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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시간 여행

거꾸로 가는 시간 여행

  • 심정숙
  • |
  • 문예사조
  • |
  • 2025-04-05 출간
  • |
  • 122페이지
  • |
  • 135 X 205mm
  • |
  • ISBN 978895724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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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작품해설〉


내면의 아름다운 승화


홍 승 룡
(대전 CBS 이 밤에 생각나는 시 담당자)


〈1〉

시(詩)란 무엇일까?
시(詩)는 별나라에서 온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 안에서 있는 말로 된 예술이다. 예술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부담스러우면 “시는 말이다.”라고 해놓자. 말은 내가 쓰는 것이고, 내게서 떼어놓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떤 이는 “언어로 된 노래”라 했고, 어떤 이는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라고 했다.
시(詩)가 말이고, 말이라는 일상을 담는 그릇이며 그릇은 유별난 그릇이 아니라 투박한 것이라도 일상에 깃들여지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쓸 때 긴장을 갖기보다는 긴장을 푸는 듯하고 말의 깊이에 연연하기보다 말의 흐름에 마음을 쓰는 듯하다.
시의 가장 큰 힘은 우리에게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준다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추함, 노여움과 측은함 등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시를 쓰는 일은 감동을 지탱해 주는 말을 모아, 자기 자신의 감동을 안전하고 튼튼하게 자리를 잡게 하는 활동이다.
또 시를 감상하는 일은 시 속에서 지은이의 싱싱한 감동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 즉 지은이의 속 깊은 마음과 생각을 찾아내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를 튼튼하게 딛고 시의 세계로 한 발짝 두 발짝 다가서야만 비로소 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다.
좋은 시는 바른 마음가짐에서 태어난다. 좋은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하는 일이 된다.

〈2〉

이제 심정숙 시인의 마음의 문이 열렸다. 시인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것들과 꿈이 창공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날개를 달았다.
시인은 소박한 일상에서 아름답고 멋진 진실한 사랑의 마음을 발견했다. 시의 비행을 통해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의 지혜도 발견했다. 내면의 비밀과 상처와 꿈을 시로 비상(飛翔)시킨 시인은 깊고 맑은 영혼의 씻음을 받고 하늘을 다시 우러러 보며, 그 내면의 하늘 가장자리에 펼쳐져 있는 ‘눈 건너편의 푸른 초원’을 풍성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심정숙 시인은 이미 시간은 흘러 육신은 나이가 들었더라도 그 꿈들의 정신은 젊고 힘이 왕성하여 비상(飛翔)을 감행할 것이다.
시간은 더 이상 그 꿈들에게 인간이 구분해 놓은 시간과 날짜의 개념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간은 무 시간(無時間)이 될 수 있다. 지난날의 아픔과 고통의 상처들이 새로운 사랑, 새로운 시 쓰기의 구원자를 만났다.

〈3〉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생각한다. 자기 자신과 결부된 자존심이 있다. 자존심이 다치지 않도록 지킨다. 사람다운 가치를 인정받고자 한다. 외모와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자기 자신, 자기 가치에 대한 상처는 너무 불쾌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방어체계를 갖추어 기어이 남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욕망도 생긴다. 하기야 그런 가운데 발전도 이루어진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며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어떤 행위로 자신의 행위를 미화하고 합리화시켜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는 자들도 있다. 그것은 자기를 한껏 꾸미고 미화시켜 신비감까지 느끼고자 하는 빗나간 자서전 쓰기다.
심정숙 시인은 지나친 수사적 장식을 배제하면서 절망과 독백을 나타내지 않았다. 내면을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며 자기를 사랑하는 시인이다.
시의 세계가 자칫하면, 정상과 비정상의 곡예의 경계선에서 흔들릴 수 있는데, 심정숙의 시는 자신만의 평이함으로 자신만의 글밭을 수놓았다.

