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살아간 마지막 날들은 사랑이었고,
아빠가 남기신 삶의 철학은 마지막 선물이었다.
누구나 죽음을 마주하는 시간이 온다. 매일매일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삶과 죽음이 돌고 도는 우리의 인생사. 죽음은 피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듯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마흔 중반의 딸인 저자는 아빠를 떠나보낸 뒤 아빠를 추억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빠를 애도하며 쓴 글들은 아빠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1999년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아빠는 부정과 분노의 시간을 거쳐 빠르게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신 아빠는 귀하고 아름다운, 죽음의 시간을 마주하셨다. 매일 아침 눈을 뜨시면 새로운 날에 감사하며 노래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많이 드시지는 못해도 입에서 꿀이 나온다며 식사를 즐기셨고, 차 안에서 클래식을 들으실 때면 “여기가 예술의 전당이네!”라며 행복해하셨다. 아빠는 연명의료에 매달리지 않으셨다. 대신 존엄한 마무리를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매년 유언장을 쓰며 차분히 죽음을 준비하셨다. 죽음 앞에서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내시려 했다. 소중한 사람을 환대하며 자신의 사명을 놓치지 않으셨고, 날마다 감사함으로 채우며 용서를 실천하셨다. 그리고 두려운 죽음이 아닌, 영원한 소망을 이야기하셨다. 끝까지 아빠다운 모습으로, 좋은 생각을 하며 지혜로운 포기로 삶을 마무리하셨다. 소중한 것들을 뜨겁게 사랑하며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남은 힘을 쏟아냈다.
아빠는 죽음을 앞두고 고마웠던 사람이든 힘들게 한 사람이든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하셨다. 끝까지 품위를 유지한 멋진 선택이었다.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아빠의 유언대로 빈소 없는 장례를 치렀다. 나중에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면 “먼저 하늘나라에 간다. 거기서 만나자”라는 아빠의 마지막 말을 전했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상실의 아픔은 컸다. 그래도 아빠가 매년 놓아주신 ‘죽음 백신’은 자연스럽고 평안한 이별을 맞이할 수 있게 했다. 아빠를 보내고 애도의 시간을 보낼수록 슬픔 이상의 감정과 의미들이 더해졌다. 슬픔을 이겨내려 애쓰기보다는 그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내 삶의 일부가 된 아빠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빠가 살아온 삶의 철학, 깊은 산속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아빠가 남기신 삶의 철학은 마지막 선물이었다. 슬픔에 더해진 아픔, 감사, 행복, 희망, 아름다움, 정…. 이 모든 선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에 담다 보니, 그리움이 몰려와도 결국 그 모든 기억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상실로부터 시작된 삶을 기록하며 공감하고 성장해가는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이별 영원한 소망
상실. 잃고 나니 그립고, 사라지니 아련하다.
누구나 부모를 잃는다. 우리는 시차가 있을 뿐, 모두 부모를 떠나보내야 한다. 그리고 상실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저자는 아빠가 돌아가신지 2년이 지난 지금, 아빠가 남겨주신 삶은 현재를 사는 나에게 희망을 찾는 여정이 되어주었고, 영원한 소망을 품게 했으며 진정한 아름다움에 다가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했다. 1장 ‘아름다운 이별 영원한 소망’에서는 존엄한 죽음을 준비한 아빠. 끝까지 품위를 유지한 아빠의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매년 유언장을 쓰며 죽음을 준비하신 아빠는 장례절차뿐만 아니라 고맙다는 인사를 수시로 하셨다. 우리의 이별이 슬픔을 넘어서길 바라셨다. 아빠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언제나 편하게 꺼내 놓으셨다. 일상에서 수시로 나누게 된 죽음의 대화는 피해야 할 주제가 아니었다. 아빠가 준비한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죽음 백신’이었다. 아빠는 죽음의 이별과 슬픔 앞에 “죽음 백신을 놔주는 거야.”라며 두려움과 슬픔만은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모두가 유언장을 써보길 권했다. 죽음을 앞둔 환우들에게는 삶을 정리하도록 도왔다. 함께 죽음을 준비하니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알아버리면 그는 남이 될 수 없다
2장 ‘한 사람의 인생을 알아버리면 그는 남이 될 수 없다’에서는 아빠가 생전에 사랑했던 아름다운마을에서 만난, 쉼이 필요한 사람들. 그들이 살아내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서로를 위로하며 감사함을 배우고 희망을 이야기 한다. 소중한 게 사람이면 좋겠고 누군가의 아픔이 나누어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책에 담겨 있다. 아픈 이들을 위해 손이 많이 가는 잣죽을 끓여 귀하게 대접하고, 수고로움을 자처하는 밥상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자식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가족들은 고통 속에서 일상이 사라지고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간다. 가족의 아픔은 일상의 무언가를 단절시켰고, 눈과 귀를 막고 오직 그 아픔만 보며 살아가게 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로가 온전히 마음을 나누며 행복할 수 있다는 소망을 지닌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
아빠와 함께한 자연이 나에게도 온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단풍나무 이야기를 시작으로 3장 ‘아빠와 함께한 자연이 나에게도 온다’에서는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들이 담겨있다. 아빠와 함께한 손님맞이 나무 단풍나무. 그곳에서 오고가는 사람들의 안부가 전해지고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산책길에서 만난 할미꽃, 질경이 같은 식물들도 알고 나니 귀해 보인다. 잡초와 함께 살아가는 법, 꽃에서 무소유를 배우고, 흐르는 물을 보며 인생을 배운다. 때로는 웃으며 행복했고, 때로는 울며 힘들었다. 그리고 기억들은 물 흐르듯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새로운 길을 내어 맑고 아름다운 냇가를 다시 보게 한다.
슬기로운 산 속 생활
아빠가 걸어온 길을 따라 걸으며 정착한 깊은 산골에서의 생활. 4장 ‘슬기로운 산 속 생활’에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행복한 농부엄마 희연이, 마이쮸 교장선생님, 깊은 산골 주치의 창촌의원의 이야기들은 소박하고 따뜻하다. 딸 하영이가 다니는 산골 초등학교 운동회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운동회의 꽃. 계주에서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앞서가던 아이가 갑자기 뒤돌아가서 뒤따르던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결승점을 통과하는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승패여부를 떠나 모두가 함께하고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우리로 사는 넉넉함으로 산골생활을 살아가는 저자는 그 속에서 아빠의 인생을 알아가고 배우며 행복을 찾는다. 아빠가 행복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