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은 이대규 시인이 삶의 여정과 기억의 풍경, 존재의 본질을 담담히 노래한 시집이다. 지리산의 고요함, 전라도 들녘의 정취, 잊혀진 간이역들의 쓸쓸함이 시의 배경이 되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시인의 애틋한 시선이 깊이 느껴진다. 시집의 표제작이자 핵심 정서가 응축된 시는 단연 「간이역」이다.
현이 끊어지기 직전의 음색
바흐의 무반주 첼로
심장 깊이 가시를 박는
가시나무새 울음 울리는
천 개의 종이학을 날리고
천 년의 사랑을 하고
천 개의 현을 끊고
천자문을 터득하고
천 편의 시를 써야
비로소 이르는
첫 연은 《간이역》 전체를 아우르는 정서를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다. 삶의 슬픔이 음악처럼, 고통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이대규 시인이 지향하는 시의 미학은 바로 여기, 한계 직전에 이르는 예술의 긴장과 해탈 사이에서 꽃핀다.
이 시는 “천 개의 종이학을 날리고/ 천 년의 사랑을 하고/ 천 개의 현을 끊고/ 천자문을 터득하고/ 천 편의 시를 써야/ 비로소 이르는” 곳으로서의 ‘간이역’을 이야기한다. 간이역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마음의 경지다. 이는 단순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자기 존재에 대한 탐색이며, 마침내 도달한 자기 이해의 장소다.
간이역은 빠름과 화려함에 중독된 이 시대에 대한 조용한 반론처럼 보인다. “작아서 아름답고/ 빛나지 않아 고운” 이곳은, ‘보잘것없는’ 것이 아닌, ‘정말로 중요한’ 것이 있는 자리다. 한 생을 다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은신처.
이대규 시인은 ‘말하는 시인’이 아니라 ‘기다리는 시인’이다.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다가와 앉기를 기다린다. 그의 시는 낮고 깊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