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상당한 애착을 지닌 저작이다.
이 책이 문화정치적 팸플릿처럼 읽히길 바란다.”
_하스미 시게히코
“이 책은 동시개봉에서 A-movie에 뒤지지 않거나
혹은 거의 그것을 능가하는 B-movie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_임재철(영화비평가)
나폴레옹의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진정한 나폴레옹이라고 상상하는 자와
스스로의 이름을 날조해낸 ‘사생아’ 의붓동생이 모의한 이 모방적 쿠테타의 성공은
어떤 시대의 도래를 증언하는가
오늘날의 세계는 그 시대와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가
『제국의 음모』 해설에서 이리에 데츠로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비평과 그 밖의 모든 글쓰기 작업이 프랑스의 제2제정기라는 시공에 의해 규정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스미 스스로도 자신이 이 주제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 결과물이 우리말 본으로 천 쪽이 넘는 대작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이다. 이 책에서는 막심 뒤 캉이라는 인물을 통해 모든 것이 교환 가능한 기호로 환원되어버리는 상대적 차이의 장인 ‘범용凡庸함’이라는 것이 어떻게 제2제정기의 특수한 역사적인 현실로 자리매김하게 되는지 서술한다. 그리고 스핀오프 격인 이 책 『제국의 음모』에서는 같은 문제의식하에 루이 나폴레옹과 드 모르니라는 의붓형제에 초점을 두고 제2제정기를 논의한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수립된 제2공화정에서 최초로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었던 루이 나폴레옹은 1851년 쿠데타를 일으켜 이듬해 12월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브뤼메르 18일(1799년 11월 9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정을 전복하고 1804년 12월 2일 황제에 등극했던 삼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본떠, 이 별 볼 일 없던 조카도 공화정을 전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루이 나폴레옹과 아버지가 다른 사생아로 태어나, 평생 스스로를 ‘타인의 이름’으로 칭하며 살아야 했던 드 모르니가 냉철하고 현실주의적인 흑막 역할을 맡는다. 하스미는 이 사생아 의붓동생이 자기동일성의 애매함 자체가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는 시대의 도래를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드 모르니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남긴 두 편의 텍스트에 시선을 던져 그것들 사이에 기묘하게 얽힌 관계를 해독해나간다.
하나는 1851년 12월 2일 쿠데타 당일에 발표된 ‘내무대신 드 모르니’라는 서명이 붙은 행정 문서인 「포고」로, ‘행위 수행적’으로 쿠데타라는 음모를 실현시키는 텍스트이다. 이것이 실질적인 효력을 갖는 이유는 현실의 내무대신이 서명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형식에 불과한 서명이 다량 인쇄되어 유통된 ‘결과’로서 오히려 드 모르니의 이름이 권위를 갖게 된다는 뒤집힌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들뢰즈적인 시뮬라크르가 정치적 현실이 된 사태를 발견한다. 이렇게 하여, 시뮬라르크가 형식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는 ‘기원’을 현실화하는 ‘냉소적’인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또 다른 텍스트는 쿠데타를 감행하고 10년이 지난 1861년 5월 31일 입법원 의장이 된 드 모르니의 관저에서 상연된 오페레타 부파 〈슈플뢰리 씨, 오늘 밤 집에 있습니다〉의 각본으로, 여기에는 드 모르니의 또 다른 날조된 이름인 드 생 레미가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의 이름과 함께 기재되어 있다. 이 극은, 젊은 연인이 극중극을 통해 진짜 오페라 가수를 교묘하게 ‘모방’함으로써, 상류계급을 ‘모방’하여 명예(‘이름’)를 얻고자 하는 부르주아 아버지를 속이고 결국 결혼 허락과 함께 지참금까지 챙긴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하스미에 따르면, ‘모방’을 통한 음모의 성공이라는 이 줄거리는 의붓형제의 쿠데타의 ‘반복’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진짜와 가짜의 뒤얽힌 관계는 오늘날 포스트모던적이라고 불리는 예술 개념과 통하는 데가 있으며, ‘돈’과 ‘여성’이 하나의 기호로서 ‘이름’과 교환 가능해지는 것은 기호의 본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시대의 도래를 증언한다.
범용함의 발견:
기호적 차이만 존재하는 시대의 도래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과 인물 들은 두 번 반복된다,
첫번째는 비극으로, 그다음에는 소극으로.
그러나 마르크스는 반복되는 극의 장르를 잘못 말했다.
그 장르는 소극이 아니라 오페레타 부파다.
여기서 저자는, 나폴레옹 3세(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는 확실히 무언가를 ‘반복’하고 있지만,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상연 장르를 잘못 판단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이 음모에서 문제시되는 장르는 ‘소극’이 아니라 ‘오페레타 부파’이며, 게다가 그것은 한번 ‘비극’으로 연기된 것을 다시 연기하는 탓에 지루해진 재연이 아니라, 아직 상연되지도 않은 작품을 그것이 쓰이기 정확히 10년 전에 이미 실연해버린 셈이라는 것이다. 제2제정기는 드 모르니의 오페레타 부파에서 여성과 돈과 이름이 기호로서 유통되듯, 기호로서 유통되는 황제를 용인하는 대중이 등장하는 사회의 초기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1851년이라는 연호는 정치적이어야 할 권력 탈취를 비심각화함으로써 실현되는 냉소적 정치성이 우세종이 되는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
이 책의 번역은 하스미 시게히코의 저술을 국내에 다수 소개해온 영화비평가 임재철이 맡았다. 그는 이 책이 1988년의 방대한 저작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에 대한 일종의 스핀오프처럼 빠르게 쓰였지만, 동시 상영하는 A-movie에 뒤지지 않거나 혹은 거의 그것을 능가하는, B-moive와도 같은 탁월함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짧고 경쾌하지만, 하스미 비평의 핵심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독특한 그의 시선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려준다는 측면에서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