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론
평설
이서현 시인의 첫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박 덕 은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서현 시인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청룡부락에서 1964년 1월 15일에 아버지 이병희 씨와 어머니 김길남 씨 사이에서 4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성전북초등학교를 거쳐, 성전중학교까지 다니다가, 고등학교 때 광주로 올라와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현재 GA Korea에 재직 중이다.
1988년 박행진 씨를 만나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박경호, 박경원, 딸 박미나를 두고 있다.
취미로는 시와 수필 쓰기, 플룻 연주, 두 달에 한 번꼴로 산이나 바닷가 찾기 등이다.
2024년 3월 월간지 《문학공간》 시 부문 신인문학상, 2024년 5월 계간지 《문학춘추》 신인문학상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문단 데뷔하여, 광주문인협회 회원, 화순문인협회 이사, 한실문예창작 회원, 방그레문학회 회장, 낯설기문학회 회장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문학상으로는 박덕은미술관 디카시 대상, 치유문학상 우수상, 산해정 문학상 최우수상, 한용운 문학상 특별상, 왕비용녀 문학상 우수상, 봉황대마타리꽃 문학상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이서현 시인의 시 세계를 탐구해 보기로 하자.
조문하기 위해 먼 길 달려온 바람이
아직도 시간에 배어든 울음 닦아내는
선사시대의 무덤
흙 되어 흔적만 남아 있어도
생과 사의 팽팽한 경계
증언하고 싶은
돌의 수의壽衣 입고
한 번 섬긴 주인
역사의 길로
길이 길이 보전해 온
우직함의 힘
이승의 먼 기억이 은밀하게 살아있는
낮과 밤 껴입으며
수천 년 눈보라 휘날리고
비바람 몰아치는
고난 이겨내고
적막과 어둠이 범람해도
긍정과 희망의 자세 대물림한
후손들의 정성 어린 역사관에
유네스코 등재 쾌거 이뤄
명예의 전당 됐다
몽유와 악착의 해 질 녘을 걸어 나온
어느 골짜기 돌무덤이
세계유산 될 거라
그 시절 그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세월 지났지만 영혼들
이 풍진 세상 누리고 있다.
- 「화순 고인돌 공원」 전문
제2회 왕비 용녀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화순 고인돌 공원을 돌아보고 있다. 고인돌은 선사 시대의 돌무덤을 말한다. 고인돌은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고인돌 밀집 분포권을 형성하고 있다. 고인돌 공원에 가면 몇만 년의 시간을 산 선사 시대의 바람과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움집에서 막 나온 듯한 번뜩이는 햇살이 우리를 반긴다. 그 햇살은 오늘도 그 시절이 춥고 외롭지 않도록 돌이불로 죽음을 덮어주며 감싸준다. 족장이라는 이름으로 들판을 내달렸던 단단한 근육이 넓적돌로 남아 있어 그 돌을 만지면 작살을 움켜쥐었던 힘이 느껴진다. 뿔나팔을 불며 정오의 짐승을 향해 석촉을 던졌을 것이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먼데서 북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죽음이 고여 있는 돌에는 비파형 동검을 켜며 부족의 안위를 기원했을 선사 시대의 기도가 한데 모여 있다. 바람은 조문하기 위해 먼 길 달려오고, 무덤은 아직도 시간에 배어든 울음을 닦아내고 있다. 돌의 수의 壽衣 입고, 한 번 섬긴 주인을 길이길이 보전해 오고 있는 고인돌, 수천 년 눈보라, 비바람 이겨내고, 긍정과 희망의 자세를 대물림하며, 유네스코 등재와 명예의 전당이 되기까지, 몽유와 악착의 세월 걸어 나온 돌무덤, 지금에 와서야 그 영혼들이 풍진 세상을 누리고 있다. 이미지 구현의 솜씨가 남다르다. 낯설게 하기, 즉 새로운 해석의 폭도 넓고 신선하다. 시의 특질을 유지하면서, 독자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긴장감도 좋다. 시의 맛이 살아 있어, 독자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
부서진 어제와 말발굽 소리 밀려들고
명분 잃은 저녁의 강은 짓밟혀
몰락한 백제의 삼천궁녀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
슬픔과 눈물의 연대기,
그 부재와 궁핍의 계절 속에서도
한 주인만 섬기겠다는 절개로
그 육신 벗어던지고
영혼만 훨훨 길 떠났다
입술에 끈적이며 달라붙는
이승의 울음 뒤로하고
함께 가는 그 길
외롭지는 않았겠지
떨리는 심장 던져놓고
무섭지는 않았을까
망설이는 햇살도
주저앉은 오후도 없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꽃다운 나이에 낙화 되어
별 되어 버리다니
유구한 역사의 배 타고
노을과 구름의 주소지인
백마강 돌고 돌며
고란사의 종소리와 함께
천년의 침묵 펼쳐 향기롭다는
연꽃으로 다시 피어날까.
