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번역체”라는 단어는 여전히 살아 있을까?
우리는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문장을 가리켜 ‘번역체 같다’고 한다. 번역한 글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특징을 어설프고 헐거운 문장에 빗대는 까닭은 그만큼 한국어로 옮겨진 글들의 상당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17세기 영국의 번역가인 존 드라이든이 〈번역 10계명〉이라는 번역 지침까지 따로 정리했던 데에서 짐작할 수 있듯 ‘원문의 뜻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번역’은 지금뿐만이 아니라 번역이 처음으로 시도된 이후 내내 되풀이되어 온 고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부자연스럽게 읽히는 번역문이 여전한 까닭은 무엇일까? 번역이란 기계 부품을 갈아 끼우듯 한 언어의 단어를 다른 언어의 단어로 교체하는 작업이 아니라, 원문에 담긴 의도를 헤아린 다음 독자의 감각에 맞게 변환하는 과정이다. 이처럼 저자와 독자를 잇는 번역은 곡예와도 같아 조금이라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오역이나 왜곡으로 변하기 쉽다.
예를 들어 ‘push expectation’과 같이 얼핏 단순해 보이는 표현에서도 ‘기대를 밀다’라는 대략적인 의미는 잡히지만 막상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으로 옮기자니 막막하게 느껴지고, 그렇다고 매끄럽게 다듬자니 원문을 훼손하는 것 같아 두려워진다. 초보 번역가들이 자신의 번역 결과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단어별로 하나하나 옮기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사정에서 비롯된다.
《번역, 이럴 땐 이렇게: 실전편》은 오역이나 기계적인 직역이라는 두 함정에 빠지지 않고 ‘우리말처럼 읽히는 자연스러운 번역’을 해내는 노하우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 준다. 저자는 통번역 30년, 대학 강의 20년을 진행하면서 초보 번역가들이 어색한 ‘번역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를 반복적으로 마주한 끝에 이를 해결하고자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의 ‘구조’와 ‘표현’이 다르다는 데 초점을 맞춰 번역하고 가르치며 깨닫게 된 평생의 노하우를 책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작 《번역, 이럴 땐 이렇게》에서 ‘구조’의 차이를 번역에 반영하는 방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다면, 이 책에서는 번역 현장에서 쓰인 다양한 예시를 바탕으로 ‘표현’을 전환하는 방식에 대해 소개한다. ‘실전편’이라는 도서 제목처럼 이 책에서 저자는 실제로 쓰인 지문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번역체에 갇혀 있던 번역문을 지금 일상에서 오가는 생생한 한국어 표현으로 다시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준다.
초보 번역가들의 세 가지 실수
초보 번역가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많다. 하지만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는 대체로 세 가지 정도이다.
그 가운데 첫 번째는 그동안 열심히 외운 어휘 책의 뜻풀이를 기계적으로 대입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번역이란 필자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살아온 독자에게 필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 뜻을 다듬어 옮겨주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번역은 그저 한 언어로 쓰인 의미를 그에 대응하는 다른 언어의 의미로 교체하는 것을 넘어서, 한 언어에 축적된 문화와 역사를 다른 언어에 새겨진 문화와 역사에 맞게 새로이 써내려가는 작업이다.
따라서 외국어로 글을 쓸 때에는 그 글을 읽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격언은 그 반대의 경우인 영한 번역에도 그대로 적용되지만, 정작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에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조언은 번역 현장에서 자주 간과된다. 예를 들어 ‘sustainable New Year’s resolutions’라는 문장을 접한 초보 번역가의 상당수는 ‘지속 가능한 새해 결심’이라는 풀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지속 가능한 새해 결심’이라는 표현은 낯설기만 하다. 한국인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번역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영어 지문을 글자가 아니라 ‘의미’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이고 둘째, 중심어인 명사와 어울리는 표현을 고민한 다음 셋째, 문맥을 반영한 표현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순서에 맞춰 앞의 문장을 번역하자면 결심을 의미하는 ‘resolutions’가 문장의 축이니 그에 맞춰 ‘sustainable’를 한국어로 옮겨 ‘꾸준하게 이어가는 새해 결심’ 또는 ‘한결같은 새해 다짐’으로 다듬는다.
초보 번역가들이 저지르기 쉬운 두 번째 실수는 문장을 구성하는 영단어를 하나하나 모두 번역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This building will be forever preserved”를 초보 번역가들이 번역하면 대부분은 ‘이 건물은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라고 옮긴다. 그러나 ‘영원히’와 ‘보존될 것이다’는 서로 뜻이 겹치므로 ‘이 건물은 영원할 것이다’와 같이 하나로 정리해 번역한 문장이 한국인들에게 훨씬 자연스럽게 읽힌다.
초보 번역가들이 저지르기 쉬운 세 번째 실수는 영영사전에 나온 여러 뜻 가운데 대표적인 뜻 한두 가지만 골라 소개한 어휘 책에 갇혀 번역한다는 것이다. 영단어를 암기하기 쉽도록 정리해 준 어휘 책들은 우리가 영문을 이해하는 첫 발판이 되어준다. 하지만 번역 현장에서는 이 첫 발판이 초보 번역가들을 가두는 단단한 감옥으로 변한다. 한 단어에는 사전에서 소개하는 제1의미뿐만 아니라 다양한 뜻이 들어 있고, 맥락에 따라 사전이 품지 못한 다양한 의미로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번역 공부란 익숙하다고 믿어 왔던 단어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뒤늦게 발견하며 그동안 달달 외웠던 ‘Limit는 제한하다’ ‘잘한다는 well’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결코 대체하지 못하는 ‘사람의 번역’
최근 인공지능 서비스의 이미지 생성 기능을 활용해 SNS나 메신저 앱의 프로필 사진을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바꿔 올리는 챌린지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이처럼 인공지능 서비스가 우리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그에 대한 거부감이나 불안감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직업에서 항상 가장 먼저 거론되는 통번역사들은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줄 미래를 마냥 낙천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번역 현장에서 기술번역 분야를 제외하면 인공지능 번역이 사람의 번역을 대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머릿속을 맴도는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은 굉장히 지난한 과정이다. 문화와 역사가 다른 두 언어를 아울러야 하는 번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까닭에서 아무리 정교하게 흉내 낸다고 할지라도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인공지능이 행간에 숨은 참뜻을 살피고 맥락을 헤아려 말을 이어주는 사람의 번역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저자는 확신한다.
나아가 저자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나날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몫으로 남겨진 번역의 영역이란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다듬어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듣는 이와 말하는 이 사이에서 양쪽을 중개하며 타인의 말에 대해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고민하는 ‘태도’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