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 연구의 최고봉 … 말년의 완숙한 이론 담겨
‘생물학의 아버지’가 남긴 과학적 사고와 철학적 사유의 결정판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에서 생물학 연구가 갖는 비중은 매우 크다. 이것은 지금까지 전하는 그의 저술에서 생물학 저술이 3분의 1을 넘게 차지한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연구는 동물들에 대한 박물학적 기록인 『동물지(Historia animalium)』에서 시작해서, 생명의 다양한 능력들을 다룬 『영혼론(De anima)』과 영혼의 능력을 가능케 하는 신체적 부분들에 대한 연구인 『동물부분론(De partibus animalium)』을 거쳐 동물의 생식 능력을 다룬 『동물발생론(De generatione animalium)』으로 이어진다.
『동물지』가 550여 종에 이르는 동물들에 대한 탐문과 관찰을 바탕으로 사실들을 기록했다면, 『동물부분론』은 동물들의 내외부 기관들이 어떠한 기능을 실현하기 위해서 있는지를 목적론적으로 설명한다. 한편 『동물부분론』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공통된 기능인 생식과 발생을 다루고 있어, 앞선 저술에서 시도된 목적론적 설명의 최정점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생명체에 속하는 생식의 능력, 배의 발달 과정, 유전 현상 등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완숙한 생물학적 이론을 이 책에 담아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단계적 상승을 표현하는 ‘자연의 사다리’와 ‘피’가 있고 없는 동물들의 이분법을 토대로 사람을 비롯한 동물들과 곤충들의 생식과 발생을 그에 관여하는 생식기관들의 기능과 관련해서 설명한다. 설명의 대상도 태생동물, 난태생동물, 완전한 알을 낳는 난생동물, 불완전한 알을 낳는 난생동물, 애벌레에서 생겨나는 동물들, 자연발생을 통해 생겨나는 동물들과 곤충들로 구분하고 선행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가운데 생명체의 발생 문제를 논의한다.
치밀한 분석과 비판적 탐구로 쌓아올린 고대의 ‘발생학’과 ‘유전학’
『자연학』과 『형이상학』 생성 이론 논의에 공백 메워
『동물발생론』에서 동물의 발생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그 하나는 ‘발생학’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학’에 해당한다. 이 두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근본 개념들과 원리들이 생명체의 발생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생명체의 발생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어떤 점에서 현대 생물학과 만나고, 또 어떤 점에서 갈라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동물의 발생은 스페르마의 도구적 운동이 경혈에 전달됨으로써 실현된다. 이때 스페르마의 운동은 그 안에 들어 있는 프네우마의 열기가 일정한 로고스에 따라 작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오늘날의 생물학 용어를 사용한다면, 스페르마의 운동에 의한 생명체의 발생 과정은 생화학적 과정이자 유전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는 ‘합법칙적 지향(teleonomical)’ 과정이다. 이 과정의 지향점은 물론 부모와 종이 같은 개체의 재생산이다. 이 사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술 여러 곳에서 “사람이 사람을 낳는다”는 공식에 담아 표현했는데 이것은 현대 생물학의 “불변성 복제(invariante Reproduktion)”의 관념을 담은 것이다.
그러면 동물의 발생 과정에서 종적인 보편성 이외의 개별적 특성들은 어떻게 생겨날까? 여아의 출생, 이변의 발생, 아버지를 닮은 남아의 출생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일반적 설명을 함께 살펴보면, 그의 유전 이론의 몇 가지 기본 특징들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첫째, 스페르마의 운동이 발생 과정에서 얼마만큼 관철되는지에 따라 다양한 유전 현상이 나타난다. 그 운동이 경혈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력하다면, 아버지를 닮은 남아가 태어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변’이 출현한다. 둘째, ‘이변’ 현상은 스페르마의 운동 능력 이외에도 다양한 요인들, 예를 들어 나이, 체질, 영양, 기후, 지역적 조건과 같은 신체적 환경적 요소들의 영향 아래서 일어난다. 셋째, 스페르마 안에는 하나의 ‘운동’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운동들(kinēseis)’이 포함되어 있다. 이 복수의 운동들 가운데 어떤 것은 실현되고 어떤 것은 실현되지 않을 수 있는데, 이에 따라 서로 다른 유전 현상이 나타난다.
근대 과학자들의 제한된 평가 넘어서는 ‘탐구와 발견의 길’ 제시
실체와 생성, 질료-형상, 목적과 필연성 등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충실한 안내자
그렇다면 『동물발생론』은 발생과 유전에 대한 고대의 일반론에 머무는 저작일까? 옮긴이 조대호 교수(연세대)는 너무 협소한 인식이라고 지적하며 『동물발생론』에는 “생명계의 놀라움을 보여주는 사실들에 대한 관찰과 그에 대한 설명이 가득하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예로 이종 결합의 가능성과 이 결합에 의한 새로운 종의 출현(2권 7장), 난태생과 태생 상어에 대한 관찰 기록(3권 3장), 연체류의 교접완에 대한 관찰(1권 15장), 암수한몸 동물에 대한 관찰(2권 5장) 등을 꼽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명계의 놀라운 현상들을 다루면서도 자신의 탐구 방법을 충실하게 따른다는 점도 강조되어야 한다. 『분석론후서』가 학문적 인식을 가져다준 ‘논증’의 모델을 제시했다면, 『동물발생론』에는 그러한 논증의 출발점이 되는 전제들을 ‘탐구하고 발견하는 방법’이 제시된다. 이러한 ‘탐구적 추론’은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르네 데카르트 등 근대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평가(‘삼단논법적 형식의 논증’)를 넘어서는 과학적 방법론인 것이다.
『동물발생론』에는 ‘생물학의 아버지’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오명을 안겨준 주장들이 담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각류와 일부 곤충들의 발생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한 ‘자연발생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잘못된 것으로 단정하는 대신에 어떤 이유에서 그런 관찰과 설명에 도달했는지를 주목한다면, 존재와 생성의 관계, 기술적 제작과 자연적 발생에서의 질료-형상설, 개별적 실체의 발생 과정, 목적과 필연성의 관계 등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루는 철학적 문제와 해답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