- 「낙화암」 전문
제2회 봉황대 마타리꽃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낙화암에 이르러 느낀 소회를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낙화암은 부여군 부소산 북쪽 백마강(금강) 변에 서 있는 바위 절벽이다. 백제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점령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지는 모습이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아 낙화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시는 그 전설에서 출발하고 있다. “부서진 어제와 말발굽 소리 밀려들고/ 명분 잃은 저녁의 강은 짓밟혀/ 몰락한 백제”의 궁녀들은 떠밀리고 떠밀려서 높은 절벽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동서남북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그곳에서 참담을 둘러쓰고 캄캄한 저 강물로 몸을 던졌을 것이다. 한때는 저 절벽이 강물 소리로 강 건너편의 나무를 끌어당기며 숲과 초록을 완성했을 것이다. 융융히 흐르는 강의 신념에 동화되어 절벽은 고요히 사색에 잠기기도 했을 것이다. 아픔이 큰 만큼 “고란사의 종소리와 함께/ 천년의 침묵 펼쳐 향기롭다는/ 연꽃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시적 화자는 소망하고 있다. 부서진 어제와 말발굽 소리 밀려드는 곳, 명분 잃은 저녁의 강이 짓밟혀, 몰락한 백제의 궁녀들이 몸을 던졌다는 곳, 슬픔과 눈물의 연대기와 절개가 새겨져 있는 곳, 이승의 울음 뒤로하고 떨리는 심장 던져놓은 곳, 꽃다운 여인의 나이에 별 되어 떨어진 곳, 유구한 역사와 노을과 구름의 주소지인 곳, 고란사의 종소리와 함께 천년의 침묵이 향긋이 펼쳐지는 곳, 이곳이 바로 낙화암이다. 전설의 흔적을 이미지 구현으로 재구성한 솜씨가 멋스럽다. 시어와 시심의 옷을 입혀 놓으니, 전설이 정겨워 보인다. 마음 열어 놓고, 역사를 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어, 행복하다. 시와 함께 전설 속으로 들어가서 배우고, 거기서 삶의 의미를 맛볼 수 있어서, 상쾌하다.
한 자세로 눈뜨고 잠드는
초록의 행과 열마다
녹음 흐르는 곳
아침 이슬 고요히 흐르는 곳
볕이 옷섶을 풀어놓는다는
양달의 아랫목처럼
햇살 가득 안고 방긋 흐르는 곳
푸른 하늘 쳐다보며 크게 웃으며 흐르는 곳
풋내 가지런한 봄의 이마 짚으며
별빛 머금고 은은히 흐르는 곳
달빛 안고 고요히 흐르는 곳
몇 겁의 생이 서러운 중심 같아
애달픈 사연 안고 조심스레 흐르는 곳
진한 녹차 향 살며시 흐르는 곳
알록달록 속삭이는 곡선의 바람이
춘설의 혹독함 이겨내고 만세 부르며 흐르는 곳
내 마음 모두 담아 이랑 이랑 흐르는 곳
그리움 안고 터벅 터벅 흐르는 곳.
