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준PD가 들려주는 신령스런 바위가 있는 천년고을 영암 이야기
“나는 긴 역사 속 흥미진진한 인물들과 이야기에 빠져 반년을 머물렀다”
퇴직 후 저자가 꿈꾸는 제2의 인생은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일 년에 한 권 정도 책을 쓰는 여행 작가의 삶이다.
저자의 첫 번째 결실은 "제주도 한 달 살기"였다. 한 달 간의 제주도 체류와 여행의 경험을 술술 읽히는 구어체와 유머러스한 필체로 엮어낸 "제주도 한 달 살기"는 440페이지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의 환영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두 번째 결실은 "나주수첩"이란 타이틀로 나온 두 권의 여행서다. 저자는 전주와 함께 전라도란 명칭의 유래가 된 천년고도 나주에서 일 년을 살았다.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저자가 길어 올린 나주의 역사 문화 인물들의 이야기는 나주배 말고는 별반 알려진 게 없는 나주를 알리고 나주에 관해 아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가이드북이다.
세 번째 타이틀을 고민하던 저자가 영암을 선택한 계기가 있었다. 영암군수가 저자에게 영암군 홍보대사를 맡아 달라 요청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마음속에 고향에 대한 사랑에 더해 영암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남도답사 0번지 영암』은 무려 560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가뜩이나 책이 안 팔리는 시대. 어찌 보면 출판사로선 무모한 모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출판사는 상업적으론 불리할지 모르지만 월출산 말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영암을 제대로 알리려면 최소한 이 정도 내용은 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저자의 의견을 존중했다.
『남도답사 0번지 영암』책에 담긴 소재는 다양하다. 암흑 속에 있던 고대 일본에 문명의 빛을 전해준 왕인박사, 천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사고와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비보풍수의 창시자 도선국사, 고려건국의 공신이자 천문학자인 최지몽, 조선 최고의 연애 시 묏버들가를 쓴 기생 시인 홍랑이 목숨 바쳐 사랑한 고죽 최경창, 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지원하고 교류했던 현씨 가문과 죽림정, 부친을 모함해 죽게 한 원수인 간신 한덕수에게 살아생전 복수하지 못한 것을 죽는 날까지 원통해 했던 상남자 김완 장군, 을미왜변의 영웅 양달사 장군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스토리는 영암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월출산의 정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증거 한다.
고대, 백제가 지배적인 세력이 된 후에도 상당한 기간 남도를 지배했던 마한 왕국들의 고분과 출토품의 모습은 신기하고 대단하다.
조선시대 임금님 수랏상에 오르던 영암어란, 간척으로 갯벌이 변해 농지가 되기 전 지천으로 나던 낙지 덕에 유명해진 독천낙지거리와 거기서 탄생한 갈낙탕,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최고가로 팔렸던 영암참빗 이야기도 재밌다.
영암이 배출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장에서는 지금 전 세계에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김의 최초 양식자 김여익은 영암 사람이다. 당대 최고의 목판화가 김준권, 인생은 미완성 숨어 우는 바람소리 등 300곡이 넘는 유명 가요를 작사ㆍ작곡한 음악가 김지평, 영암아리랑을 불러 영암을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가수 하춘화의 고향은 영암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예술품을 아낌없이 기증한 재일교포 메세나 하정웅의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하정웅의 부모는 일본에 살면서 평생 고향 영암을 그리워했다. 영암에 하정웅이 기증한 작품들로 세운 군립하정웅미술관이 있는 까닭이다.
영암에는 지역 이상의 흥미진진한 전설과 역사를 참 많은 고장으로 과연 남도 0번지답다.
ㅡ월출산 아래 있는 호남의 으뜸 명촌 구림마을에서 위대한 세 명의 인물이 태어났다. 고대 일본에 문명의 빛을 전한 왕인박사, 땅과 자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사고에 깊숙이 뿌리내린 비보풍수사상의 창시자 도선국사, 고려의 건국 공신이자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 최지몽.
ㅡ통일신라 말. 구림마을 한 처녀는 월출산 빨래터에 떠내려 오는 오이를 먹고 배가 불러 도선국사를 낳았다.
ㅡ조선 최고의 연애 시 묏버들가를 쓴 기생 홍랑은 뛰어난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영암 출신 선비 최경창을 지독히 사랑했다. 관습과 신분을 초월해 기생 시인 홍랑과 인격적으로 교감하고 사랑했던 선비 최경창을 기념하는 고죽관이 구림마을에 있다.
ㅡ임금님께 진상했던 영암어란. 더운 여름날, 학질에 걸린 병자에게 찬물에 만 흰밥에 영암어란 한 조각을 얹어 먹이면 자리를 훌훌 털고 벌떡 일어났다. 영암에는 세계 최고로 맛있는 어란을 만드는 장인이 있다.
ㅡ소년 김완은 원수를 갚기 위해 문신의 꿈을 버리고 무인이 됐다.
부친을 모함해 죽게 한 간신 한덕수를 죽이려 두 번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전쟁 영웅으로 벼슬이 높아졌지만 죽을 때까지 부친의 원수를 갚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겼다. 저자는 호랑이장군 김완보다 효자이자 상남자 김완에게 끌린다.
ㅡ월출산 구정봉은 봉우리 전체가 사람 얼굴을 한 거대한 바위다. 명암대비로 얼굴이 또렷이 드러나는 정오 무렵, 전망대에 앉아 큰 바위 얼굴을 응시하면 순간 신비로운 기운에 사로잡힌다. 영암이 예로부터 기가 센 고장으로 알려진 데는 까닭이 있다.
또한 『남도답사 0번지 영암』엔 또 전작들처럼 저자가 좋아하는 카페와 찻집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가 영암에 내려가 처음 들른 다육식물 카페 화담과 거기서 이어지는 서울 방배동의 인도전문 여행사와 북카페 메종인디아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송일준PD의 세 번째 여행서 『남도답사 0번지 영암』은 두께가 무색하게 술술 즐겁게 금세 읽힌다. 37년의 방송 PD 생활에서 단련된 구어체 덕이 클 것이다. 글에서는 저자의 캐릭터가 그대로 느껴진다. 그것이 재밌다.
제목을 "남도답사 0번지"로 정한 것은 짐작대로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을 의식해서다. 강진은 그런 수식어로 강진을 소개한 유홍준 교수 덕을 톡톡히 봤다.
영암에는 강진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있다. 안 알려지고 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책을 읽어보면 왜 영암이 ‘남도답사 0번지’로 불려 마땅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영암은 물론 남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