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국동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지욱 시인이 첫 시조집 『느티나무』를 작가 기획시선 39번으로 출간하였다.
이번에 펴내는 첫 시조집 『느티나무 생각』은 김지욱 시인이 2018년 등단 이후 꾸준히 정진한 결과물이다. 살뜰한 창작 기록물이자 참으로 소중한 미학적 결정판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는 거친 파도와 파도 사이에 서서 춤사위를 멈추지 않았다. 서귀포문학상, 경주문협상을 수상한 그의 시의 행간에는 자존의 힘이 곳곳에서 진솔하고 정갈하게 읽힌다. 그는 감각적이다. 감각의 촉수가 예민하여 순간 포착에 능숙하다.
올챙이 여러 마리 유리창을 헤엄친다
봇도랑 찰방이던 그날 그 꼬맹이들
비 듣는 유리창으로 속살속살 들어온다
- 「비」 전문
죽지 휜 파란 숲
처마 밑에
심어놓은
솔가지를 흔들자
후드득
지는 새 떼
다저녁
소나기 한 줄기
그 안에 머금는다
- 「솔거」 전문
예사로운 것을 예사롭게 흘리고 지나가서는 시와 만날 수가 없다. 시를 놓치고 만다. 「비」가 한 좋은 예가 되겠다. 비 내리는 날 화자는 유리창에서 올챙이를 만난다. 못물 속에 있어야 할 올챙이가 유리창에 나타난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상상력이 발동하면서 올챙이는 유리창에 달라붙어 헤엄을 친다. 신기한 일이다. 그때 올챙이만 등장하고 말았다면 시적 정황은 좀 싱거워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봇도랑 찰방이던 그날 그 꼬맹이들”이 “비 듣는 유리창으로 속살속살 들어”옴으로써 보다 절실한 상황을 연출한다. 진정 시의 맛은 이런 데 있지 않을까?
「솔거」는 간결한 직조를 보인다. “죽지 휜 파란 숲/처마 밑에/심어놓은//솔가지를 흔들자/후드득/지는 새 떼”라는 이색적인 정경을 앞세워서 눈길을 끈다. 특히 “지는 새 떼”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새 떼, 날아오르는 새 떼”가 아니라 하강 이미지를 동원하여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종장은 “다저녁/소나기 한 줄기/그 안에 머금”으면서 “솔거”를 의미화한다.
경남 하동군 진교면 술상리에 있는 「방아섬」 은 바다만 바라보고 명상에 잠겼다가 오는 여가 장소로 알려진 곳이지만. 화자는 “걸쇠 벗긴 어둠 갯바위에 부려 놓고/밤새도록 쓸어내린 돛단배 업은 바닷물/마음 둑 갈라 터지듯 모래톱 빠져나간다”라고 담담하게 노래하고, 자화상을 노래하고 있는 「충전기」는 오랫동안 고뇌하는 일을 통해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입학식」에서는 따사로운 희망을 읽고. 마침내 “종다리/우짖는 소리/실개천으로 흐”르는 「소묘」가 그리는 정경도 곱다. 「텅 빈 언어」는 “언어” 앞에 수식어 “텅 빈”을 장치함으로써 고뇌의 글쓰기를 상기시키고, 「새치」는 몸의 변화에 민감한 시편으로 어느덧 “쉰두 살 머리채는/눈 쌓인 초가지붕”이다. 세월의 흐름 앞에 무력한 자아가 겪는 변화의 심경을 깔끔한 단시조로 직조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의 가편 「安民(안민)」은 당면한 시대 상황을 노래한다.
권력은 천년인가, 만년인가 권력은?
백성은 어디에, 백성 권리는 어디에?
별안간
하늘 별들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
- 「安民」 전문
「安民」은 당면한 시대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모름지기 위정자가 어떤 마음 자세로 나랏일을 해야 마땅한지 낮지만 준엄한 톤으로 일깨우고 있다. 국민주권인 세상이다. 마구잡이 휘두르라고 일임한 권한이 아니다. 대체 “권력은 천년인가, 만년인가 권력은?/백성은 어디에, 백성 권리는 어디에?” 도대체 있다는 말인가? 가진 자는 권력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원하지만, 그것은 패망의 지름길인 것을 역사를 통해 이미 똑똑히 배우지 않았던가? 어처구니없고 어림없는 태도다. 그러나 백성은 권리를 누리기 원한다. 민주시민답게 살기를 희구한다. 막강한 권력으로 백성을 내리누르는 행위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망상이다. 그로 말미암아 어디 “하늘 별들이/떨어져 내리”기만 했던가? 국가 경제가 무너져 내리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다. 역사를 몇십 년 후퇴시킨 것이다. 삼척동자도 알 일을 모른다면 어떻게 깨우쳐야 할까? 「安民」은 그런 절박한 심경을 단시조로 축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그의 서정 세계는 내밀하고 깊으면서 명징하고 간명하다. 그리고 부단히 새로운 이미지 구현에 몰두한다. 더불어 시조의 본령과 본질을 추구한다. 곳곳에 고뇌의 흔적이 여실하고 무엇보다 자연을 통해 얻은 자각과 심미안을 바탕으로 서정성이 농후한 작품을 탐구하는 김지욱 시인에게 시조 쓰기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끝까지 인간으로 남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앞으로도 진정한 인간의 길을, 시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김지욱 시인의 첫 시조집 『느티나무 생각』이 세상에 널리 읽히고 독자들의 심장에 가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