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천, 이정모, 줄리안 강력 추천 ★
“내가 먹고 쓴 것들은 어디서 왔을까?”
“쓸모를 다한 것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버려진 것들의 행방을 찾아 나선 다큐멘터리스트의 기록
“쓰레기의 행선지는 상상의 영역에 존재한다.”
- 본문 중에서
소가 옷을 먹고 있다. 저자가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에는 정말로 소 한 마리가 무덤처럼 쌓인 옷더미 위에서 천을 씹고 있었다. 해프닝이길 바랐지만, 그 장면은 가나의 중고 의류 시장 근처에서 찍힌 실제였다. 그 옷이 우리가 버린 옷이 아닐 거라는 보장은 없다. 가나에 매주 수입되는 헌 옷은 1,500만 벌, 그리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헌 옷 수출국이니까.
‘내가 버린 티셔츠는 어디로 갔을까?’, ‘팔리지 않은 엄청난 양의 음식들은 어디에 버려질까?’ KBS 〈환경스페셜〉 ‘지구는 없다’ 시리즈를 기획한 김가람 PD의 머릿속에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저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사진이 찍힌 가나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멕시코, 콩고민주공화국 등 쓰레기가 향하는 곳으로 나섰다. 그곳에서 저자는 우리가 알고 싶지 않았던, 좀처럼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다. 얼마 전까지 159만 원에 팔리던 멀쩡한 패딩 점퍼가 불구덩이에 던져진다. 밀 가격이 올라 아우성치지만, 유럽의 슈퍼마켓에서는 매일 제빵류의 16%가 폐기된다. 팜유 생산을 위해서 열대우림을 고의로 불태우는 일이 자행된다. 그는 기후 위기를 부채질하는 지구 곳곳의 적나라한 실상을 목격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싶은 일들이 업계의 관행 또는 정부의 지침이라는 말 뒤편에서 묵인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저자는 가장 먼저 우리가 기후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세계 곳곳을 취재하고 인터뷰할 뿐만 아니라 각종 보고서 및 논문 등 관련 자료를 섭렵하며 알아낸 객관적인 사실들을 친절히 들려준다.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아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외면한다면, 문제는 더욱 몸을 부풀려 우리의 삶을 집어삼킬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이제는 외면이 아닌, 직면이 필요한 때다.
너무 많이 버리고, 너무 많이 굶주리는, 기묘한 세계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영원할 수 없다
“지구는 앞으로도 몇억 년이고 지속 가능하다.
우리의 안온한 삶만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이다.”
- 본문 중에서
환경 문제 앞에서도 불평등은 여지없이 작동한다. 지구 한편에서는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 마구 버리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굶어 죽는 이들이 넘친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이 버려지는 사이, 또 다른 곳에서는 버려진 옷더미가 생계를 위협한다. 유명인이 전용기를 타고 한 시간 이동하며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평범한 사람이 한 계절 배출하는 탄소량과 동일하다. 지구 온난화를 재촉하는 사람과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전혀 다른 기이한 구조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동의 불법 노동 문제는 어떤가. 매년 출시되는 핸드폰의 주원료인 코발트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종일 일해야 겨우 한 끼를 먹는 아이들의 삶을 대가로 삼는다. 기후 위기는 모두를 위협하지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가장 빈곤하고 약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라고 해서 기후 위기 앞에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매일 입는 옷과 쓰는 물건들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 플라스틱은 폐수로 흘러들어 토양에 스며들고, 결국 우리의 식탁으로 되돌아온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매주 신용카드 1장 분량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 게다가 기후 변화는 점점 더 극단적인 자연재해로 모습을 드러낸다. 산불과 가뭄 폭우 등 자연재해가 빈번해지고, 그 여파로 물가가 치솟는다. 이제 기후 문제는 북극곰이 아니라 곧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다. 그러므로 저자는 ‘살던 대로 살다가 위태로워지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기후 위기 문제는 81억 인구의 조별 과제와 같다. 공동의 책임 의식 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 더 나쁜 소식은 제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발도상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선진국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불합리한 구조적 문제를 파헤쳐 우리의 손가락이 향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가리킨다.
그럼에도 희망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
환경 프로그램의 시의성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그럼에도 희망적인 것은, 문제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 위기에 관심을 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문제에 힘을 쏟는 것보다 당장 닥친 업무나 자기 계발에 시간을 쓰는 것이 더 생산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의 기온 상승으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더 이상의 기온 상승을 막는 일이다.
지금처럼 탄소를 배출하면, 세기말에는 해안 침수로 세계 GDP의 20%에 이르는 자산이 사라질 수 있다. 2050년에는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만 96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2011년 대비 100배에 달하는 수치다. 결국 경제 활동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일은 곧 자기 자산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기후 위기를 외면할수록 손해를 보는 쪽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저자는 덧붙인다. 지금처럼 탄소를 배출하며 살아도 인류는 멸망하지 않겠지만, 수 세기에 걸쳐 이룬 평등, 자유,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와 같은 유산은 휴지 조각이 되고 말 거라고. 그러니 우리는 환경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구입할 자유가 있는 소비자이기에 앞서,
생각할 자유가 있는 지구의 일원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 본문 중에서
저자가 만든 환경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쇼핑의 즐거움을 오래 쓰는 물건과 함께하는 기쁨으로 바꿨고, 고쳐 쓰는 쏠쏠한 재미를 발견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친환경’이라고 믿어온 행동과 소비 방식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예컨대, ‘에코 레더’나 ‘뽀글이’처럼 친환경 제품으로 알려진 것들이 사실은 석유 기반의 합성 섬유라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제안한다. 아이돌을 응원하듯, 환경을 향한 ‘팬심’을 가져보자고. 누군가를 ‘덕질’하듯 꾸준히 관심을 기울일 때, 세계의 기업과 지도자들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변화는 그런 작은 관심을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