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의 삶이 쓰는 퀴어 감정의 계보
삶의 내밀하고 궁극적인 부분은 말로써 종종 어긋난다. 또한 감정이나 사유를 세밀히 되살피는 회고록은 자칫 이상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러나 마사 누스바움이 『정치적 감정』에서 말했듯 좋은 이상은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달리 말하자면 실제 삶, 현실은 언제나 이상과 맞닿아 있다. 육체적이고 궁핍하고 허약하며 우수한 실제의 삶이야말로 나아질 가능성을 상상하며 그것을 현실화하려고 애쓰는 삶을 포착한다. 이 책의 이야기에서도 실패와 낙담이 거듭된다. 거기서 어떤 독자는 애틋하고 한심한 친구에게 짓는 표정을 내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미 주가 거듭 강조하고 우리 역시 타협의 여지 없이 견지하는 믿음, 그 어떤 가해도 피해자 탓이 아니라는 믿음에 기대어 다음 이야기를 청해 듣게 된다. 실제 삶이란 원래 이런 식이다. 매끄럽긴커녕 봉합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우후죽순으로 고개를 드미는 법이다. 게다가 나를 까뒤집거나 트라우마의 기저를 파헤치는 일은 민망하고 언짢다. 여과 없이 말하려 하지만 과잉과 과장으로 발을 헛디딜 때도 많다. 이 일에는 분명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며, 미미 주 작업의 특별함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실제 삶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뜻밖의 가능성이 열린다. 그 삶은 멍함, 분노, 불안, 수치심 등에 씌워진 장막을 걷어내고, 그로써 감정들은 반작용을 일으킨다. 가령 우리는 분노하고 불안해하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 싸워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들을 걸러내며, 멍하고 무뎌지기 때문에 감정의 홍수를 견딘다. 또한 수치심의 망령들이 매 순간 내 안팎을 배회함으로써 나는 좀더 나은 쪽으로 등 떠밀린다. 가역적이고 불확실한 감정들은 변혁적이고 결정적으로 삶을 구성한다. 이상적이고도 현실적이며 정치적이고도 개인적인 지대가 교차한다.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 기존 관념을 탈피한 퀴어한 감정들을 토대로 삶을 재구성해볼 수도 있다. 미미 주가 안착했던 공동체들이 단서가 된다. 호혜와 상호부조의 논리를 촌스럽다고 치부하지 않는 이 공동체는 다채로운 존재를 주축으로 관계망을 확장한다. 무수하고 구체적인 저항과 투쟁의 언어가 이곳에 들어서며, 모든 실제의 삶은 퀴어해진다. 풀뿌리운동, 감옥폐지운동, 흑인 트랜스와 아시아계 노동자를 위한 인권운동, 주거정의 투쟁, 무료 식자재와 약재의 상호부조 네트워크 등 모두 변혁적인 감정을 허락하고 존재를 온전히 수긍함으로써 세워진 공동체다. 이들은 끝없는 계보에 자리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 사람의 삶이 곁가지를 뻗어내며 선택한 가족과 친족들로 연결되는 장면을 지켜볼 수 있다. 미미 주는 더이상 폭력에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의 포부는 이렇다. “어느 날, 나 역시 조상이 될 테다.”
사랑의 돌림노래
미미 주는 정해진 답을 찾는 게 아니다. 그가 단언했듯 느끼지 말아야 할 감정은 없기에, 그의 여정은 “회오리치고 술렁”인다. 묻어뒀던 감정은 사막이나 해변, 절벽, 숲에서 터지기도 하고 정원과 공원, 방 창가에서 뻗어가기도 한다. 이 책은 1장 ‘멍함’에서 시작해 ‘분노, 불안, 애도, 불신, 수치심’을 살펴보고 ‘현존, 공동체, 기적’을 체험한 뒤 마지막 10장 ‘사랑’에 이르지만, 사실 이 모두는 매 순간 공존한다. 저자가 이 책을 마음 가는 장부터 읽어도 된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의 여로는 굴곡지고 사랑은 곳곳에 있다. 우리는 미미 주와 함께 휘청였다가 다시 털고 일어나면서 이 일이 마치 살아가는 일과 살아남는 일을 닮았음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말할 때 삶을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책을 다 읽을 즈음 태곳적부터 시작된 강력하고 끈질긴 힘, 삶을 에워싸는 힘이 바로 사랑이었음을 받아들인다. 사랑은 무형이 아니다.
이 책은 저자의 끝나지 않는 사랑의 돌림노래이자 우리에게 건네는 초대장이다. 초대장에는 한 줄기 글귀가 적혀 있다. ‘사랑을 두려워하지 말기’. 이에 우리도 노래로 화답한다. “고통과 광기와 어리석음의 나날들, 오직 사랑만이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주리”(『피가로의 결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