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가 주는
마음을 전할 마지막 기회
전작 『지금도 늦지 않았어 사랑해』에 이어 『지금도 늦지 않았어 미안해』에서도 설지는 자신의 시간을 나눠 주기 위해 텅 빈 기차역 대합실에서 홀로 눈물을 삼키고 있는 두빈에게 다가선다.
작은 기차역이었다. 컴컴하고 썰렁했다. 사람도 없었다. 가게도 모두 문을 닫았다. 한쪽에 ‘임시 폐쇄’라 쓰인 큰 입간판이 서 있었다.
“우민이가 나한테 보낸 메시지에 대답만이라도 하고 싶어. 괜찮다고, 화해하자고. 그러지 않으면 걔는 죽을 때까지 슬퍼할 거야. 하지만 내 휴대폰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겠어.” (17쪽)
그때 설지는 저승사자가 두빈의 뒤를 쫓고 있음을 알게 된다. 두빈은 이미 죽은 아이였던 것이다. 대체 무슨 사정이 있어서 마음 편히 이승을 떠나지 못할까? 안타까웠던 설지는 두빈이 20일 전으로 거슬러 갈 수 있게 해 준다.
“잠깐.”
나는 저승사자에게 잡힌 아이에게 다가갔다.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죽은 너한테는 시간을 나눠 줄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우민이한테는 가능해. 최대 20일까지 나눠 줄 수 있어.” (20쪽)
설지의 정체
왜 자신의 시간을 덜어 내야 할까?
『지금도 늦지 않았어 미안해』에서 신비로운 아이, 설지의 정체가 드디어 밝혀진다. 지구의 맨 끝, 펄펄 끓는 산과 얼음 바다를 넘어 위치한 신비의 땅 가온도. 그곳에 사는 가온족은 죽어가는 이의 시간을 빼앗아 먹으며 불멸의 DNA로 진화한 종족이다. 설지는 바로 이 가온족의 일원이다.
“휴, 죽지 않고 사는 게 아빠도 좋은 건 줄로만 알았다. 불멸이야말로 최고의 행운이라고 말이야. 그 행운을 거머쥐기 위해 우리 조상은 갖가지 일을 다 했다. 그래서 결국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지.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이야.”
아빠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10쪽)
세상의 것도 저승의 것도 아닌 그 찰나의 순간, 사랑하는 이들과의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나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긴 염라대왕은 가온족에게 저주를 내린다. 가온족은 삼천 살이 되는 해에 저승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 짧은 시간은 세상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다. 남은 이들에게 인사하는 시간이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한데 그걸 빼앗아 먹다니, 너희에게 그 시간을 빼앗긴 영혼은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떠나느니라!”
염라대왕은 하늘이 깨질 듯 화를 냈다. (11쪽)
가온족은 삼천 살이 되는 해에 저승사자가 되는 형벌을 피하고자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인간들에게 나눠 주며 산다. 그래서 가온족의 아이 설지는 부지런히 자신의 수명을 덜어 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최소 하루에서 최대 20일의 시간, 설지의 영혼은 그 사람에게 들어가 덜어 준 시간만큼 살며 후회한 일을 바로잡도록 도와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는 머뭇거리지 말고 말해야 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두빈의 몸에 깃든 설지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 소심하지만 자신만을 좋아해 주는 남자 친구 우민이 그리고 불우하지만 언제나 웃는 시윤이 사이에 놓인다. 소나기가 내리는 날, ‘양심우산’ 사건으로 우민과 오해가 생긴다.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두빈과 우민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만 양심우산 오해. “미안해.”라고 말하지 못한 이 둘의 관계는 영영 돌이킬 수 없을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해요. 물론 용기를 내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 용기가 여러분을 좋은 사람과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게 해 줄 거예요. 혹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이셨나요? 그렇다면 지금 용기를 내세요!” (150쪽_작가의 말)
『지금도 늦지 않았어 미안해』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을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두빈과 우민처럼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속앓이만 하다가 끝내 “미안해”라고 말하지 못한 경험담이 있을 것이다. 이 동화에는 진심을 전하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과연 설지의 도움으로 두빈과 우민은 화해할 수 있을까?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될 것이다. 두빈에게, 우민에게, ‘나’를 투영한 독자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번에는 머뭇거리지 말고 말해야 한다고 마지막 책장으로 향하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마음 졸인다. 그러다 보면 “미안해”라는 말은 아무리 빨리해도 너무 늦을 수 있음을, 사과해야 한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표현해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단 말은 순 거짓말이야. 마음속에 있는 말은 밖으로 표현해야 상대방이 정확히 아는 거지 어떻게 알겠어? 아까 학교에서 우민이는 두빈이에게 사과하고 싶었을 때 했어야 했어. 그 순간을 넘기지 말고.’ (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