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관한 추억을 계절에 담은 ‘제철 기억 메뉴’
추운 겨울 따뜻한 국물에 담가진 어묵꼬치가 움츠린 속을 데우고, 차가운 아이스크림 한입이 머릿속을 시원하게 식혀주듯이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은 때로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계절에 맞춘 음식이 아닌 신선한 메뉴를 선택해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
저자는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단순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며, 자아를 탐구하고 삶을 성찰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레시피는 요리를 위한 쓰임을 넘어 음식에 담긴 기억을 담담하게 전달하기 위해 설치된 작가의 비밀 장치이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계절마다 당연하게 떠오르는 메뉴가 아니라, 의외의 메뉴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름날 뜨거운 단호박 수프를 끓이는 이야기나, 겨울에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팥빙수를 준비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이러한 구성은 우리에게 익숙한 계절과 음식의 조합을 깨트려 독자들에게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계절이 떠오르는 책 속의 이야기가 그 틈을 자연스럽게 메우며 오히려 신선한 감각을 선사한다. 결국, 이 책은 사계절의 제철 재료가 아닌 제철 기억의 레시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말하자면 작가의 ‘제철 기억 메뉴’라고 할 수 있다.
꼭 계절에 맞는 음식만이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여름에 마시는 뜨거운 차 한 잔이, 한겨울에 한 입 베어 문 차가운 과일이 더 깊은 위안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의외성"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쳤던 감각과 경험을 새롭게 바라보면 어떨까.
매일 혼자 저녁 먹는 사람들에게
자취를 하면 요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하지만 필수라고 해서 꼭 귀찮고 번거로운 것만은 아니다. 냉장고를 열어 남아있는 재료를 꺼내고, 감으로 간을 맞추며, 어설프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한 끼를 차리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을 때도 있다.
이 책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소박하지만 맛있는 요리들을 소개한다. 프렌치토스트, 달걀샌드위치, 나폴리탄 파스타, 가지볶음, 멸치 주먹밥, 카레 등 흔한 재료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을 통해 작가는 하나의 이야기를 전한다. 프렌치토스트를 부치면서 느끼는 설렘, 냄비에서 끓어오르는 카레의 향이 불러오는 따뜻한 그리움, 반찬 하나 없이 멸치 주먹밥을 꼭 쥐어 한입 베어 무는 순간의 소박한 만족감. 이야기 전체에 부드러운 버터처럼 녹아 있는 감정들을 따라가다 보면, 요리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외롭지 않도록 돌보고 다독이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바쁜 하루 끝에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작은 위로다.
자취 생활은 때로 외롭고, 가끔은 귀찮으며, 어쩌면 조금은 쓸쓸하다. 그러나 나를 위한 한 끼를 차리고, 그 작은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혼자의 시간이 꼭 외로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책을 통해 요리가 그날의 기분과 상황을 반영하는 감정의 표현이자, 때로는 지나간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조각이 된다는 비밀을 깨닫고 배도 마음도 든든한 자취 생활을 만끽하길 바란다. 어쩌면 이미 냉장고를 열어 가볍게 한 끼를 만들어서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식재료를 준비하며 마음을 정돈하는 일
어느 때보다 정직한 대면의 시간
바깥에서 먹는 음식에 익숙해지면 우리가 먹는 것의 원물이 무엇이었는지 감각할 수 없게 되는 때가 온다. 김치는 배추였다는, 소시지는 육 고기를 가공한 것이라는, 떡은 쌀을 치대서 만든 것이라는, 만두는 여러 재료를 섞은 소를 따로 만든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들을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꼭 찾아야 하는 단골 메뉴라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배를 채운다면 그 요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하나씩 더듬어본다면 먹는 이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직접 요리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료를 소개한다.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자주 접하는 것들이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만지고 바꾸는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데치고, 무치고, 볶고, 갈고, 섞는 행위들을 요리 순서에 따라 함께 음미하며 상상해보자. 여유가 있다면 직접 그것을 따라 하며 마음이 어떻게 정돈되고 이어지는지 느껴봐도 좋다. 식재료를 자르고, 굽고, 말아보면서 그것이 내 마음과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고민해보면 묘한 평안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편 여러 가지 향신료와 양념의 맛도 생생하게 떠올려보자. 후추가 혼자서 어떤 맛을 내는지, 음식과 섞였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해보자. 올리브유과 마늘의 적정량은 어느 정도인지 나만의 기준을 세워보자. 요리과정의 조연인 줄만 알았던 요소들이 어떤 순간에는 클라이맥스처럼 강렬하게 나타난다. 우리 음식에만 있는 고추장, 간장, 된장 본연의 맛을 떠올려보자. 자극적인 맛에 맵고 쓴 인생의 어떤 순간들이 정신없이 휘몰아치다가도, 삶의 어떤 면을 버무려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냉장고를 청소하며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기도,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해보자. 어느새 우리의 식탁 위에는 지루한 일상을 벗어난 해사한 마음이 거나하게 차려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