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견디는 유머
이 시집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시인이 절망을 정면에서 마주하면서도 유머를 통해 그것을 견디는 독특한 시적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이 유머는 단지 익살스러운 장면이 아니라, 절망을 인식하고 언어화하는 방식의 일부다. 「까치집」은 까치 부부의 토속적이고 민담적인 말투로 부동산 이야기를 풀어내며, 도시의 주거 위기와 사회적 불균형을 은근한 풍자로 환기한다.
가장 유머의 미학이 도드라지는 작품은 「알 수도 있는 사람」이다. SNS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절세미인들과 노년 남성의 당황스러운 조우를 통해, 기술과 인간의 어색한 관계, 그리고 욕망의 아이러니를 자조적으로 풀어낸다. “야관문”, “아우아의 가슴” 같은 표현은 유쾌하면서도 쓸쓸하고, 결국은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과 충돌한다.
이러한 유머는 시인의 진지한 현실 인식과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슬픔을 더 정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며, 고통을 무장 해제하는 윤리적 유희로 기능한다. 『희망이라는 절망』은 웃음을 통해 절망을 해부하고, 그 너머의 진실에 도달하려는 시인의 태도를 강하게 드러낸다.
「붉은 숲」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기억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집단적 망각과 고통의 전이를 담는다. 「눈게야, 너 어디 갔니?」는 기후위기를 생태적 감각으로 환기하며, 알래스카에서 사라진 눈게를 통해 인간의 탐욕과 자연의 균형이 붕괴되는 것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툭, 잎이 지고」는 일상의 감각을 포착한 시로,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얼마나 미세하게 교차하는지를 감각적인 언어로 형상화한다.
존재론적 사유가 보다 깊어지며, 우주적 시선이 배어드는 시들도 눈길이 머문다. 「둥글게 둥글게」는 사과, 별빛, 밥공기, 비둘기 알 등의 이미지 속에서 만물의 순환성과 조화로운 리듬을 시적으로 풀어낸다. 「푸른 여권」과 「땅끝에서 보낸 날들」에서는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는 존재의 항해가 시작된다. 죽은 자와의 재회, 비언어적 차원의 감각, 낯선 여행지는 결국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
『희망이라는 절망』은 절망의 감정을 해체하고, 그 틈새에서 시적 진실을 길어 올리는 시집이다. 시인은 절망을 포장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말하는 윤리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창작의 고통과 언어의 부재조차 시의 일부로 삼으며, 시를 쓰는 행위 자체를 끊임없이 성찰한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문학을 어렵지 않게, 일상의 언어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산문시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물고 독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는 시집 전반에 걸쳐 뚜렷이 드러난다.
『희망이라는 절망』은 정한용 시인의 문학적 도전이자, 존재를 둘러싼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이 시집은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를 성찰하는 독자, 혹은 처음 문학을 접하는 독자 모두에게 넓은 울림과 공감을 안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