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자유의 위기를 맞아 되새기는
조지 오웰의 메시지
오늘날 조지 오웰만큼 많이 언급되고 인용되는 작가도 드물다. 그의 책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으며, 2017년 트럼프 취임 이후에는 『1984』가 미국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빅브라더’나 ‘이중사고’같이 그가 만들어낸 신조어는 일상적으로 쓰이며, 그의 이름도 Orwellian(전체주의적인, 억압적인)이라는 단어로 사전에 실렸다. 오웰은 75년 전 사망했지만, 계속해 읽히는 현재적인 작가다. 그가 평생 고민하며 글로 쓴 주제가 오늘날에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통찰이 여전히 가치 있기 때문이다.
오웰은 제국주의, 파시즘, 스탈린주의에 맞서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옹호했고, 그런 목적으로 글을 썼다. 시간은 흘렀지만, 자유를 억압하고 사상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행태는 계속 존재하기에 오웰의 글은 여전히 생명력이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세계 곳곳에서 극우 파시즘이 출현하고, 권위주의 정권이 집권하는 등 민주주의가 위협받으면서 오웰을 다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 책 『민주주의와 자유』는 조지 오웰이 쓴 민주주의와 자유에 관한 핵심적인 글들을 함께 엮은 것이다. 오웰이 추구한 정치적 글쓰기의 진수가 담긴 이 글들은 예리한 메스처럼 오늘날 거짓된 선동과 위선을 들춰내고 진실을 햇빛 아래 드러낸다.
진영을 넘어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과 싸우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서구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자유가 가장 큰 위기에 처한 시기(1939~1946년)에 쓰였다. 오웰은 이런 위기를 맞아 진정 자유를 지키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했는데, 그의 글에는 지금 읽어도 날카롭게 찌르는 대목이 가득하다.
예컨대 「유색인종은 제외하고」라는 글에서 오웰은 파시스트 국가와 싸우면서도 식민지에 대해 제국주의적 착취를 지속하는 소위 민주국가의 위선을 꼬집으며 전쟁의 승리가 우선이라며 불의를 지속하는 행태를 비판한다. 그는 이런 불의가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파시즘은 더욱 힘을 얻을 것이며 설사 민주국가가 승리한다 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히틀러 체제를 무너뜨리면서 그보다 훨씬 더 크면서 마찬가지로 나쁜 체제를 안정시키는 것이라면 승리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깥의 적과 싸워 이기는 게 먼저라며 내부의 소수자가 겪는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는 요즘의 세태를 지적하는 듯한 대목이다.
「공원에서의 자유」에서는 자유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의 시대에도 자신이 싫어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는지 “특정 견해에 대해서는 발언의 기회를 무사히 제공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사상의 자유를 옹호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마저도, 박해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적수일 경우엔 자신의 기존 입장을 철회해 버리는 게 보통”이라고 꼬집는다.
오웰은 파시즘과 같은 거악과 싸울 때도 지켜야 할 선이 있으며 파시스트라도 함부로 권리를 제약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전체주의적 수단을 권장할 경우 그 수단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해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때가 올 수도” 있는데, 이를테면 “파시스트를 재판 없이 투옥하는 게 버릇이 되면 그 방법이 파시스트에게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언론과 출판의 자유」) 오웰은 자유의 적과 싸우다가 도리어 자유를 억압하게 되는 일을 경계했다.
전체주의를 막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
오웰은 무엇보다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를 두려워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기초”가 사라지고, “지도자가 무슨무슨 사건은 ‘일어난 적 없다’고 말하면, 그 사건은 일어난 적이 없는 게 되는 것이다. 그가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고 말하면,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 되”기 때문이다.(「전체주의적 미래에 대한 전망」)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 걸-심지어 품는 걸-금할 뿐만 아니라 무슨 생각을 ‘하라고’ 명하기”에(「문학과 전체주의」) 자유도 진실도 문학도 말살되고 만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에도 경제적 불평등이나 인종차별, 금권정치 등의 문제는 있지만 전체주의와는 비교할 수 없이 낫다는 게 오웰의 판단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내가 법을 어기지 않는 한 ‘그들’이 나를 처벌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오웰은 “민주주의는 충분하지는 않아도 파시즘보다는 훨씬 나으며, 여기에 반대한다는 건 자기가 걸터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톱으로 잘라 버리는 행위”라며 민주주의를 강하게 옹호했다.(「파시즘과 민주주의」)
그러나 파시즘의 대중적 호소력을 얕잡아 보고 민주주의 사회 안에 존재하는 불의를 시정하지 않는다면, 어디서든 파시즘 운동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오웰은 경고한다. “10년 동안 일자리가 없거나 파산 직전인 사람이라면 문명의 종말이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라 전체가 어떤 구원자의 품에 모든 걸 내맡기려 한 것도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리뷰: 해들리 캔트릴의 “화성 침공”」)
장기간의 경제 침체, 중산층의 몰락, 이주민 차별과 혐오, 국가주의적 대결의 증가 등 세계 곳곳에서 파시즘의 토대가 구축되고 있으며, 그 위에서 극우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마치 오래전 오웰이 살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공고하다 생각한 민주주의가 다시 도전받고 독재와 전체주의의 위험이 다가오는 지금, 전체주의의 창궐을 예견하고 그와 맞서 싸울 길을 제시한 오웰의 글을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