〈4〉

시는 삶에서 나온다.
시는 삶의 노랫말이다. 줄이면 삶이다. 그것이 생짜로 고스란히 들어있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녹아 있기도 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늘어놓았든지 간에 빨래를 짜듯이 꼭 짜버리면 삶의 덩어리가 남는다.
한 번이라도 경제적 이유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밀린 수업료 때문에, 준비하지 못한 그림물감 때문에, 집 앞에서 서성거리며 눈물을 훔쳐본 적이 있는가? 가난은 부끄럼이 아니라, 그저 불편할 따름이라고 몇 번이나 입속에서 중얼거렸나. 가난은 불편할 뿐 아니라 부끄럽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느껴야만 했던 지난날, 그 어린 날의 쓸쓸한 풍경이 있는가? 없다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없다면 허전할지 모른다. 살아가는 일의 강퍅함, 살아내는 일의 소중함조차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녔던 가난한 삶의 치열함이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만날 수 있고, 우리네 모두의 가난했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난한 이웃과 가난했던 과거를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체험으로 받아들여 시 쓰기에 나타내느냐에 있다.

명문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부러워 한참을 서서 학교를 바라보았다. 나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인 춘여고였다. 열심히 공부하면 갈 수 있겠지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명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남동생들에게 치여 고등학교는 못 가고 일찍이 ‘결혼’이라는 학교에 입학했다.
때로는 폭우가 쏟아지고, 또 어떤 날은 폭설이 내리고, 자욱한 안개가 걷히고, 햇볕이 비추는 날도 있었지만 10년 고개를 넘고, 20년 고개를 넘어 30년 고개를 넘어보니 나에게 상처투성이인 날이 많았다.
긴 터널을 지나고 보니, 지난 과거의 앳된 소녀는 온데간데없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억세고 억세게 변해 버린 강한 아줌마가 그렇게도 꿈꾸고 그리던 춘천에서 제일 유명한 명문고인 춘여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중략]
47세에 요양원에 취직해 그 많은 아픈 시간 속에서도 시설에서 일하면서 어르신들에게 많이 위로받고 의지하면서 밤낮으로 일하며 아이들 대학까지 보내고 산 세월이 있었다.

- 「거꾸로 가는 시간 여행」 중에서

심정숙 시인은 현대시에서 많이 쓰는 은유적 수사법을 사용하여 힘들었던 삶을 나타내고 있다. 은유란 가치 있고 중요하지만 아직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원관념)으로부터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보다 구체적인 것(보조관념)으로 옮겨지는 이동을 특징으로 한다.
시인은 남동생들에게 치여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일찍이 ‘결혼’이라는 학교에 입학하여 때로는 폭우로, 어떤 때는 폭설로, 자욱한 안개로, 햇볕 비추는 날로, 상처투성이인 결혼 생활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억세고 억세게 변해버린 자신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잘 처리하고 있다.

아장아장 걸음마 걷고 뛰는 아이
세발자전거 타고 소풍 나와 인생 공부를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모님의 밥을 먹고
자라서 사회생활 하며 부모님 곁을 떠나
가정이란 울타리를 만들고 살다

초년엔 깨 볶다가 중년엔 으르렁대며 싸우다가
노년엔 치매란 몹쓸 선물 받아들고
요양원에 월세방 하나 얻어 변기가 샘물인지
착각하고 반복적인 행동을 하면서 사는 인생살이

마지막 종착역이 오기 전에 목숨 걸고
이 세상 등지지 않으려고 애쓰건만
마지막 역이 기다리고 있는 임종이라는 역을
피할 수는 없겠지

아, 슬프다
이승에서 피어보지 못한 꽃을
천국에서는 활짝 꽃 피울 수 있을지.

- 「간이역(簡易驛)」 전문

위의 시 「간이역(簡易驛)」은 우리네 일생이 잘 표현되었다. 아장아장 걸음마 시절에서부터 부모님의 곁을 떠나 가정을 꾸리고 어느 새 노년이 되더니, 치매라는 선물을 받고 간이역(簡易驛)이라는 요양원에서 이 세상을 등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이 우리네 삶의 일생이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또 살아내는 것이 삶이야

행복을 미래에 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난 말이야, 어르신들을
십 년 넘게 모시면서

나이에 맞지 않게
앞으로의 몇 십 년
삶도 들여다보았어

삶은 순간순간
즐기며 사는 거야

순간순간이 모여
큰 산이 되거든.

- 「삶이란」 전문

시 「삶이란」은 시인의 삶의 가치관이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의 도전 정신을 통한 내면 의식의 변화와 도전하고 실패하며 얻은 가치관이 어르신들을 십 년 넘게 모시면서 깨달은 삶의 가치관으로 나타나 있다.

