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이후 철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하버마스, 철학의 자리를 다시 묻다
철학은 고대 이래로 고정불변의 진리에 이르는 초월적 특권을 누려 왔다. 그런데, 그 특권을 잃어버린 지금 철학은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 《탈형이상학적 사고 1》은 철학 자체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20세기 후반에 전개된 과학의 비약적 발전과 전통적 이념의 붕괴 및 해체, 가치 다원화 속에서 초월적인 것을 지향하는 형이상학은 붕괴할 처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사실상 철학 그 자체였던 형이상학의 위기는 철학 자체의 위기로 이어졌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변화를 살피면서 철학의 자기갱신을 선포한다. 그리고 더 이상 초월적 기초를 전제하지 않지만 이를 충분히 이해하는 철학, 즉 탈형이상학적 사고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 기획의 출발점에서 그는 칸트, 헤겔, 피히테 등의 독일 관념론이 지니는 형이상학적 전통과 현대 분석철학, 미국 실용주의, 현상학을 종합적으로 살피며 다음과 같은 질문에 천착한다. 철학은 과학과 구별되는 사고 형식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언어, 의사소통, 실천적 이성은 철학의 새로운 기반이 될 수 있는가? 근대성과 종교는 공적 영역에서 어떻게 조우할 수 있는가? 하버마스는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철학을 재정립하고자 그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핵심 기반으로 삼아 철학, 사회학, 언어학 등 폭넓은 주제를 가로지르며 철학의 본질과 기능 및 철학함의 방식을 탐색한다.
그는 철학의 위기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철학은 여전히 삶을 조망하고 의미와 가치를 모색하는 고유한 사유 방식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철학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선언으로서, 이후 하버마스의 사고 여정 전체를 떠받치는 토대가 된다.
시대의 요구에 응한 철학,
세계와 대화하다
《탈형이상학적 사고 2》는 전작에서 정립한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철학의 과제를 성찰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종교, 정치, 다문화주의 등 현실의 문제에 다가간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이루는 핵심적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다. 21세기에는 세계화를 비롯한 각종 정치적·사회적 변화가 급격히 이뤄지고 철학적 별자리 역시 변화하는데, 이러한 현실 조건 아래 철학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가? 이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하버마스는 종교와 철학의 긴장 관계 해소,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종교적 시민과 세속적 시민의 공존 등 철학과 현실 사회를 관통하는 심층적 논의를 펼친다. 하버마스는 철학이 자유주의 국가 내의 종교와 세속적 이성 간 ‘번역가능한 대화’를 실현시키는 중재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종교, 과학, 정치 그리고 철학 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구체적 맥락 안에 철학을 재배치한다. 종교 갈등, 정치적 정당성, 민주주의 시민적 의사소통을 고민하는 오늘날 다문화 사회에서 이 책은 탁월한 철학적 도구가 되어 줄 것이다. 동시에, 이로써 철학은 여러 세계관이 부딪치는 현대 사회에 상호이해와 공존을 가능케 하는 실천적 사고로 발전하여 자리 잡게 된다.
하버마스는 전작을 낸 후로 24년 동안 사고의 범위와 깊이를 확장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함으로써 그의 철학을 고도화해 왔다. 《탈형이상학적 사고 2》는 이 수십 년의 사고 여정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즉 우리는 《탈형이상학적 사고》 2부작을 통해 하버마스의 철학이 이론적으로 발전되어 완성에 이르고, 나아가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는 실천적 철학으로 도약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