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실정법을 품고 이성에 따른 영원불변한 보편법으로
키케로의 자연법을 기초로 하는 철학적 입장에 따르면 세상 모든 법률이 제정되기 이전에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자연적인 본성, 즉 이성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바로 이 이성에서 도출되는 규범이 ‘최고의 법률(lex summa)’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실정법, 즉 ‘법률(lex)’은 특정한 사람들의 관습이나 신념에 따라 제정되곤 한다. 키케로는 이 간극에 주목한다. 법률의 준수가 곧 이성과 정의로움을 따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사람들은 처벌에 대한 공포가 있어야만 법률을 따르고, 어겨서 이익이 된다면 법률을 쉽사리 어길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는 강고한 법치주의적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키케로는 자신의 자연법 사상을 《12표법》 등 수백 년간 로마에서 시행되던 법률과 제도들을 통해 전개한다. 일부는 『법률론』에서만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키케로의 법학 지식은 실로 압도적이다. 그러나 그의 지성이 더욱 빛나는 지점은 수많은 조항에 하나하나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데 있다. 바로 그 순간 로마의 실정법들이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법(ius)’으로 거듭난다.
“인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률이 되게 하라(Salus populi suprema lex esto)”
지금 키케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
법의 정당성이 무너지면 아무도 법률을 지키지 않고, 때론 심지어 법률 자체가 타락하여 악법이 제정되기도 한다. 이렇듯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살얼음 위를 걷는다. 존중하고 살피지 않으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상식적인 이야기가 상식이 되게끔 보편법의 주춧돌을 놓은 것이 키케로의 공적이다. 천상을 향하는 희랍의 자연법 사상과 대지에 뿌리내린 로마의 현실법이 두 재료가 되었다. 비록 그의 바람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고, 로마는 공화정을 버리고 제정을 선택했지만,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더라도 같은 법의 근원은 공유한다는 이념 아래 재구성된 로마법은 로마를 지중해 세계를 아우르는 다문화 국가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홉스, 로크, 스피노자의 자연권 사상, 나폴레옹 법전의 ‘법 앞에 평등’, 결국 유럽 각국의 법전 편찬으로 결실을 맺었고, 오늘날 많은 나라의 법전에 여전히 아로새겨져 있다.
이 책의 번역을 맡은 성중모 교수(서울시립대학교)는 2000년 전 로마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닮아 있다고 말한다. 언제나 민주주의, 법치주의가 사회의 지향점이지만 그때도 그것을 전복하려는 선전선동이 있었고, 지금도 정쟁, 쿠데타, 내전의 위협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키케로가 로마의 ‘애국 시민들(boni)’을 향하여 독재 정치로 기우는 상황에 맞서 공화정 재건에 나서기를 촉구했던 것처럼, 법치와 정의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동료 시민들과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모두를 위한 이상적인 공동체는 이성을 지닌 시민들의 법공동체 구축으로만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률론』에서 키케로의 제안이 우리의 이성을 깨우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