내 마음 정원에
‘분노’라는 나무가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매일 그 사람의 가슴에
총을 쏘았습니다
탕-탕-탕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니

내 마음 정원에
꽃들이 활짝 피었습니다.

- 「용서」 전문

나의 삶의 밭에
축복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인정의 열매
사랑의 열매
믿음의 열매

주렁주렁 열려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맷돌이 되어 함께 나누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나의 삶」 전문

시 「용서」와 「나의 삶」은 심정숙 시인의 삶의 가치관을 용서와 사랑으로 잘 승화되었다.

〈5〉

현대 문명은 시각(視覺)의 문화이다. 시(詩)에서도 회화성(繪畫性)이 전에 없이 강조되고 있다. 이미지가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 사실 이미지가 없이 시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시에서 언어는 이미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언제나 우리의 감각에 호소하고 사물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시가 구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니까 시는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 곧 이미지를 통하여 추상적 의미를 전달한다.
이미지는 관념과 사물이 만나는 것이다. 이미지는 신체적 지각, 기억, 상상, 꿈 등에 의해 마음 속에서 생산되고 언어에 의해서도 생산된다. 특히, 상상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결합시킨다. 그러니까 이미지는 시 속에서 언급되는 감각기관의 모든 대상과 특질을 가리킨다.
시의 이미지는 시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무엇보다도 해석이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장치이다. 전달하고 싶은 관념이나 실제 경험, 또는 상상적 체험들이 미학적으로 그리고 호소력 있는 형태로 형상화 시킬 수단을 찾는다. 이 수단이 이미지이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는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처럼 시의 이미지는 시인이 관념을 직접 진술하지 않고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현실감을 환기(喚起)시키고 예술적 효과를 나타내지만, 그 대신 시의 의미는 그리 용이하게 포착되지 않으므로 시의 모호성이 따른다. 시의 모호성이란 하나의 단어, 하나의 구절에서 두 개 이상의 의미를 불러오는 것이다.

찻잔 들어 달콤한 향에 취해
바깥 풍경 바라보니
온 천하(天下)가 다 푸르다

강 사이로 보트 한 대가 보인다
은빛 물결 사이로 질주하며
공작새 날개를 화려하게 펴 보이며 수 놓는다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멋진 포즈로 멋진 유럽 여자가 되어 찍은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한다

강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온 보트가 눈에 띈다
보트가 또다시 은빛 물결 사이로
질주하며 긴 도로를 수놓고 지나간다

오늘 이 순간 행복한 삶을 즐기고
내일은 또 긴 도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겠지.

- 「찻집에서」 전문

위의 시에서는 푸른 강변의 찻집에서 보는 바깥 풍경의 아름다운 모습이 잘 그려졌다. 은빛 물결을 이루며 질주하는 보트의 모습에 행복감까지 느끼게 하고 있다. 시인이 그려 낸 이미지이다.

시인의 또 다른 작품을 살펴보자.

보라색 모자 쓰고
여자친구에게
윙크하는 두 눈을
나는 보았어

쑥스러워 화장으로 가린
너의 노란 코를
발견했어

노란 코밑으로 보이는
콧수염은 아주 멋있어
여자친구가 좋아할 거야.

- 「팬지꽃」 전문

봄이 오면 나타나는 팬지꽃은 보라색 모자를 쓰고 윙크하는 두 눈, 화장으로 가린 노란 코. 멋있는 콧수염까지 시인의 상상적인 이미지 수법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신나는 체육 시간이다
음악에 맞춰 스탭을 밟는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몸이 흔들린다

무릎이 고함을 지른다
조금만 참으라고

그래도 좋다
지금 이 순간
추억 하나 만들자.

- 「라인댄스」 전문

체육 시간의 신나는 라인댄스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는 모습이 영상물을 보는 것 같다. 거기에다 아프다고 고함치는 무릎의 모습까지. 애매함이나 모호성이 전혀 없다.

〈6〉

세상은 각박하다지만 사랑과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분명히 있다.
내 안의 어린이가 세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 그것은 동심(童心)이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고결한 마음이다. 누구나 마음 한켠에 동심(童心)이 살아 있음을 믿는다.
성서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동심(童心)은 글로 나타낼 문자가 부족할 지경이다. 동심은 어떤 색깔일까? 사람들은 코발트색 같다고 한다. 맑은 청색이다. 따스한 봄날 언덕에 피어나는 새싹같이 파릇파릇하면서도 보드라운 것이다.

