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불교뿐만 아니라 주역, 천문, 지리, 역사, 예술,
정치, 경제, 출판, 복식, 음식 등을 밝혀내는 증거들이
타임캡슐처럼 담겨 있는 불복장(佛腹藏)
부처님을 형상화한 불상과 불화는 미술품이자 조각품이다. 부처님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단순한 미술품이 어떻게 예경의 대상이 되었을까? 정성을 다해 예경(禮敬)을 올리면 부처님이 나투어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종교적인 예배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닐까?
장승요가 용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어 생명력을 부여해 주었듯이 불교에서도 생명을 불어넣는 종교의식을 한다. 복장물을 봉안하는 불복장 의식(佛腹藏儀式)과 점안 의식(點眼儀式)을 봉행함으로써 미술품으로서의 불상과 불화가 아닌 중생을 구원해 주는 불멸의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이 종교적인 의식을 통해 단순한 미술품에서 종교적 의미를 포함한 상징성과 생기가 넘치는 성상으로 승화된다.
부처님의 형상에 의례의식(儀禮儀式)의 절차에 따라 비밀스러운 불복장 의식을 행해야 비로소 미술품이 예경의 대상이 되고, 진정한 부처님으로 탄생하게 된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바로 불복장 의식인 것이다.
▶불복장 의식은 언제 시작되었고 어떻게 변화하였을까
복장(腹藏)이라는 용어는 ‘장기(臟器)’를 뜻하는 ‘복장(腹臟)’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춘 곳집’을 뜻하는 ‘복장(腹藏)’으로 변천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데, 그 근본 의미는 ‘깊이 감추어져 있다’, ‘깊이 감추어 두다’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복(腹)은 배로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서 가슴과 다리 사이의 부위인데 신체의 중심이라는 뜻이며, 장(藏)은 ‘감추다, 숨기다’라는 뜻이며, 복장이라는 뜻은 ‘신체의 오장육부를 배 안에 감추어 숨기는 것’을 말한다.
불복장은 2~3세기 간다라 불상에서 시작되었다. 초기불상에서 불상의 가장 높은 정수리 부분에 사리를 모셨던 흔적을 시작으로 오늘날 불상의 복장물 봉안 위치를 살펴보면 정수리에서 등판, 몸통으로 차차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이후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불상 안에 사리나 경전 등 불법(佛法)을 상징하는 물품을 넣으면 영험이 깃든다고 믿었던 생신사상(生身思想)과 중국 전통 의학과 도교의 신체관, 신선사상이 융화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불상이 신성과 위엄 있는 영험한 부처님으로 된다는 중국 특유의 믿음인 상신신앙(像身信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생신신앙의 영향으로 신체의 장기를 의미하는 복장물이 형태를 갖추어 봉안되고 불상의 소재와 봉안 기법에 따라서, 또한 불상의 내부가 넓어져서 복장물의 종류는 불사리(佛舍利)로부터 200여 가지의 다양한 장엄구로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11세기가 되면서 경(經)·율(律)·론(論) 3장(三藏)을 봉안하는 법사리(法舍利)와 발원문을 봉안하는 양식으로 변화하였다.
우리나라의 복장물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7세기 경전인 『다라니집경』 권 1에 불복장 의식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고, 한국 불복장의 시원으로는 경남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보고 있다. 비록 배 부분에 넣는 복장은 아니지만 대좌에 사리 장치를 넣은 것을 보면 불복장과 비슷한 발상으로 생각되며 이후 고려 시대부터 배 부분에 복장을 넣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중국·일본과는 달리 장기모형은 발견되지 않았다.
▶미개척 분야인 불복장을 집대성한 저자 경원 스님
이 책 『불복장의 비밀』의 저자 경원 스님은 20대 초반부터 동학사 승가대학 호경기환(湖鏡基煥) 조실스님과 청봉혜묵(靑峰惠黙) 스님께 불복장법을 배웠다. 그 후 오랜 세월 우리나라 불교문화유산과 불복장의 원향(原鄕)을 찾아 연구했다. 국내에서 국외로 눈을 넓혀 고대 불교문화 발상지인 인도부터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실크로드 불교문화권을 순례하고, 관련 전시회와 학술조사에도 참석하며 연구해 왔다. 이 책은 경원 스님이 40여 년간 연구한 불복장 관련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불상에는 장기를 상징하는 후령통 외에도 전적(典籍)·불상(佛象)·불화(佛畫)·불구(佛具)·의류·고전(古錢)·해외 귀중품 등이 봉안되어 있어서 복장물을 통해 미술사적인 조상(造像) 형태뿐만 아니라 당시의 신앙생활·철학·의학·공예·회화·서예의 수준을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넓게는 대외 교류에 이르기까지 짐작할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문화 연구의 미개척 분야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