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2월 16일 새벽 5시 반경, 이대식은 험상궂게 생긴 중년의 두 남자에게 체포되어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는 1972년 7월 15일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1972년 겨울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며, 1990년 3·1절 특사로 가석방되었다. 19년만의 출소였다.
2012년 5월 6일 아침 7시경 그는 다시 시경 수사관에 체포되어 옥인동 보안수사대로 끌려갔고 이2016년 3월 23일 대법원에서 GPS 간첩사건에 대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대식은 2016년 재심 청구를 했다. 원심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수많은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대식은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것이다. 재심재판부는 원심재판부에서 인정한 11개 항목의 공소사실 중 8개 항목은 무죄로 선고하고, 3개 항목은 유죄로 인정했다. 이대식은 재심 판결에서 최종적으로 3년 형이 확정되었다.
재심 판결은 이대식의 삶을 평생 무자비하게 유린한 폭력으로부터 이대식을 완전히 해방시켜 준 것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한국판 매카시즘은 또다시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를 무자비하게 유린할 것이기 때문이다. ‘빨갱이,’ ‘종북주의자,’ ‘국가전복세력’ 등과 같은 온갖 악담을 동원해서 격렬하게 매도할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에서 해방 전후사를 서술한 부분, 특히 당시 이승만과 미국이 수행한 정치적 역할을 비판한 부분, 10년 넘게 대북 사업을 수행하면서 북한을 새롭게 성찰한 부분, 특히 북한이라는 ‘악마’의 이미지를 자각적으로 탈각하는 과정을 서술한 부분 등을 읽으면서 견딜 수 없는 전율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를 당장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강변할 것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권리로 이대식의 삶을 그토록 처절하게 유린할 수 있었는가? 도대체 누가 그들에게 이대식의 삶 전체를 그토록 잔혹하게 파괴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는가? 도대체 어떻게 이대식의 사형선고를 강제한 망상적 간첩조작이 태연하게 정당화될 수 있었는가? 도대체 한국사회에 깊이깊이 뿌리 내린 무자비한 폭력성은 어디에서 어떻게 연유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