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사상가들의
철학과 삶의 궤적을 따라
그 우정론의 총체를 살피는 비판적 사유의 여정
이 책이 말하는 우정은 자유이자 평등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며 자치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우정이다. 따라서 우정에는 필연적으로 억압과 불평등에 함께 대항하고 투쟁하는 일이 수반된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 따라 각 시대별 사상가들의 우정론을 비판적으로 살핀다.
이 책은 근대 이전의 우정론을 다루는 1부와 근대 이후의 우정론을 다루는 2부로 크게 나뉜다. 따라서 고대 유교와 불교, 장자, 묵자의 우정론에 이어 조선 전기의 유교적 우정관으로 나타나는 동양의 우정관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의 우정론이 1부의 내용에 해당한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와 스토아학파의 우정론과 오늘날 우정에 대한 대표적인 책으로 여겨지는 『우정에 관하여』에 담긴 키케로의 우정관, 16세기에 쓰인 마테오리치 『교우론』의 의미와 그 반향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2부에서는 몽테뉴와 루소, 레싱, 칸트 등 근대 철학자들의 우정론을 살핀다. 젊은 날 라 보에시와 나눈 우정은 몽테뉴의 전 생애와 철학에 크고 깊은 영향을 미쳤다. 또 오늘날 박애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소는 “어떤 비밀도 없이, 모든 문제에 대해 동의하는 관계”를 우정의 본질로 보았는데, 그런 그의 우정론이 만든 전체주의 세상이 바로 프랑스혁명이었다고 이 책은 분석한다. 한편 평생 철두철미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유명한 칸트는 『에밀』을 읽다가 산책 시간을 놓쳤을 정도로 루소에게 빠져 있었다. 그런 그의 우정론은 루소의 우정론과 어떤 점에서 유사하고 다른지도 이 책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동서양의 우정론을 고루 살피는 이 책은 박지원과 정약용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의 우정론을 살피고, 중국의 사회개혁가 담사동의 우정론도 살핀다. 또한 오늘날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우정론도 살핀다. 그들에 대한 또 다른 견해를 접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한다. 끝으로는 앞서 살펴본 우정론들을 요약하고 이제 올 새로운 우정 공동체를 전망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리하여 두려움 따위 없는 세상으로,
모두가 친구가 되는 세상으로 가자!
어쩌면 저자로 하여금 우정이라는 주제를 고심하게 한 것은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평생을 두려워하며 살았던 것 같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교원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갑 차고 경찰서 유치장에 끌려가는 아버지를 보며 울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수십 년 뒤 어른이 된 자신도 그날의 아버지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 당시 신문에 쓴 손바닥만 한 칼럼 하나로 제자뻘 되는 검사에게 열 시간씩 취조를 당했는데, 감히 죽음을 생각할 만큼 두렵고 수치스러웠노라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자신에게는 부모도, 선생도, 이웃도, 친구도, 공권력까지도 모두 두려운 존재일 뿐이었다고 말하는 저자가 자신만은 아무도 두렵게 하지 않고, 모두의 친구로서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며 살고 싶다고 바라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다.
이 책이 말하는 친구란 “단순히 친한 사이가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로 맺어진 공동의 상대”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친구가 몇이나 있는가? 아니, 이런 친구가 있기나 한가? 우리 사회는 이러한 우정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인가? 온갖 정치적 갈등과 반목, 대립으로 수십 갈래로 쪼개져버린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 아니냐는 것이다. 저자는 이 세상의 모든 덫을 깨뜨리자 촉구하며 세계주의적 평등을 상상한 담사동의 이상에 공감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다.
“모두가 친구가 되는 우정의 세상을 만듭시다. 평등·자유·자치의 우정이 꽃피는 세상을 만듭시다! 그런 우정을 막는 모든 껍데기는 가라! 그것이 사상이든, 종교든, 이데올로기든 뭐든 없어져라! 세상에 오로지 우정의 강물만이 도도히 흐르게 하라! 내 주변, 내 마을, 내 나라만이 아니라, 온 세상과 세계를 친구의 땅으로 만듭시다! 세상 모든 가난하고 차별받는 사람들,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등의 친구가 됩시다! 나라나 민족을 따지지 말고 인류애로 친구가 되는 세상을 꿈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