- 「녹차밭」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녹차밭의 정경을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한 자세로 눈뜨고 잠드는/ 초록의 행과 열마다/ 녹음 흐르는” 곡선이 아름다운 곳이 녹차밭이다. 저 초록의 곡선이 4월 중순이 되면 우전차가 되고, 5월 초가 되면 세작(두물차)이 되고, 6월 초가 되면 중작(세물차)이 되고, 6월 이후에는 대작(네물차)이 된다. 그런 점에서 녹차를 마시는 것은 환한 초록의 곡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행하는 분들이 녹차를 즐겨 마시는 이유도 저 환한 초록의 곡선이 정신을 맑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녹음과 아침 이슬이 흐르는 곳, 햇살 안고 하늘 쳐다보며 방긋 흐르는 곳, 풋내 가지런한 봄의 이마를 짚고 별빛 달빛 머금고 은은히 흐르는 곳, 애달픈 사연 안고 녹차 향 살며시 흐르는 곳, 곡선의 바람이 만세 부르며 흐르는 곳, 마음 담아 이랑 이랑 그리움 안고 터벅 터벅 흐르는 곳, 이곳이 바로 녹차밭이다. “풋내 가지런한 봄의 이마 짚으며/ 별빛 머금고 은은히 흐르는 곳”에서는 어떤 재기 발랄한 느낌이 든다. “몇 겁의 생이 서러운 중심 같아/ 애달픈 사연 안고 조심스레 흐르는 곳”에서는 아픔 많은 느낌이 든다. 시적 화자는 녹차밭을 통해 인생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시를 들여다봐야 한다. 표현 하나 하나가 정감을 자극해내고 미적 가치로 휘감게 도와주고 있다. 다채로운 감성의 세계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섬세한 감성의 세계를 포착하여, 시심의 본향으로 이끌고 있어 행복감을 안겨 주고 있다.
정오의 바깥으로
소리와 얼굴 내밀며
시끌벅적하다
풀벌레 새 들
물소리 합주곡
무대에 한창이다
달달한 궁금과 안부로
촉촉이 젖은
생명 있는 모든 건
한줌의 생각과 즐거움 끌어올리는
환희에 흥얼거린다
흐르는 자세가 길이 된다는
물길 만들어 놓은
도랑물은 큰 바다에 가서
거사 치를 것처럼
힘차면서도 조용히 흐르고
바람의 말씀을 숭배한다는
태초 그대로인 또랑물
겨우 돌 위 넘으면서
쫄쫄 소리 내며
주위의 시선 모은다
작은 언덕 골짜기에선
겁 많은 물의 걸음들이
하얀 속치마 둘러쓰고
뛰어내려 부서지는
포말들
와글와글 물의 아우성으로 요란한
물가에 핀 나리꽃
님의 향기 맘껏 마시며
입 다물 줄 모르고
이곳에
발랄한 낮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해님 조용히 내려와
한쪽 다리 걸치고
숲의 노래 찬양한다.
- 「비 멈춘 숲」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비가 멈춘 숲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비는 웅크린 지상의 꿈을 깨우기 위해 주룩주룩 내린다. 물의 갈기를 휘날리며 공중을 달음박질해서 달려온다. 그 느낌을 시적 화자는 “정오의 바깥으로/ 소리와 얼굴 내밀며/ 시끌벅적하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멋지다. “달달한 궁금과 안부로/ 촉촉이 젖은” 비가 “한줌의 생각과 즐거움 끌어올리는/ 환희에 흥얼”거려 발랄하게 다가온다. 그 발랄한 느낌들이 “물소리 합주곡/ 무대에 한창”임을 알게 한다. 내리는 비로 인해 “흐르는 자세가 길이 된다는/ 물길 만들어 놓은/ 도랑물”을 낳고 그 도랑물은 다시 바다로 간다. 어찌 보면 지상의 모든 처음은 비에서 시작했다. 비의 달달한 궁금과 안부에서 모든 것은 출발했다. 정오의 바깥으로 소리와 얼굴 내밀며 시끌벅적한 곳, 풀벌레와 새소리와 물소리가 합주곡 무대를 이루는 곳, 생각과 즐거움 끌어올리는 환희에 젖어 흥얼거리는 곳, 도랑물이 물길 만들며 힘차면서도 조용히 흐르는 곳, 또랑물이 쫄쫄 소리 내며 주위의 시선을 모으는 곳, 골짜기에서는 물의 걸음들이 하얀 속치마 둘러쓰고 뛰어내리는 곳, 나리꽃들이 님의 향기 맘껏 마시며 좋아하는 곳, 해님이 한쪽 다리 걸치고 숲의 노래 부르는 곳 등으로 묘사되고 있는 숲이 정겹고도 아름답다. 자연 예찬이 곧 인생 예찬이 되고 있는 듯하다. 미적 가치의 그릇에 모인 감성들과 시선들이 모두 시의 특질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왜 시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다채로운 감성들이 시 속에서 꽃피어나기를 기도해 본다.
