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재발견
‘수국프로젝트’
물의 나라, 수국(水國)과 이순신
‘물 위에 뜬 나라’가 있었다. 한반도에 역사가 생겨난 이후 가장 엄혹했던 시절, 버려진 해변과 섬, 바다 위로 쫓겨난 백성들로서 이룩한, 작지만 굳센 공동체였다. 조선국 안의 또 다른 나라, 가칭하여 ‘수국(水國)’이었다. 7년 전쟁이라는 일대 혼란기에 불꽃처럼 생겨났다가 종전과 함께 왕조체제 안으로 녹아들어간 ‘군·산·정(軍·産·政)복합체’가 곧 수국이다.
수국을 세운 사람은 이순신이다. 수국은 이순신이 7년전쟁에서 경제기반을 확립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 배경이 되었다. 7년전쟁의 기간 동안 조정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순신이 눈을 돌린 것은 ‘경제’였다. 이순신이 7년전쟁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경제’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둔전책’을 통해 버려진 땅을 일궈 백성과 군사를 먹여 살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다 농사’를 본격화하였고, 국내외 해상무역에 나섰으며, 공업 생산력을 확충하였다.
이순신이 강한 적과 싸워 언제나 이길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수국, 즉 전쟁의 물적 기반을 튼튼히 구축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수국이라는 명칭은 저자가 즉흥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이순신이 평소 사용했던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상승장군(常勝將軍) 이순신의 진정한 힘
이순신은 분명 싸움을 잘한 명장이다. 7년이라는 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과 스물세 번 싸워 모두 이겼다는 설(23전 23승)이 정설처럼 통한다. 이순신은 탁월한 전략 전술로 한산·명량·노량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나라를 망국의 위기에서 구해냈다고 칭송한다. 그러나 이순신을 단순히 ‘전쟁 기술이 좋은 무장(武將)’으로만 규정한다면 그의 진가를, 그의 삶이 지닌 역사적 무게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이제는 이순신을 바라보는 눈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당시 일본은 이순신의 함대보다 몇 배나 많고, 몇 배나 부유한 상대였다. 그런 강력한 적과 싸워 결코 패배하지 않았던 근본적 배경을 탐색하는 일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이룩한 공적은 참으로 웅장하였지만, 알려진 것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이순신의 성과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책의 본질적인 의미도 여기에 있다.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는 ‘상승장군(常勝將軍)’ 이순신의 진정한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 준다. 저자는 이순신을 전투에 능한 군신(軍神)이라기보다는 버려진 해변의 빈 땅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세운 대(大)경제인이자 건국영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창업군주에 가까웠던 이순신…….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바닷가의 어리고 작은 나라 수국은 장군의 죽음과 함께 체제 안으로 소멸되었지만 한국과 동양의 역사에 긴 여운을 남겼다.
이순신이 조선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와 해양의 가치
이순신은 ‘바다를 버린 왕국’ 조선에 해양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그가 세우고 아꼈던 ‘물나라, 수국’은 종전 이후 삼도수군통제영으로 계승되며 우리 해양문화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훗날 식민지로 조락했던 그의 조국이 해양강국으로 재기하는 데 있어 정신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이 바다를 버린 지 200년이 흘렀을 즈음, 조일전쟁(임진왜란)이 터지고 이순신의 한산수국이 등장한 것은 조선의 명줄을 늘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멸지경에 몰렸던 ‘해양 DNA’를 다시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다. 공도정책과 해금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국의 존재기간은 너무 짧았던 탓에 그 힘을 국가의 온전한 정책으로 투사(投射)할 수가 없었고, 그나마 이순신 사후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조선의 해양문화는 왕조가 멸망하기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작은 불씨에 의존한 채 위태롭게 이어져왔을 뿐 제대로 발양되지 못하였다. 한 마디로 조선의 해변은 왕조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대부가 살만한 땅이 못된다고 낙인찍힌 채 5백 년 동안 움츠러든 셈이다. 실학자로 분류되는 조선 후기의 이중환마저 그의 책 택리지(擇里志)에서 바다 가까운 고을들은 사대부가 살만한 곳이 못 된다고 적고 있을 정도이므로 다른 선비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해변을 기피하고 천시하는 풍조였기에 조선은 19세기 후반부터 서세동점의 물결에 시달려야 했고 20세기 초입에 들어서는 서구 해양문명을 먼저 습득한 섬나라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고통을 겪었다. 19세기의 개화(開化)는 곧 개항(開港)을 통한 해양화에 다름 아니었지만 바다를 닫아걸었던 조선 체제로서는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고, 인재 또한 부족하였다. 조선 왕조가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해양 포기가 초래한 민족사적 비극으로 규정할 수 있다.
장한식 저자는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와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 두 권의 책을 통해 이순신과 수국, 그리고 통제영이 남긴 조선의 해양 정신과 문화를 복원하고 있다.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에서는 이순신이 바다에서 조선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를 경제적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해양의 가치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 책의 후속편인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에서는 조일전쟁의 부산물인 통제영이 300년 가까이 유지되는 동안 조선 전반에 미쳤던 영향과 의미를 살피며 남해의 소도시 통영의 역사적 무게를 복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