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제조업, 다시 살릴 수 있을 것인가?
AI를 비롯해 첨단 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져가는 오늘날, 소위 ‘전통 제조업’ 또는 ‘올드 이코노미’의 위상이 낮아지는 오늘날,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제조 기업을 다시 살리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철강, 조선 등 전통 제조업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대어 살아가는 한국에서는 중요하다고도 절박한 질문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한국보다 먼저 그런 고민에 직면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철강기업인 일본제철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했는지를 보여준다.
왜 일본제철인가? 일본제철은 1901년 세워진 야하타제철소에서 시작해 후지제철과 합병하고, 다시 2012년에는 스미토모금속공업과 합병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일본 최대이자 최고의 철강기업이다. 그런데 그런 기업이 2018년부터 적자의 수렁에 빠졌고, 2019년에는 최대의 손실을 보고하면서 일본 제조업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 철강기업처럼 둔하고 변화하기 힘든 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다른 여러 제조업에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저자는 일본의 제조업을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살핀 베테랑 경제 기자로, 2022년부터 일본제철을 집중적으로 취재해 이 책을 내놓았다.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제철의 환생 스토리는 2019년에 하시모토 에이지(橋本英二)가 사장으로 취임하던 시기로 거슬러 오른다. 주 종목이던 일본 국내 제철 사업이 적자로 곤두박질치고, 회복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 역경을 딛고 변혁을 이룬 하시모토 사장과 직원들의 알려지지 않은 분투를 그렸다. 그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다는 용기를 북돋우는 다큐였다.”
제조 기업이 성장하려면 어떤 혁신이 필요할까?
일본제철은 2019년부터 2020년 3월까지의 실적이 약 4,300억 엔(약 4조 2,700억 원) 적자였다. 그 이전 해에도 이미 큰 적자를 보고했는데, 2020년 5월에는 역대 최악의 실적을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2019년에 일본제철 회장으로 하시모토 에이지가 취임하고 여러 부문에 걸친 개혁을 추진한지 2년이 지난 2022년 3월 결산에서 6,400억 엔(약 6조 2,000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한다. 일본제철은 대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을까?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를 통해 제조업의 현실과 성장 동력을 잃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해 고찰했던 경남대학교 교수 양승훈은 이 책을 추천하며 이렇게 정리한다.
“살펴보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등에서 출간하는 ‘경영 혁신 클래식’에 등장할 법한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다.
미래 시장성과 현재의 효율을 고려해 사업 축소를 검토하고, 품질에 기대어 고객과의 협상에서 강재의 가격과 정산 방식을 재조정하며, 상호 이익을 고려하게 하며 속도전으로 해외의 파트너사를 설득해 합작인수를 결행했다. 미래 먹거리를 위해 적재적소의 인력을 활용하고 투자를 단행하며, 기존 생산 프로세스 속에서 상호 학습을 통해 서로 다른 장소의 사업장과 사일로 조직의 격차를 타개했다. 일본제철은 이 과정을 통해 3년 연속 이어진 적자를 극복하고, 구조조정과 가격 인상으로 반등한 수익을 인도 조선소 인수합병전에 투입하고 탈탄소 전환에도 썼다. 이 모든 과정이 합쳐져 다시금 효율을 개선해 역동적인 조직 문화와 기술 혁신을 타진할 수 있는 현재에 이르렀다. 구조조정과 혁신의 과정에서 나타나리라 예상할 수 있는 조직의 저항이 있기는 했으나, 거함의 키를 잡은 하시모토 사장은 굳건하게 실행력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이 책에는 오래된 일본 제조업의 대단히 모범적인 구조조정과 혁신의 성공 사례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작금의 무역 환경에서 중화학공업화 50년을 거치면서 경화된 한국 제조업이 어떻게 거듭나야 할지 고민해보기 좋은 내용이다.”
국제경제의 변동과 혼란에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렇듯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제조 기업이 바람직한 경영 혁신을 통해 살아날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일본제철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는 그것만이 아니다. 2023년 12월, 일본제철은 US스틸을 약 141억 달러(약 20조 600억 원)에 인수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한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미 전 세계 4위 철강 생산량을 자랑하는 일본제철이 왜 미국의 3위 철강기업을 상당한 비용과 호의적인 조건(고용을 그대로 승계하겠다는 조건 등)으로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것인가?
일본제철의 행보를 촘촘하게 쫓아간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시도를 이해하려면 그 이전에 유럽의 아르셀로미탈과 손잡고 9조 3,634 억 원을 투자해 에사르스틸을 인수했던 일을 봐야 한다. 심지어 여러 법적인 난관을 극복하면서 힘들게 성공한 인수였다. 왜 여러 난관을 자처하며 인도의 철강기업을 인수했을까?
여기에는 “인사이더로 변신해 보호무역주의라는 거친 파도를 넘어가고자”하는 일본제철의 절박한 비전이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글로벌 3.0은 상공정에서 하공정까지 수직적 통합을 이루어 해외에 뿌리를 내리는 형태다. ‘메이드 인 재팬’에 집착하지 않고 일본을 거점으로 한 기존의 국제분업 모델에서 탈피하는 것, 그 위대한 첫걸음이 AM/NS인디아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폭발적으로 산업이 확대한 인도의 현재는 과거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겹친다. 그런 국면에서 철 만들기로 일본을 일으키는 데 공헌한 유전자를 가진 일본제철이 인도 기간산업의 청부업자가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지금 일본제철이 설계하는 글로벌 3.0은 세계 성장국의 국가 만들기를 책임지고자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국내 제철 사업을 구조조정하는 일을 비롯한 각종 개혁은, 단순히 회사를 살리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국제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초석이었다. US스틸 인수 역시 그 연장 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자문할 수 있다. 우리의 제조 기업은 지금 시대에 맞춰 어떤 비전을 세우고 실천해 나갈 것인가? 일본제철의 사례는 그 고민의 실마리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