주룩주룩 할 말이 많다는 듯
비 내려 질퍽한 황톳길
오르막과 내리막 사이에서도
궤도를 이탈해 본 적 없는
맨발로 걷는다
작은 떡볶이 같은
발가락 사이로
흙이 뾰록뾰록 올라온다
요즘 대세가 되어 버린
맨발 걷기
말랑거리는 땅의 생각이 쫄깃해
인절미 같은 황토 위는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점자책처럼 꾹꾹 찍혀 있는
울퉁불퉁 돌 섞인 길
심장이 상큼하게 뛴다
죽은 사람도 소환하여
그리움의 화법으로 수정해
사랑의 첫자리와 말투 찍어내는
AI시대
흙 밟을 기회 없어
일부러 흙길 가야 하는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가는
운동
땅 위에 집 짓고 사는 우리는
닿을 수 없는 속도에 떠밀린
저녁의 둘레길에서
지금 어디로 가고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 「흙길 걷다」 전문
시적 화자는 황톳길을 걸으며 느껴오는 감회를 펼쳐놓고 있다. 산행을 하다 보면 맨발로 흙길 걷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흙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AI시대가 열린 것에 대한 반항일까. 사람은 자연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는 자각일까. 사람의 처음도 흙이요 사람의 마지막도 흙인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흙에서 멀어지며 살아가고 있다. 흙의 심장을 갖고 태어났는데도 우리는 대자연을 존중하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며 발가락 사이로 흙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으며 행복해한다. 소중한 흙과 하나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러면서 화자는 우리에게 “닿을 수 없는 속도에 떠밀린/ 저녁의 둘레길에서/ 지금 어디로 가고/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깊이 고민해 볼 문제이다. 비 내려 질퍽한 길, 맨발로 걸을 때 발가락 사이로 흙이 뾰록뾰록 올라오는 길, 부드럽고 울퉁불퉁 돌 섞인 길,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가게 하는 길, 속도 시대에서 벗어나 무언가 꿈꾸는 길, 이 길이 바로 시적 화자가 걷고 있는 황톳길이다.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휴식의 시간을 안겨 주고, 다정하고 섬세한 감성들을 만나게 해주는 황톳길 산책, 바삐 돌아가는 정보 사회에서 잠깐이나마 사색 방울을 맛볼 수 있는 둘레길 산책, 그리움의 화법도 만나고 사랑의 첫자리와 말투도 맛보고, 말랑거리는 땅의 생각과 대화도 나누며 거니는 산책이 필요한 현대인. 하던 일 멈추고 삶의 방향, 삶의 가치, 삶의 목적, 삶의 향기 등을 묵상하게 해주는 시라서, 미소 짓게 된다. 이 미소가 오늘따라 소중하게 느껴진다.
결별에 대해 다급히 연습하는
계절의 무게 견디지 못해
나뭇잎 하나 비틀거리며
가슴 위로 툭 떨어져
나뒹군다
고독과 상실에 길들여진
불면의 밤을 재촉해
다른 곳에 있는
쓸쓸함까지
바람이 데리고 와
달빛 밟고 건너는
외로움 하나 올리고
가을볕 묻혀 오는
그리움 하나 올리고
그 위에 사랑 하나 올린다
서두르지 않아도
매일매일 익어가는 시간의 방향에서
가을의 하모니
가을의 소리
가을의 리듬
가을의 언어 들으며
가을 안고 춤춰 본다
붉은 속엣말 흘리는
나뭇잎 사이로
고개 내민 푸른 창공이
손뼉 친다.
