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사이의 빛』 - 최정옥 시집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어버렸지.”
- 「검단산」 중
3년의 시간을 한강변에 흘려보낸 끝에,
최정옥 시인이 건져 올린 ‘말보다 먼저 도착한 빛’의 기록
시집 『틈사이의 빛』은 시인 최정옥이 지난 3년간 한강변을 걷고, 멈추고, 응시하며 포착한 빛과 감정의 기록이다. 매일의 산책길에서 채집한 백여 장의 사진과 함께한 이 시집은, 자연이 남긴 잔상과 인간의 내면 사이에 놓인 미세한 진동들을 포착하고 있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어떤 거창한 서사의 완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보다 먼저 다가온 풍경의 울림, 멈춰 선 몸의 감각,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의 흔들림을 조용히 응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게 시인은 피지 못한 꽃의 여름을 통과하고, 노을 아래 떨구어진 눈물을 지나, 마침내 ‘고요한 사유의 강기슭’에 이르른다.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내 가슴 언저리에 맺히는 저녁”
『틈사이의 빛』은 세 개의 계절, 수백 번의 걸음, 그리고 그만큼의 고요를 통해 도달한 언어의 강이다. 사진과 시는 이 책 안에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진은 시의 출발점이 되고, 시는 사진이 미처 말하지 못한 내면의 울림을 감싸 안는다.
최정옥 시인의 언어는 과장되지 않고 단정하다. 그러나 단정함 속에서 결코 단순하지 않은 감정의 결을 따라가게 만든다. “너를 차마 어떻게 보내지”라며 말끝을 흐리고, 에서 “불덩이 하나 내 마음에 던져놓고”라고 고백하는 문장들 속엔, 말해지지 않은 수많은 시간과 고요한 상처가 들어 있다.
“햇빛과 결합하고 싶다.”
이 시집에서 빛은 단지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어느 순간과 만나는 방식이고, 누군가를 다시 떠올리는 일이며, 지금 여기의 마음이 어떤 파장을 지녔는지를 알아차리는 행위다.
빛은 항상 틈으로 들어오기에, 이 시집은 삶의 균열 속에서 피어난 말들이며,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풍경을 다시 보게 하는 슬픔이자 희망이다.
『틈사이의 빛』은 단지 시를 읽는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빛을 따라 걷고, 어떤 단어로 침묵을 응시했는지를 따라 걷는 사유의 산책이 된다.
최정옥 시인이 걸어온 한강의 시간 위로, 이제 독자의 걸음이 겹쳐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