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던지는 글쓰기, 르포르타주의 위대한 고전
문학적 감동과 역사적 면밀함을 모두 갖추다
버마에서의 제국 경찰 활동을 참회하는 의미로 자신이 체험한 부랑자 생활을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 담아 명망을 얻어가고 있던 조지 오웰은,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출판인 빅터 골란츠로부터 청탁을 받는다. 당시 영국 북부 지역에 만연해 있던 탄광 노동자들의 실업 문제에 대한 르포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오웰은 1936년 초 두 달에 걸쳐 위건, 리버풀, 셰필드, 반즐리 등 랭커셔와 요크셔 지방 일대의 탄광 지대에서 광부의 집이나 노동자들이 묵는 싸구려 하숙집에 머물면서 면밀한 조사 활동을 벌인다. 꼼꼼한 조사 내용과 생생한 상황 묘사 덕에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학자였던 존 스티븐슨 교수는 “실업을 다룬 세미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이라 부르기까지 했다. 청결하지 못한 하숙집 풍경과 그곳 사람들(1장), 지옥과도 같은 탄광 안의 모습(2장), 광부들의 임금과 실업자 가정의 생활비 등(3, 5, 6장)과 각각의 주택 구성과 재건축 문제에 대한 메모(4장)까지 그 모습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참혹한 실상에 충격을 감추기 어렵다가도 문득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얼마나 더 나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오웰은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라며 “저 아래 누가 석탄을 캐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지만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46쪽)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역자 이한중은 오늘날에도 “문명의 안락을 누리는 계층이 있으려면 누군가 죽도록 위험한 환경에서 기막힌 노역에 시달리는 착취를 당해야만” 한다며 “하청회사의 비정규직, 양산되는 실업자와 취업포기자, 기본 생활이 안 되는 숱한 영세 자영업자, 내국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일을 받아 하는 외국인 노동자” 등 9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노동문제를 지적한다. 책에 추천의 말을 보낸 박노자 교수는 책 말미에 나오는 명언 “연합해야 할 사람은 사장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지는 모든 이들”(302쪽)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오웰의 사회주의란 결국 “노동하는 인간을 ‘윗사람’ 앞에서 굽실거리는 ‘개미’로 만드는 자본 독재에 대한 모든 상식적, 양심적인 사람들의 반란”이라는 것이다.
“나는 심지어 지금도 만일 임신한 여자들이 땅속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석탄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석탄 없이 살기보다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리라 생각한다. 어떤 육체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_48쪽
진보 세력을 위한 ‘악마의 대변인’ 조지 오웰
『1984』의 씨앗을 내비치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탄광 지대에서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한 르포가 1부(1~7장)라면, 2부(8~13장)는 당시 영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오웰의 에세이다. 이 부분에서 오웰은 당시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어가던 좌파 ‘지식인’들을 호되게 비판하는데, 이 때문에 이 책의 출판인인 빅터 골란츠는 2부의 내용이 출판인의 견해와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밝히는 서문을 덧붙여 출간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후에 『카탈로니아 찬가』와 『동물농장』에 대해 출간을 거부하기까지 한다.
탄광 노동자들의 고된 작업과 실업자 가정의 처참한 생활환경을 확인한 오웰이 선택한 해법은 사회주의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회주의는 “파시즘의 맹공에 후퇴”하고 있었고, 오웰은 “지금처럼 계급문제를 어리석게 다룬다면 사회주의자가 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쫓아버려 파시스트로 만들어버릴 수”(229쪽)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2부의 전반부(8~10장)에서 ‘하급 상류 중산층’(그는 스스로를 “상류 중산층 가운데 하급에 속한다”고 소개한다)이었던 자신의 예를 들며 계급문제를 감상적인 접근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2부의 후반부(11~13장)에서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생각 있는 보통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적의를 보이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 사회주의를 공격”(229쪽)한다. 11장에서는 “이론적으로는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해 애쓰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구질구질한 사회적 위신에 악착같이 매달린다는”(233쪽) 중산층 사회주의자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12장에서는 보다 심층적으로, 산업화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든, 사회주의 자체가 가진 위험성을 지적한다. “기계가 압도함에 따라 손상되지 않을 인간 활동이 ‘과연’ 있겠느냐”(261쪽)는 질문은 사회주의 역시 산업화에 대한 성찰 없이 물질적인 진보에 안주하게 될 때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예견이고, 이는 바로 『1984』의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발전된 형태의 사회주의가 중산층에게만 국한된 이론이라는 점이다. 전형적인 사회주의자는 두려움으로 덜덜 떠는 노부인들의 상상과는 달리 기름투성이 작업복에 목소리가 걸걸하며 인상 험악한 노동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5년 뒤면 부잣집 딸과 결혼하고 가톨릭교도로 개종할 가능성이 다분한 젊고 속물적인 과격파다.” _2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