- 「가을 위를 걷다」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가을 정경을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독서는 사색을 겸하고 있기에 그만큼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센치해진다. “결별에 대해 다급히 연습하는/ 계절의 무게 견디지 못해”서일까. 가슴 위로 툭 떨어지는 나뭇잎에 심장이 쿵, 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 나뭇잎처럼 떨어질 텐데 무얼 하느라 그리 바삐 살았나 돌아보게 된다. 어떤 날은 “고독과 상실에 길들여진/ 불면의 밤을 재촉”하며 밤을 새기도 한다. 가을은 그렇게 삶의 뒤안길을 뒤돌아보게 한다. 만약 이런 가을이 없다면 우리는 방향도 속도도 없이 무조건 달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먼먼 훗날 후회할 것이다. 한 번쯤은 아니 간혹 “달빛 밟고 건너는/ 외로움 하나 올리고” 적막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래야 “가을볕 묻혀 오는/ 그리움 하나 올리”는 추억의 소중함을 안다. 가을은 “서두르지 않아도/ 매일매일 익어가는 시간의 방향에서” 우리에게 사색과 명상을 선물한다. 가을이면 사람들이 단풍을 보러 가는 이유도 붉은 속엣말 흘리는 단풍에게 귀기울이기 위해서이다. 결별에 대해 다급히 연습하는 계절, 나뭇잎 하나가 비틀거리며 가슴 위로 툭 떨어져 나뒹굴고, 쓸쓸함까지 바람이 데려와 지나가고, 외로움은 달빛 밟고 건너고, 가을볕 묻은 그리움과 사랑, 익어 가는 시간의 방향에서 만나는 가을의 하모니, 소리, 리듬, 언어, 붉은 속엣말, 나뭇잎 사이로 고개 내밀며 손뼉 치는 창공 등의 표현들이 감칠맛이 있다. 사물의 표현 하나 하나가 선명한 그림을 그려놓고 있어, 이미지로 꾸려진 시의 방에 온 것처럼 눈길이 즐겁다. 시가 가야 할 길을 미리 점검하고 치장해 놓은 듯하여, 마음이 흐뭇하다. 시가 왜 이미지 구현과 낯설게 하기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알 것 같다.
절반의 빛과 절반의 어둠으로 빚어낸
지구의 70프로가 바다라 한다
섬과 그리움과 안부 건네는
비행기를 타고 5시간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 육지
짠내 나는 숨으로 솟구치는
그 욕심이 많을까
오대양의 성스러움이
물의 끝자락에서 찰랑거린다
때론
억겁의 생을 서정적인 목소리로
철썩철썩 노래한다는
잔잔한 파도로는 성이 안 차
거친 파도 내몰아
부수고 엎어 지상 구석구석
점령해 버린다
클릭과 클릭 그 사이 어디쯤에서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우리의 삶 속에
함께 출렁이는
정보의 바다
온몸이 화살인 커서가 명중시키며
매일 매일 들어오는
수많은 줄기의 민물에
지느러미를
어느 쪽으로 틀어야 할지
고민도 하기 전에
비늘 한 쪽이 떨어져 나간다
대양의 바다
인생의 바다
참담과 비통이 산다는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둘 다 키를 단단히 잡고
침몰하지 않는
항해사로 길들여 간다.