전교생이 흩어져
남이섬 푸른 숲 사이를
뒤지며 보물을 찾았다

여기저기서 ‘찾았다’를 외치며
본부석으로 달려가
보물을 교환했다

어린 시절 소풍 때 즐겼던
행복을 학우들과 함께
청춘의 꽃으로 피웠다.

- 「보물찾기」 전문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 가서 하는 보물찾기는 빼놓을 수 없는 순서다. 모두 다 보물 딱지를 찾기 위해 돌멩이를 발로 차고, 나무껍질 속도 살피고, 풀숲도 살핀다. 찾았다고 고함치며 기뻐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잘 그려 냈다.

뜨르르르 루루루
2교시 미술시간
내가 살고 싶은 집 그리기

풍경이 확 트인 넓은 기와집
앞마당 옆켠 연못엔
황금 물고기가 팔딱팔딱 뛰놀고

흔들의자 옆에 강아지 한 마리
꼬리 흔들며 간식 달라고
애교부린다

그네 타고 푸른 하늘 쳐다보며
조각구름 배웅해 주며
앞으로의 멋진 노년을
꿈꿔 본다.

- 「미술시간」 전문

나이를 먹으면 동심(童心)은 사라질까?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고 책임져야 할 것도 많다. 그러나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 같은 마음이 시인의 마음이다. 시인의 동심(童心)은 앞으로 멋진 노년을 꿈꾸는 것이다.
심정숙 시인은 행복의 비결을 동심(童心)이라 말하고 있다.
또 하나의 시 「연필과 지우개」는 잉꼬부부라며 우리에게 미소를 던져주고 있다.

시험을 봅니다
연필이 문제를 틀립니다
그럴 수도 있지 미소지으며
쓱싹쓱싹 지워 줍니다

알콩달콩 사랑하며
서로 도와 가며 사는
연필과 지우개는
학교에서 소문난
잉꼬부부랍니다.

- 「연필과 지우개」 전문

〈7〉

다른 사람의 강연을 들으며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어느 땐 성직자의 말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고령화 사회에서 요양원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현실적 고민거리다. 부모님의 부양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관리도 어려워질 때, 요양원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어른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곳이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쇠약한 어르신들이 요양할 수 있도록 특별한 시설을 갖추어 놓은 곳이다. 요양원은 중요한 선택지다.
이곳에는 요양보호사들이 있다. 어르신들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신체적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며,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한다.
일하시는 분들은 힘든 업무의 무한 반복이다. 고도의 참을성을 요구한다.
심정숙 시인은 이곳에서 천사다. 말에 실천이 붙어 있는 현장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뜻으로 막히지 않고 말로서도 막히지 않는다. 당당한 이유가 있는 사랑으로 시인은 이 땅의 천사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참고
아들을 얻었다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길렀건만
마지막 가는 길에 얼굴이나
눈도장 찍고 떠나려고
목메어 불러 보건만

눈앞에 보이는 건
자식이 아닌 요양원에서
가슴으로 만난 자식의 간호를 받으며
가는 길을 슬퍼하며 배웅해 주고
이승에서의 한 많은 삶
두 눈도 못 감은 채 떠나는구나.

- 「가는 길」 전문

온갖 희생으로 자식을 키웠다. 하지만 부모는 마지막까지 눈을 감지 못하고 찾아오지 않는 자식을 보고 싶어 한다. 인륜을 저버린 이런 자들이 한둘뿐이랴. 요양보호사들의 배웅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 눈물겹다.

○○치매 어르신 그 님이 오셨다
힘센 천하장사 되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지나가는 천사의 등짝을 후려친다

비명과 함께 뒤돌아보는
천사의 얼굴에는
부처님 모습이 보인다

목욕시켜 곱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한 ○○치매 어르신
눈 깜짝할 사이 조폭이 되어
천사의 얼굴 후려친다

얼굴에 멋진 훈장 새기고
활짝 웃고 있는 천사들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의
사랑이 보인다.

