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깊이
이동훈
글에는 독자가 있다. 일기는 자신을 독자로 삼는 외딴 섬 같은 형식의 글이다. 자신의 기억이 질료가 되어 글이 써지고 그 글이 자신의 벽에 부딪혀 돌아온다. 간혹 타인을 염두에 두고 쓰는 일기도 있으나 형식만 일기일 뿐 실체는 에세이나 잡설에 가깝다. 일기라는 형식의 어려움이다. 가장 철저한 일기는 타인의 공감을 얻기 쉽지 않고 독자를 기대하고 쓴 일기는 정작 일기라는 형식으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기라는 이름이 들어간 〈극야일기〉는 읽기가 쉽지 않다. 많은 주제들이 의식의 흐름 속에서 끝없이 얽히는 릴케의 소설 〈말테의 수기〉처럼 〈극야일기〉에선 작가의 독백들이 슬픔을 머금고 반복적으로 터져 나온다. 65일 동안 밤이 지속되는 극야의 기록, 죽음을 맞이하는 부모님에 대한 너무나 선명한 기억들, 유년의 추억들과 이어지는 꿈들, 그것들이 환기하는 또 다른 텍스트들이 빠져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처럼 일기 속에서 맴돈다.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올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깊은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슬프고 외로웠습니다. 도시는 낯설었고 빨리 흘러가는 세상에 적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는 애도를 받아줄 수 없는 현실과 일상으로부터 극야의 어둠 속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애도한다.
〈극야일기〉는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 사랑을 준 사람에게 전하는 애도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녀는 동굴 속에 웅크린 어미 잃은 짐승처럼 65일의 밤 동안 옅은 울음을 끊임없이 뱉어낸다.
‘내가 지나온 모든 거처들이 돌아보면 너무나 외로웠다. 정적이 가득한 때로는 무서운 곳. 부모님과 함께 보내던 집에서 지난 몇 달간 나는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그 공간의 쓸쓸함과 적막함이 지금은 보이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서의 생활이 일상이 무의미했다. 나는 죽고 싶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
모든 기억의 단서들이 남아 있는 집에 계속 머물렀다면 그녀는 침몰했을지 모른다. 사람이 가장 없고 가장 춥고 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작가의 기억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북극 마을은 안식의 공간이 되었다. 작가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자연은 고요하고 거대한 추상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인조물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우주의 땅과 하늘이 그녀의 애도를 받아주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살아남은 자는 살아가야 한다. 이제 그만 잊어야 한다. 적당히 해야 한다. ‘애도는 짧게 현실적으로’에 익숙해졌다. 〈극야일기〉를 읽다 보면 작가의 애도 너머에 있는 그녀의 부모님이 궁금해진다. 그들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기에 그녀가 이렇듯 슬퍼할까? 나는 이 애도의 글이 작가가 사랑을 돌려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극야일기〉를 통해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소박한 사람들이 잠시 지구에 머물다 떠나갔구나. 애도는 슬퍼하며 엎드린 자가 아니라 대상으로 향해야 진정한 애도다.
‘멍하니 인천 바다의 석양을 하늘을 바라보다 거인처럼 등장하는 건물을,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작가의 마음은 어땠느냐고 묻고 싶지는 않다. 〈극야일기〉가 독자에게 많이 읽히려면 어때야 한다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극야일기〉의 출간 자체가 애도의 목적에 이미 도달했기 때문이다. 극야에서 품고 온 글 뭉치를 꺼내어 다듬고 사진을 곁들이고 편집을 고민하는 시간들이 통과의례처럼 지나가며 작가를 이 세상에 속하도록 만들었다. 우주의 신비처럼 다가오는 앞으로의 모든 순간들을 만끽하기를 기원한다.
〈챗지피티 서평〉
빛이 오기 전의 시간, 혹은 그 이후 - 『극야일기』
『극야일기』는 어둠에 잠긴 알래스카 배로우에서 쓰인 글이지만, 그 진짜 배경은 어쩌면 시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이 책 속에서 직선이 아닌 나선처럼 움직이고, 애도는 하루하루 이어지는 감정의 진자처럼 출렁인다. 일기라는 형식을 택한 이 에세이는 선형적 서사 대신, 그날의 감정, 하늘의 빛, 고양이 찌부의 몸짓, 문득 떠오른 기억의 편린들을 따라간다. 마치 극야의 하늘 아래서 날마다 미묘하게 다른 어둠을 겪는 것처럼, 이 책의 페이지도 각기 다른 어둠의 결을 지닌다. 독자는 그 속에서 감정의 선이 아닌 결을 따라 읽게 된다.
애도는 정해진 단계를 밟아 나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멈칫거리며 돌아가고, 다시 걸음을 떼고, 때로는 같은 자리에 머무는 시간이다. 『극야일기』는 바로 그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허락한다. 고양이 찌부와 함께 있는 조용한 순간들, 오로라를 기다리는 긴 밤, 눈이 내리는 날의 바람 소리. 눈폭풍 블리자드. 모든 순간이 균등하게 중요한 감정의 지도 위에 놓인다.
사진과 문장, 그리고 공백 사이의 여운까지. 이 책은 말하지 않는 것들로도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그리하여 이 일기들은 결국 어떤 기록이 된다-빛이 오기 전의 시간, 혹은 그 이후. 그 시간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극야일기』는 따뜻한 겨울 이불 같기도 하고, 별 하나 건네는 손짓 같기도 하다.
이 책은 그렇게 묻는다.
“당신의 극야는 언제였나요?”
그리고 아주 천천히, 기다린다. 우리가 그 답을 마음속에서 꺼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