- 「바다」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바다라는 정체를 시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 면이 바다라 늘 바다를 구독하며 살아간다. 파도소리로 바다의 행간을 읽으며 갯내음 가득한 어절들을 속독한다. 태풍이 몰아치는 날이면 포구에 묶인 배의 불안을 토닥여 준다. 포구의 멱살을 움켜잡는 태풍에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태풍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끌고 온 길은 삭제되고 일상은 눈을 뜬다. “억겁의 생을 서정적인 목소리로/ 철썩철썩 노래”하는 파도가 다시 바다를 노래한다. 짠내 나는 숨으로 솟구치는 바다, 성스러움이 물의 끝자락에서 찰랑거리는 바다, 억겁의 생을 서정적인 목소리로 철썩철썩 노래하는 바다, 거친 파도 내몰아 지상 구석구석 점령해 버리는 바다, 해 뜨고 달 지는 삶 속에 함께 출렁이는 정보의 바다, 수많은 줄기의 민물에 비늘 한 쪽이 떨어져 나가는 바다, 키를 단단히 잡고 침몰하지 않는 항해사로 길들여 가는 바다 등의 표현들이 신선하고 참신하다. 시적 화자는 이 시를 통해서 “인생의 바다/ 참담과 비통이 산다는/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둘 다 키를 단단히 잡고/ 침몰하지 않는/ 항해사”로 살아가자고 말하고 있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멋진 항해사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던지고 있다. 이 시는 낯설게 하기, 즉 새롭게 사물을 해석하는 기법이 시의 특질에서 가장 밑거름이 되어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가 이 땅에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지켜야 할 기본적인 기법이라 여겨진다. 이런 스타일의 시들이 많이 창작되어, 시집의 중추를 맡아 주기를 소망한다.
오전과 오후와 우리의 다정을 채집한
서녘 하늘
물들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리 서둘러
생의 귀가 재촉하는
황혼빛 그리려 할까
천진한 연두와 바람이 한 뼘씩 자라
푸른 들판에 아름다운 봄
여름 냇가에 미역 감던 소녀
가을의 코스모스 길 따라
짜고 매운 걸음의 중심 세우며
하이킹했고
화사한 흰빛의 내력 보탠다는
눈이 오면
왁자한 설경으로 먹고 산다는
썰매장과 눈사람 만들어
동네가 떠들썩하게
포근한 겨울 장식했지
다급하게 맨발로 끌려가는 슬픔과
힘든 일 있을 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파이팅 외치며 깔깔대던 너와 나
아직도 생생한데
희망을 움켜쥐며 우화 꿈꾸었던
그 세월
그 추억
그 아름다움
다 녹여
별 되려 하다니
함께한 세상 뒤로하고
우걱우걱 갉아먹는 울음의 집,
그 꽃상여 타고 먼저 가려는 너
소중한 핑크빛 벗
다시 손잡고 푸른 세상
거닐 수 있길.
- 「친구」 전문
시적 화자는 친구와의 추억을 향긋이 그려놓고 있다. 삶은 우정에 의해서 보다 풍성해진다. 우정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복과 보탬이 됨을 말한다. 그만큼 내 곁의 친구는 소중하다. 그 친구와의 인연이 오래 될수록 더 그렇다. 시적 화자의 친구는 “천진한 연두와 바람이 한 뼘씩 자라/ 푸른 들판에 아름다운 봄/ 여름 냇가에 미역 감던 소녀” 시절부터 함께했다. 그래서 더욱 친구에 대한 아픔이 깊다. 인생의 겨울로 접어들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데 “오전과 오후와 우리의 다정을 채집한/ 서녘 하늘/ 물들지도 않았”기에 안타까운 것이다. 웰다잉이라는 말이 있지만 좋은 죽음이 어디 있을까. 그것도 아직 살 날이 창창한데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슬픈 것이다. 여름 냇가에서 미역 감던 추억, 가을 코스모스 길 따라 달렸던 하이킹, 왁자한 설경 먹고 사는 썰매장, 눈사람 만들어 장식한 포근한 동네의 겨울, 슬프고 힘들 때도 파이팅 외치며 깔깔대던 시절, 우화 꿈꾸었던 아름다움, 꽃상여 타고 먼저 가려는 핑크빛 벗, 우걱우걱 갉아먹는 울음의 집 등이 손에 잡힐 듯 선명히 그려져 있다. 인생을 내려다보니, 모두 다 그립고 아쉽고 애틋하고 소중한 추억들이다. 이제는 함께한 세상을 뒤로하고 친구가 떠나려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울컥하고 슬픔이 와락 몰려온다. 감성의 세계, 감성의 변화, 감성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안겨 오는 시적 세계가 슬프고 아리다. 그 세계와 함께하는 삶, 슬프지만 결코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정오의 자세로 정좌한 한낮이
바람의 낚싯대 드리우면
공중의 입질로 뎅뎅 울리는 풍경 소리
그 한 생이 살고 있는 산자락
거기 웃고 있는 바람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다
지나온 억겁의 생과
현생의 설움이
무슨 할 말 있다는 듯
처마 밑으로 밀려들자
오후의 비늘 반짝이며 유영하는 놋쇠 물고기
온몸으로 토해내지만
떨쳐지지 않는
그리움
낮과 밤과 보고픔의 배경 되어준
허공에 마음 걸어 놓고
갈 길 그려 보지만
푸르름과 아찔한 높이 답습하는
창공에 걸린 나뭇가지가
모두 내 집이라며
새들이 쫑알거린다
고요하게 써내려간 노을 법문 읽으며
바위 위에 앉은 바람은
소슬조차 보내지 않고
찬 기운 서린 그곳에
토해낸 저 붉은 동백꽃
황토방 아랫목 같은
꽃자리 되었다.