- 「조폭」 전문

시 「조폭」에서는 역설적 수법으로 요양원의 일상이 잘 나타나 있다. 역설은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아이러니와 구분되면서도 흔히 혼동되고 있는 문학적 장치이다. 이 혼동은 진술이 지시하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서로 상반되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곧 둘 다 모순(矛盾)을 통한 진리의 발견에 기여하여 서로 상반되는 것을 내포한다. 이 모순이 현대시의 미적가치이며 진리가 숨어 있다.
위 시에서 “비명과 함께 뒤돌아보는/ 천사의 얼굴에는/ 부처님 모습이 보인다”, “눈 깜짝할 사이 조폭이 되어/ 천사의 얼굴 후려친다”, “얼굴에 멋진 훈장 새기고/ 활짝 웃고 있는 천사들”이 바로 그것이다.

〈8〉

일상의 늪에 시달려 머리가 복잡할 때는 가벼운 산책, 가벼운 운동, 가벼운 노래를 하고 싶어진다. 시를 선택하는 사람도 가벼운 시를 가볍게 읽으며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머리를 압박하지 않고 가볍게 스쳐 가는 시. 그런 시가 심정숙 시인의 「거꾸로 가는 시간 여행」이다.
심정숙 시인은 생의 전반기를 지나 그 뜨거웠던 가슴들이 시(詩)의 향기 속에서 소리 없는 내밀한 어조로 소외되었던 자아를 그려 가고 있다.
헝클어지고 정제되지 않았던 내면의 공간에서 숨 가쁘게 살아온 지난 세월 속에서 속울음으로 인내해 왔다. 그 속울음을 시의 공간으로 이끌어내어 자기만의 어조로 나타냈다. 그가 꿈꾸었던 보랏빛 하늘과 내달리고 싶었던 욕망의 탈출구가 있었다. 그 탈출구는 운명을 감내해야 했던 절박한 현실의 세계가 너무 슬펐기 때문에 조건 없이 승부하는 현명한 지혜를 얻게 되었다. 감사하며,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일이다. 감사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하고, 바다를 보며 용서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기쁜 일이면, 그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시(詩) 안에 감사한 삶이 들어오면 우리는 아름다운 것이 되어 읽는 것이다.

2025년 4월

목차

◪ 시집을 내면서 _ 3


제1부 나의 삶

11 - 내 이름은 정숙이
12 - 대표 기도
13 - 기도
15 - 마음밭
16 - 용서
17 - 새해 기도
18 - 세상에 빛이 없다면
19 - 나의 삶
21 - 거꾸로 사는 삶
22 - 마음 항아리
23 - 삶이란
24 - 남편
25 - 관계
27 - 사랑
28 - 사랑하는 딸 수경이 보아라
29 - 사랑하는 강 서방 보게나
30 - 거꾸로 가는 시간 여행
33 - 꿈

제2부 시낭송

37 - 입학식
38 - 학생증
39 - 현장 학습
41 - 짝사랑
42 - 체육대회
43 - 도전
45 - 미술시간
46 - 연필과 지우개
47 - 가을 소풍
48 - 전교 회장 선거
49 - 라인댄스
51 - 농구
52 - 줄다리기
53 - 남이섬
55 - 보물찾기
56 - 시낭송
57 - 팝송
58 - 졸업장

제3부 아름다운 동행

61 - 아름다운 동행
62 - 간이역(簡易驛)
63 - 가는 길
65 - 거울
66 - 개떡
67 - 새색시
68 - 조폭
69 - 홈런이다, 홈런
70 - 홧병
71 - 뻥과자
73 - 로봇이 서빙하다
74 - 파도는 만능 재주꾼
75 - 임플란트
76 - 긁지 않은 복권
77 - 소주병
79 - 월급통장

제4부 사계절

83 - 사계절
84 - 봄[春]
85 - 벚나무
86 - 벚꽃ㆍ1
87 - 벚꽃ㆍ2
89 - 산딸기
90 - 팬지꽃
91 - 가을[秋]
92 - 밤나무
93 - 단풍 구경
95 - 설악산
96 - 정류장
97 - 찻집에서
98 - 친구(親舊)ㆍ1
99 - 친구(親舊)ㆍ2
101 - 코로나19

◪ 작품해설/홍승룡(대전 CBS 「이 밤에 생각나는 시」 담당자) _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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