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식은 그것이 답하고자 한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잊는 순간 과학으로서의 특성을 상실한다”
-벤저민 패링턴, 「그리스 과학: 현재적 의미」
과학책을 몰입해서 읽는 경험을 선사하며 과학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책
뉴턴은 심술궂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첫 번째 주요 저작인 『프린키피아(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쓸 때 “논쟁을 싫어했기 때문에” 일부러 난해하게 적었다고 한다. 수학을 겉핥기로만 아는 사람들이 덥석 물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의 책을 읽고 좌절한 어느 케임브리지 대학생은 지나가는 뉴턴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도,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쓴 분이 저기 가신다.” 하지만 어찌하랴? 『프린키피아』는 중력의 원리를 최초로 밝힌 책으로서, 무시하기엔 ‘과학계의 경전’이라 불릴 만큼 위대한 책인 걸….
과학책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좌절을 맛보았을 것이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든 훌륭하다고 널리 인정받는 과학책을 ‘나도 한번 읽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샀다가 너무 어려워서 그대로 책장에 꽂아둔 경험 말이다. 역시 과학은 나와 맞지 않는다며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러기엔 그 안에 담긴 논리와 철학적 사유가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다면, 이 책을 주목해보자.
『과학의 첫 문장』은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 원전 36권을 소개하며 과학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던 과학사 책과는 다르다. 한때 한국 과학계를 들썩이게 했던 초전도체 이슈나 최근 뜨겁게 떠오르는 양자컴퓨터 등등 우리는 대개 신문 기사나 온라인상의 화젯거리로 과학을 접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과학이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망각하게 되고 관심도 점차 멀어진다.
이 책은 다시금 과학의 본질을 탐구한다. 위대한 과학 저술의 발달사를 따라가며 과학이 수행되는 양상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저술을 짚는다. 인간이 셀 수 없는 것은 우주에 없다며 수학을 과학의 도구로 들여온 아르키메데스의 「모래알을 세는 사람」부터, 우리은하가 사실 만물의 거대한 체계에서 아주 조그마한 점에 불과함을 가르쳐준 에드윈 허블의 『성운의 왕국』까지, 개개의 과학적 발견 자체를 강조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과학을 생각해왔는지 조명한다. 그로써 진정으로 과학에 푹 빠져들어 지식과 맥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기쁨을 안긴다.
“지구에 대한 이론이 지구 위에서 생성된 다른 것들에 대한 이론보다 먼저 정립되어야 한다.”
-조르주-루이 르클레르(뷔퐁 백작), 『박물지』
한 권으로 읽는 지구·생명·우주의 역사: 멀리 하기엔 너무 매력적인 과학 이야기
‘지리학(geography)’과 ‘지질학(geology)’은 무엇이 다를까? 지리학은 고대 바빌론 이래로 존재해온 지도를 발전시킨 그리스 지도 제작자들에 의해 탄생했다.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사서 에라토스테네스는 『지오그라피카(Geographika)』라는 최초의 지형학 학술서를 쓰며 처음으로 경선과 위선을 지도에 표시했다. 그렇게 지구 과학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리스의 지리학은 지구 표면의 현재 상태만 관찰할 뿐 지구가 어떻게 현 상태에 이르렀는지, 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17세기까지도 지질학은 새로운 과학으로 도약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1740년 프랑스 왕실 정원의 큐레이터로 식물원과 동물원을 관리하던 뷔퐁 백작은 동식물을 포함한 방대한 지식을 담은 50권짜리 백과사전 『박물지』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일에 들어가자마자 뷔퐁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어느 쪽에서도 이 책이 시작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박물지』 1권에서 지구의 내부 구조와 역사를 다루며 새로운 과학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하천이나 바다의 움직임, 토양의 침식같이 ‘현재도 관찰되는 물리적 과정’으로 지구 과학의 현상을 설명하려 했다. 지구는 이례적인 사건으로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원칙은 역사를 뒤집는 담대한 결론으로 이어졌다. 당시 신학자들이 성경으로 창조의 시점을 추론하며 계산해낸 지구의 나이 6000살은 너무 적다는 것, 지구의 역사는 아주, 아주, 길다는 것이었다.
『과학의 첫 문장』은 지구와 생명과 우주의 역사,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와 생명과 우주를 탐구해온 사람들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 안에는 수많은 학자의 감정과 고민,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는 주장, 그리고 특출난 위치를 차지하는 과학책들이 담겨 있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과학 지식과 도구들이 사실은 격렬한 투쟁으로 얻어진 기적과 같은 선물임을 알려주는 이 책에서 우리는 과학의 성취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얼굴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