급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플라톤 식으로 답변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오늘날 플라톤 철학에 관심을 갖고서 그의 작품을 읽어 보려는 독자들에게 좋은 참고서이자 지침서가 된다.
배움의 목적과 학생 처지에 따른 독서 커리큘럼 제시 - 알비노스 『플라톤 철학 서설』
초심자는 정화를 위한 대화편, 경험자는 『알키비아데스』 먼저 읽기 권유
‘플라톤 철학 서설’이라는 제목으로 옮긴 알비노스의 『서설』은 그의 소실된 작품인 『플라톤 작품 입문』 앞에 붙은 짧은 ‘서문(Pro-logos)’ 정도로 여겨왔다. 하지만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으려는 독자에게 ‘사전에 설명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글로 저술되었다고 볼 만하다. 철학적 대화란 무엇이고, 대화편은 어떤 것들로 분류할 수 있으며, 어떤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지를 여섯 개의 짧은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알비노스는 배움의 목적과 학생의 처지에 따라서 대화편을 읽는 순서나 출발점이 다양하다는 것을 전제로 크게는 이상적인 학생과 보통의 학생을 나누어 대화편의 독서를 제안한다. 이상적인 학생은 기본 소양을 갖추고 주변 환경에 얽매이지 않은 학생을 말하는데, 이들에게는 철학 입문에 해당하는 『알키비아데스』(철학 입문)를 읽고, 『파이돈』과 『국가』, 그리고 『티마이오스』를 권한다. 플라톤의 사상을 배우려는 보통의 학생에게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정화하는 대화편, 잠든 지혜를 일깨우는 산파술적인 대화편, 개별 학문을 다루는 설명적인 대화편, 진리를 증명하는 논리적인 대화편, 소피스트들에게 속지 않는 논박적인 대화편 순으로 읽기를 제안한다.
한편 알비노스는 트라쉴로스가 제안한 소크라테스의 죽음 사건을 소재로 한 4부작 독서법(『에우튀프론』-『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을 소개하면서도 이런 식의 독서는 지혜의 획득에는 유용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플라톤 철학 주제 총망라한 36강 강의록 - 알키노오스 『플라톤 사상 강의』
변증술과 논리학, 연역과 귀납 … 이질적 철학 용어와 방법론을 과감히 도입
『플라톤 사상 강의』는 플라톤 철학의 주요 주제들을 총망라한 36장으로 구성된 ‘강의록’이다. 제목에서 ‘사상’으로 옮긴 dogma(도그마)는 플라톤 이후로 ‘체계화된 사상’이나 ‘학설’을 뜻하는 용어인데, 이 이름에 걸맞게 알키노오스는 여러 대화편에 흩어져 있는 플라톤의 사유를 하나의 사상 체계로 완결 짓고자 시도한다. 여기에는 대화편에 나오지는 않지만 다른 철학자들이 제기했거나 다루었던 문제들을 플라톤 식으로 설명하는 작업도 포함한다.
이러한 플라톤 사상의 유기적인 조직 과정에는 이질적 사상의 요소들을 과감히 도입한 점도 눈에 띈다. 알키노오스는 변증술과 논리학, 이론학과 실천학 등 소요학파나 스토아학파에 익숙한 내용으로 책을 구성하고 연역/귀납이나 질료/형상 등 아리스토텔레스 용어에 기대기도 한다. 이것은 서기 2세기에 이르러 플라톤 사상의 체계화된 면모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질적인 요소들과의 혼합을 통한 변모를 드러낸다고 할 것이다. 알키노오스가 ‘신’을 ‘이데아’보다 더 우선적이며 원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나 윤리학에 견주어 정치학을 소략히 다루는 것도 당대를 살아간 플라톤주의자들이 공유하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대 후기와 초기 중세 철학의 출발점이자 마중물 - 중기 플라톤주의 철학
앗티코스, 플루타르코스 작품의 후속 번역과 연구로 이어가
이 두 작품의 작자를 한데 일컫는 철학사적 구분인 ‘중기 플라톤주의’에서 “중기”는 서로 다른 두 시기 사이의 ‘과도기’ 또는 ‘매개’의 의미를 지닌다. 중기 플라톤주의자들은 헬레니즘 철학과 신플라톤주의 사이를 메우는 사상적 경향을 띠면서 제국기의 로마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플라톤 철학의 교수와 전승을 고민했다. 이들은 이미 완성된 철학적 사유를 선명하게 풀어내고 온전한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지만, 다양한 대화편의 주제들을 해석하는 방법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을 취했다. 알비노스나 알키노오스가 플라톤의 철학을 자신의 말로 풀어간 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를 품었던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에 드러난 반(反)플라톤적인 모습에 격렬히 저항한 이들도 있었다. 앗티코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추종자들이 플라톤의 가르침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비판했고, 『영웅전』의 저자로 유명한 플루타르코스 역시 매우 엄격한 플라톤주의자였다. 옮긴이 김유석은 이러한 다른 입장의 철학 작품 번역으로 ‘중기 플라톤주의’에 관한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