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전쟁, 운명이 교차하는 대서사시에서
‘인간다움’을 다시 묻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서양 문학의 가장 오래된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로, 광활한 전장을 배경으로 신과 인간, 영웅들의 운명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웅장한 대서사시이다. 그리고 이 한편의 고대 서사시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운명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10년간 이어진 트로이아 전쟁에서 단 50일간의 이야기만 담았지만, 그 안에는 분노와 명예, 사랑과 슬픔, 전쟁의 참혹함과 영웅들의 용맹함, 신들의 개입과 인간의 숙명 등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주제들이 녹아 있다.
올림포스 신들의 개입이라는 신화적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영웅들의 활약상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상과 가치관을 생생하게 보여주지만, 결국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성찰의 여지를 준다. 『일리아스』가 그저 전쟁터에서 분노하고 싸우고 암투하는 식의 ‘전쟁기’가 아니라, 서양 문명 전체를 해석하는 철학적인 텍스트이자,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3,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읽히고 해석되고 적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분노와 사랑, 증오와 용서가 뒤얽히며
수천 년 문학과 드라마의 심장이 되다
『일리아스』는 단순한 고대 전쟁사가 아닌, 인간 감정의 극한을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 10년째, 아카이오스군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한 개인의 자존심이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과 고귀한 아킬레우스의 다툼으로 시작된 일리아스는 영웅들의 분노와 명예,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신들의 개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격렬한 서사 속에서 인간의 강렬한 감정, 가족애와 헌신, 권력자의 오만과 그로 인한 재앙, 그리고 복수와 연민의 드라마를 통해 인간 본성의 깊이를 탐구한다. 일리아스는 개인의 분노가 초래하는 파괴적인 결과, 운명과 신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조건 그리고 갈등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화해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울림을 준다.
몇몇 핵심 장면을 살펴보자.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서로 다투고 갈라서는 모습은 조직 내 권력 다툼과 불화를 연상시킨다. 자신의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좌절감과 다르지 않다.
아가멤논의 탐욕과 오만은 영웅들의 불화를 야기하고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다. 이는 권력자의 그릇된 판단이 공동체에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 경고하며, 현대 사회의 리더십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이별 장면은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빛나는 가족애와 헌신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두고 전쟁터로 향하는 헥토르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하여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선사한다.
또한,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훼손하는 복수 행위는 증오의 깊이와 용서의 어려움을 보여주지만, 결국 프리아모스의 간청을 받아들여 시신을 돌려주는 장면에서는 인간적인 연민과 화해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일리아스』는 인간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시대를 초월하는 깊은 공감과 성찰을 이끌어낸다.
본문 곳곳에서는 『일리아스』의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은빛 활을 지닌” 아폴론의 화살이 그리스군 진영에 재앙을 퍼뜨리는 모습, 아가멤논의 엄명에 따라 브리세이스를 데리러 가는 전령들의 모습, 꿈의 신 오네이로스를 통해 아가멤논에게 계략을 속삭이는 제우스, 빛나는 투구의 헥토르가 아카이오스 군에 연설하는 장면, 판다로스의 화살에 메넬라오스가 부상당하는 위기의 순간, 전차를 타고 질주하며 용맹을 떨치는 디오메데스의 모습, 거대한 돌을 던져 아이네이아스를 공격하는 디오메데스, 사랑하는 오빠 아레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아프로디테,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가슴 아픈 작별, 신들의 격렬한 싸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운명을 건 마지막 결투 등, 끊임없이 독자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강렬한 순간들로 가득하다. 특히, 영웅들의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 창과 방패가 격돌하는 굉음, 전장의 함성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독자들은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 있는 듯한 압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103장의 생생한 명화와 이미지, 풍성한 해설 및 각주로
입체적으로 읽는, 이 시대 독자들을 위한 인생 고전
현대지성 클래식의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은 원문 고대 그리스어 시(詩)의 운율과 문체, 순서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한국 독자들이 몰입하여 읽을 수 있도록 섬세하게 번역하고 다듬었다. 고대 서사시 특유의 웅장함과 섬세한 감정선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독자들에게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감상하는 듯한 생생한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다. 103장의 생생한 명화와 이미지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435개의 각주는 낯선 지명, 인물, 신화적 배경, 고대 그리스의 풍습 등에 대한 궁금증을 즉시 해소한다. 또한, 트로이아 전쟁에 얽힌 영웅들의 복잡한 계보와 신들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하여 독자들이 방대한 서사를 더욱 쉽고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했다. 특히,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이 일어난 지 10년째 되는 해의 사건을 담아냈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없이는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트로이아 전쟁의 원인과 초기 전개 과정을 12장의 명화와 함께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이 대작에 도전하는 누구나 쉽게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완역본은 『일리아스』를 처음 접하는 독자뿐만 아니라, 이미 이 작품을 읽었던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통찰과 깊이 있는 독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 인생 고전을 통해 서양 문학의 근원을 탐색하고, 인간 존재의 영원한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