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한 아나운서가 택한 결혼이라는 블랙홀
이미지 컨설팅 기업 ‘브랜미’의 대표 김희연은 퍼스널 컬러 진단 등 사람들의 이미지를 코치해주는 컨설턴트다. 현재는 당당한 커리어우먼이지만 한때는 ‘그레이’한 아나운서였고, 재봉틀로 아이 옷을 만들던 우울한 전업주부였다. 어릴 적부터 꾸밈과 거리가 멀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해 아나운서가 된 뒤에도 늘 이방인이었다. 새벽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허겁지겁 출근하던 모습에 한 동료가 말했다.
“넌 좀 그레이하잖아.”
그 말은 무채색 이미지처럼 오래 남았다.
하루빨리 독립하고 싶었던 그는 서둘러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러자 방송국에선 그를 ‘애 엄마’로 보기 시작했다. 아나운서로서의 자리는 점점 사라졌고, 결혼은 끝내 그를 삼킨 블랙홀이 되었다.
보랏빛 페미니즘을 만나 나만의 색을 찾아나서다
가정을 꾸리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마음 한켠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친구가 건넨 여성학 책을 통해 그 감정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가부장제 안에 작동하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었다.
곧장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도리어 부부 관계는 악화했고, 결국 이혼 후 월세방에서 홀로서기를 하게 됐다. 구내식당 1,500원짜리 식사를 앞에 두고 눈물을 삼키던 날들. 생계를 위해 이력서를 올렸고, 운 좋게 휴맥스에 입사했다. 아이를 언니에게 맡기고 새벽 출근길에 올라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사무실에서는 서툰 자신의 모습이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 시절은 고립과 두려움이 짙게 내려앉은, 심해의 로열블루 같았다.
직장 생활은 레드, 나는 로열블루
김희연 작가는 직장 생활을 ‘빨간 맛’이라 말한다. 홍보 마케팅은 관계 맺음이 핵심이었다. 동료는 물론 외부 기자, 협력사와도 끊임없이 조율하고 접대를 이어갔다. 그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강했고, 그 역량은 마케팅 현장에서 빛났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싱글맘으로 버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일로서 자신을 증명해갔다.
작가는 게임사, 건설사, 금융사 등 다양한 업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을 쌓아갔다. 심해의 로열블루 같던 시간이 직장의 레드를 머금으며 자신만의 색으로 깊어졌다. 한번은 상사에게 “저는 검이 아니라 크리스탈 같은 인재입니다”라는 메일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빛나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의 앞에 형형색색의 빛을 품은 인생 2막이 열리고 있었다.
크리스탈 인재의 무지갯빛 창업기
작가의 마지막 직장은 미래에셋생명이다. 다니던 PCA생명이 미래에셋에 인수되면서 차부장급 임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이 공고되었다. 그는 화분에 물 주며 의미 없이 버틸 사람이 아니었다. 퇴직금을 받고 23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한 뒤, 2019년 이미지 컨설팅 기업 ‘브랜미’를 창업했다.
이 책은 브랜미의 여정을 자세히 그려낸다. 젊은 동업자와 함께 창업해 전국을 돌며 강의를 이어가던 초기, 코로나 이후 이미지 컨설팅 시장이 커지던 시기, 후발 업체의 추격 속에 대대적인 리뉴얼을 감행했던 순간들, 법인화를 결정하고 매출 급감을 겪은 뒤 미디어 홍보를 통해 다시 최고 매출을 기록하기까지, 또 브랜미룩 확장 실패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브랜미의 우여곡절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창업이 ‘무지갯빛’이라는 것은, 찬란함이 아니라 매 순간 다른 색깔의 상황을 만나고 헤쳐나가야 한다는 뜻임을 이 책은 조용히 전한다.
나는 컬러를 사랑하는 이미지 컨설턴트다
작가는 늘 머릿속에 그리는 이상적인 이미지를 실현하고자 애써왔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비해 사무실에 여분의 구두와 재킷을 두었고, 자신을 까다롭게 보는 이들 앞에선 청국장을 시켜 먹으며 균형을 맞췄다.
브랜딩이란 고유한 개성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이다. 작가는 그것이 유명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누구든 퍼스널 브랜딩을 통해 내면과 외면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배꼽 아래에서 나비가 팔랑이듯, 설레는 일을 좇아 살아온 사람. 그는 지금도 누군가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순간에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재미있는 꿍꿍이를 품은 채, 다시 시동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