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숙한 육체와 미숙한 정신 사이에서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아찔한 경험
“내 생각을 제어할 수 없고, 내 몸을 내가 말릴 수 없는 그 순간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안에 내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이 소설은 10대 미혼모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그것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 때문에 생겨난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1인칭 화자인 열일곱 살 하연이의 시점과 화법으로 속도감 있게 쏟아지는 이야기 속엔 현실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임신을 하게 되고 그 아기를 낳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손에 잡히듯 그려진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뒤의 당황스러운 마음, 아기를 없애고 싶은 갈등, 낳고 나서는 길러야 할지 입양시켜야 할지 선택의 문제,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까지, 소설은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잡아낸다.
미혼모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으레 성폭력과 같은 상대방의 일방적인 강압에 의해서 아기를 갖게 되는 상황을 다루었다면, 이 소설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그 상황을 거부하지 않고 함께하고픈 내면의 은밀한 욕구에 의해서 일이 발생된다. 어느 한순간 자신의 생각을 제어할 수 없고, 자기 몸을 말릴 수 없는 10대 시절 솟아오르는 호기심과 들뜬 열기를 작가는 하연이의 입을 통해 과감하게 풀어낸다. “솔직히 자석의 S극과 N극처럼 서로 강하게 끌리기는 하는데…….”라며 자칫하면 넘을 수 없는 경계를 넘어 버리게 되는 그 순간의 망설임을 표현하고 있다.
사춘기가 되면 성에 대한 미묘한 감정 변화가 일어난다. 한편에서는 끝없이 일어나는 호기심과 욕구 때문에 고민하게 되고, 또 한편에서는 그런 성 에너지를 억압해야만 하는 현실 때문에 힘겹다.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금기의 구역에 대해 이제는 빗장을 열고, 솔직 대담하게 얘기할 것을 이 소설은 요구한다. 묵인하고 방조하기만 한다면, 의지할 어른을 찾지 못하고 어려운 고민을 떠안는 하연이와 같은 청소년들이 계속해서 숨어든 채 우리 곁을 맴돌 것이다.
“어쩌면 풍선처럼 내 배가 부풀어 오르다가 어느 순간에 펑 터져 죽을지도 몰라. 난 누구한테 이런 내 비밀을 말해야 할까?”
◆ 선택과 책임으로 이루어진 현실의 한 모습
하연이는 10대 미혼모가 맞닥뜨리게 되는 두 가지 선택의 문제를 고스란히 겪는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낳게 되었을 때는 기를 것인가, 아니면 입양시킬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 선택과 포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미리 약속하지 않은 이상 어느 쪽으로 뒤집어도 정답은 없다. 아기를 없앤다. 아니 낳아서 기른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내가 살 길은 어디에…… 어떤 선택이 최선일까?”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하연이의 모습을 통해 관계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에 대해서 일깨운다. 선택과 책임으로 이루어진 우리 삶의 혹독한 진실의 한 모습을 비추면서도, 이 소설은 어느 쪽이 반드시 올바른 선택이라고 섣불리 얘기하지 않는다. 대신 각 선택의 순간에서 주인공이 스스로 판단하고 건강한 자존감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제목에서도 암시하듯, 하연이를 통해 작가는 누가 뭐래도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고,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아픔을 이겨내고 힘내서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