- 「산사의 울림」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산사의 정경을 고요히 그려내고 있다. 산사에서 듣는 풍경 소리는 번잡한 마음을 어루만지며 괜찮다, 괜찮다 위로해 준다. “억겁의 생과/ 현생의 설움이/ 무슨 할 말 있다는 듯” 달려오면 바람은 놋쇠 물고기 몸을 빌려 그 속내를 꺼내놓는다. 절마당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으면 끌고 오느라 애가 탔던 울음들이 잠잠해진다. “고요하게 써내려간 노을 법문 읽으며/ 바위 위에 앉은 바람” 한 자락이 비우고 내려놓으라며 발목을 휘감는다. 정오의 자세로 정좌한 한낮, 바람의 낚싯대 드리우면 공중의 입질로 뎅뎅 울리는 풍경 소리, 산자락에 웃고 잇는 바람, 처마 밑으로 밀려드는 설움, 오후의 비늘 반짝이며 유영하는 놋쇠 물고기, 허공에 마음 걸어놓고 갈 길 그려보는 그리움, 창공에 걸린 나뭇가지가 자기 집이라고 쫑알거리는 새들, 노을 법문 읽고 있는 바위 위 바람, 찬 기운 서린 곳에 토해내어 황토방 아랫목 같은 꽃자리 된 동백꽃 등등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표현들이 모두 상큼하다. 신선한 표현과 발견은 시의 특질이 늘 바라는 바이다. 시가 독자들에게 멀어지지 않고, 늘 가까이 있기를 바란다면, 이런 상큼하고 싱그러운 표현들을 시의 식탁 위에 차려놓아야 한다. 시의 상징과 낯설게 하기로 수준 높은 시를 창작할지라도, 상큼하고 싱그럽고 참신하고 선명한 이미지의 시들이 텃자리를 만들어 뒷받침 되어야, 좋은 시가 되리라 믿는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생의 숨은 각도에도
절실한 방향이 있어
웃음과 울음의 밧줄 잡고
감정의 바다에서
파도 타기 하는 것
얼굴이 뭉개진
비명과 웅웅거림이 비릿하게 녹아드는
상심의 골짜기에 빠지면
풀뿌리 붙잡고
오르는 것
고요한 저녁이 어긋나며 추락해
불안의 깊이가 아찔한
캄캄한 어둠에 갇혀도
별 달 해 찾아온다 믿고
희망 잃지 않는 것
어차피 비극과 희극으로 늙어가기에
미래는 어떨까 생각보다는
생생한 그림 자세히 그려놓고
찰나 점검하는 것
아득할수록 명확한 불꽃의 씨앗 심는
캔들 차트처럼
파란불 빨간불 신호에
애간장 태우며
그래프 그려 가는 것.
