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배 시집《삼십 년 》, 매우 의미 있는 미학적 도전이자 성취]
이규배 시인이 7년간 암 투병을 하며, 지나온 30년간 세월을 41편으로 정리해 11년 만에 발간한 시집 《삼십 년》은,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시인 임동확에 의하면 “일찍이 그와 문학적 혈연을 맺고 천승세가 말한 ‘귀곡성鬼哭聲 뒷전치고 생기는 바다’(「서귀음西歸吟」)로 지칭되는 바와 같은 ‘귀소성’의 세계와 연결 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미학적 도전이자 성취“라고 상찬되는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임동확 시인은 이규배 시인이 첫째 애국계몽기 애국지사 이채(李倸, 1868~1948) 선생의 직계손으로, 연안 이씨 집안 가풍家風을 이은 가람 이병기의 시조 미학과 직접적인 혈연을 맺고 있다는 점, 둘째 국민연극 ‘만선’의 작가 천승세의 애제자로서 천승세 미학과 문학적 혈연을 깊게 맺고 있다는 점 등에 주목했다. 시집 뒤에 쓴 해설 〈별리別離의 정한에서 귀소성鬼笑性의 세계로〉에서 임동확은, 이규배 시인의 시 세계는 한국인의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심상으로 받아들여졌던 ‘별리’의 정한이 밑바탕에 흐르고 있으며, 치유될 길이 없는 세계와의 단절을 절감하는 동시에 극복할 수 없는 비극의 심연 앞에서 자아의 극단적인 심정을 내비치는 비장미를 그 특징으로 파악한다. 그는 ” 가만 귀를 기울이면, 그의 시들 행간에선 “우는지도 모르고 울고 있는”자의 울음이 “가을비”처럼 “후두두둑”(「비의 귀」) 거린다. 혹은 어느 “조용한” “봄날”의 “저녁” 무렵, 행여 “미워하”거나 “사무치는 마음”조차 “늙어버린”(「30년」)자의 숨죽인 목소리의 호곡號哭이 문득 가는 발길을 붙든다. 어디 그뿐인가. 조선조 영조 초기 명창 송흥록宋興祿이 진주 촉성루에서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인 「옥중가」를 부르는 순간,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수십 대의 촛불이 꺼지면서 들렸다는 그 귀곡성鬼哭聲이 은은히 나는 듯도 하다.“라고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의 비장미를 분석한다. 더불어 김수영이 말하는 “남”의 약점이나 단점을 “보기 전에” 제 자신의 허물이나 허위를 “먼저 보이는”(김수영, 「헬리콥터」) 자기 연민 내지 자기 풍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 김지하가 제시한 ‘흰 그늘’의 미학, “ 지난 세월 동안 굴곡진 그의 삶에서 오는 깊은 한恨과 짙은 ‘그늘’ 속에서 성스러운 ‘흰빛’, 즉 “내장이 빠져나간” 듯한 “목련” 위에 내리는 “첫눈”(「숫눈길」) 같은 그의 ‘흰 그늘’(김지하)의 미학은 여기에서 탄생한다. 그는 “몹쓸 병의 불안이 속삭여 오”는 가운데서도 “돼지 창자”의 “비릿하고 구수한/냄새”와 함께 “눅지근하게 퍼지”는 “흰 김”(「영광 버스터미널 순댓국집」) 같은 영적 비약의 세계“ 등에 주목해, 이규배 시인의 이번 시집이 한국시문학사의 큰 줄기 속에 엄연하게 ”있음“을 은연중 내비친다. 다만 임동확은 ”이른바 리얼리즘에도 모더니즘에도 포획되지 않는, 그러기에 행여 저평가되거나 외면당해 왔을지도 모르는 저만의 확실한 개성을 가진 시법“을 안타까워하는 동시에 새롭게 평가하면서, ”문득 하늘과 대지와 눈부처한 바라봄의 넓이와 사유함의 깊이가 깃든 큰 시선視/詩線의 시적 눈망울“을 이번 시집의 방향과 내용을 이해할 ‘열쇠’로 이번 시집을 안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