- 「산다는 건」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삶에 대해 진지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그 질문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한다는 게 꽤나 어렵다. 시적 화자는 그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먼저 화자는 감정의 바다에서 파도 타기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맞다. 파도를 타다가 깊은 바다에 빠지면 안 된다.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심 잡기 위한 절실한 방향은 무엇일까.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시의 문을 열고 있다. 웃음과 울음의 밧줄 잡고 감정의 바다에서 파도 타기 하는 것, 상심의 골짜기에서 풀뿌리 붙잡고 오르는 것, 캄캄한 어둠에 갇혀도 희망 잃지 않는 것, 생생한 그림 그려놓고 찰나 점검하는 것, 캔들 차트처럼 신호등 불빛에 애간장 태우며 그래프 그려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캔들 차트의 원래 뜻을 이렇다. 주가 차트는 일반적인 선 그래프가 아니라 봉 모양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이를 캔들 차트라고 한다. 그 그래프의 모습이 양초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적 화자는 “아득할수록 명확한 불꽃의 씨앗 심는/ 캔들 차트처럼/ 파란불 빨간불 신호에/ 애간장 태우며/ 그래프 그려”가는 것이 산다는 것이라고 마무리한다. 일희일비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캔들 차트에 빗대어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이따금 밀려오는 삶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고 있어, 마음이 진정되고 있다. 인생의 방향 잃고 헤맬 때, 짙은 허무에 빠질 때, 삶의 방향과 가치를 바로잡고 나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 속에서 잠시 위로를 받고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면, 시는 은은한 미소를 보내줄 것이다. 시가 있어 좋은 세상, 시로 인하여 순수를 되찾는 세상, 시에 의해 정화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의 존재 이유는 뭘까. 그건 무엇보다도 인류에 유익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어떤 점이 유익할까. 시는 인간의 감성을 미적 가치에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인간의 감성을 추하게보다는 아름답게, 악하게보다는 향긋하게, 거칠게보다는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안내 역할을 담당해 준다. 무엇보다도 다채로운 감성의 세계를 소개해 주고, 안내하고, 만나게 해준다. 그리하여 섬세한 감성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고, 처음 만난 감성과도 친밀히 포옹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위해 시는 신선한 표현, 싱그러운 표현, 상큼한 표현을 즐겨 쓴다. 이를 위해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 즉 낯설게 하기 기법을 자리에 깔고 시적 형상화를 이뤄 놓는다. 특히 이미지 구현을 통해, 어느 누구라도 만나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져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려놓는다. 이 그림을 떠받치기 위해, 상징, 은유, 직유, 제유, 환유, 아이러니, 패러독스 등의 다양한 표현기법들을 밑바탕에 깔아둔다. 여기에 사색의 공간, 감동의 전율을 깔아두어, 시를 읽고 난 후에 다가오는 긴 여운을 선물해 준다. 그를 통해, 인생을 다시 한 번 내려다보고, 긍정의 힘, 깨달음의 길, 가치 있는 삶의 방향을 찾아내어,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해준다. 이게 시가 이 땅에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이다.
이서현의 시들은 이러한 시의 특질을 잘 구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이미지 구현의 묘미를 만날 수 있어 경이롭다. 시 한 편 한 편 모두 이미지의 선명한 구현을 통해 시가 모두 빛을 발하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 톡톡 튀는 표현, 상큼한 시어 배치, 함께 어우러지는 상징의 파문, 읽고 나면 등줄기로 흐르는 감동의 전율, 사색의 오솔길을 걸을 때 느껴지는 깨달음 방울 등이 압권이다. 이렇게 시의 특질과 가까운 시들과 산책하는 시간은 우리 독자들을 행복하게 한다.
앞으로 시의 특질을 고루 갖춘 시들을 모아, 제2, 제3 시집을 펴낸 뒤, 언젠가 알뜰한 작품들만 모아 이서현 시선집으로 열매를 거두길 소망해 본다. 부디, 여생 동안 창작의 붓을 소중히 여기는 시인으로서, 활기차게 시 창작 활동을 펼쳐 나가길 바란다.
- 벚꽃과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날에
한실문예창작 지도 교수 박덕은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전 전남대학교 교수,
시인, 소설, 동화작가, 화가, 박덕은 미술관 관장,
광주시민사회단체(523개)총연합회대표회장,
대한민국시문학협회 회장, 노벨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