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벤치에서 만난 낯선 두 개인의 대화로 이뤄진 소설
총3장으로 구성된 이 이야기의 배경은 “버찌가 시장에 나오기 두 달 전”, 즉 봄 무렵의 어느 동네 공원이다. 공원 벤치에 우연히 함께 앉게 된 여자와 남자, 처음 만난 이 두 사람은 여자가 돌보는 아이를 기회삼아 대화의 물꼬를 튼다. 아이는 놀다가 여자에게 와서는 각 장의 시작에서 (1장에서는 “배고파”, 2장에서는 “목말라”, 3장에서는 “피곤해”라고) 딱 한마디씩 말할 뿐, 대부분은 둘의 대화로 이뤄진다. 여자는 주인집에서 보모 일에 식사 시중에 과체중의 노인까지 씻기고 돌보며 저녁 늦게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자기 것이라고는 하나 없이 예속되어 있는 불행한 처지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함께 삶을 꾸려나갈 결혼 상대를 찾아 댄스 클럽에 나가는 게 유일한 탈출구라고 여기는, 전심전력을 다해 희망과 변화를 이야기하는 스무 살의 가정부다. 남자는 집도 없이 홀몸으로 상품 가방 하나 들고 갖가지 잡동사니를 팔러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고 있고, 지난날 겪은 많은 불행으로 앞날에 대한 계획이나 사람에 대한 기대 없이 일상의 작디작은 조촐한 것에 만족하며 단조롭게 사는 중년의 행상이다.
자신들이 “밑바닥 중의 밑바닥”이라고 말하는, 상처받기 쉬운 취약한 처지의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지극한 존대로 이해 불능과 소통 가능 사이를 오가며, 드문드문 대화의 긴장과 단절을 유발한다. 그런 대화는 때로 어긋나기도 하고 각자의 말에 내던져져 침묵 속으로 가라앉기도 하지만, 불가능할 법한 이 우연의 만남 속에서 차츰차츰 둘은 서로의 토대에 가닿는 진실로 향해 나아간다. 먹고사는 문제, 노동과 직업에 대한 생각, 누군가와의 소통에 대한 간절한 갈망, 날씨와 여행, 벗어남과 떠남, 더이상 살고 싶지 않던 날의 기억과 행복에 대한 상념, 고통스러운 희망과 비겁한 체념 등 대화는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아이의 발화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피곤한’ 그들 인간 존재에게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떠올리게 하는 절박한 주문이나 다름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건네는 고독한 말 속에서, 서로에 대한 염려와 못본 체할 수 없는 걱정 속에서, 미약하지만 하나의 약속이, 근원적인 유대가 싹튼다. 저녁이 오고 공원 문이 닫힐 무렵, 그들의 대화가 피곤해하는 아이의 채근으로 끝나갈 무렵, 어쩌면 훗날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불가능해 보이던 미래도 언뜻 비친다.
주류 사회와 단절된 자들, 공동의 보편성에서 소외된 자들의 소통
뒤라스는 한 인터뷰에서, 두 남녀의 만남에서 흔히 기대하게 되는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욕구이론’에 대한 접근으로 이 글을 썼다고 밝혔다. 프랑스공산당 활동 당시 정치적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디오니스 마스콜로의 『공산주의』(1953)에 등장하는 이 ‘욕구이론’은, 기본적인 물질적 토대인 의식주 말고도 인간의 또다른 기본 조건인 소통에 대한 욕구, 나아가 “무언가를 욕구할 수 있는 인간임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것이 남자가 말하는 “발산할 만한 데를 찾지 못하면 괴로운” 고통스러운 희망일지라도, 그저 “무엇에 대한 것도 아닌 희망, 희망을 향한 희망”일지라도 말이다.
뒤라스는 이 작품을 쓸 때 “공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침묵에 귀기울이면서 썼다”고도 말한 바 있다. 보편적으로 누구나 했을 법한 삶의 고민을 쉬운 입말로 풀어놓고 있으나, 그 보편성-공통의 운명은 가장 낮은 바닥을 울리는 두 사람의 민감한 목소리 속에서 더 근원적인 뿌리를 건드린다. 남들처럼 살고 싶어도 남들만큼 살 수 없는 “방치된 사람들”, 기본적인 삶의 안녕부터 돌봐야 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나눌 상대를 만난다는 건 그래서 절실해 보인다. 블랑쇼가 말하듯, “동일한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전혀 다른 이유에서 그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는 감각, 그것이 그들을 함께 있게 하고 말하게 한다. 저녁 늦게까지 불빛이 있고 “손님이 가득하고 음악이 흐르는 카페”로, 그런 데가 없었다면 외로워서 못 살았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우연찮게 주어진 이 만남의 기회에서,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무작정 가까워졌다 공손히 멀어진다. 뒤라스에게 광장(공원)은 사회 변혁이나 계급에 대한 정치적 각성으로 모여드는 ‘영웅’들의 집회소가 아니라, “살아남는 것, 굶어죽지 않는 것, 매일 저녁 지붕 있는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고 “가스오븐 갖는 게 꿈인” 자들의 일시적 마주침의 장소다. 고향을 잃고 떠나온 난민이나 이민자처럼 “사망증명서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보지 못한 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걸어들어가는 곳, 거기서 어쩌다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말 상대를 발견하기도 하는 곳. 두 사람의 목마른 언어가 그리는 보편의 여운, 공통의 풍경이 지닌 진의는 이 작품을 발표하고 긴 세월이 지나 ‘1989년 겨울’에 달아둔 작가의 메모에서도 잘 확인된다.
-추천사
20세기 가장 강력한 작가 중 하나. 뒤라스의 작품이 자기소외와 밀접하게 연관된 욕구의 진행형 연구가 아니라면 또 무엇이겠는가? _비비언 고닉
이 낮은 세계, 기본적 욕구의 세계에서, 말은 필수적인 것에 열중하고, 필수적인 것만 지향한다. _모리스 블랑쇼
때로는 땅에, 때로는 공간 속에 자리한, 목소리와 음색으로 지은 작은 모래성. 압도적인 감동을 안긴다. 경이롭다. _사뮈엘 베케트
뒤라스를 세상에서 역할을 지닌 한 개인으로 자리매김시킨 건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었고, 그녀에게 뒤라스라는 이름을 갖게 한 것도 글쓰기였다. _로르 아들레르
뒤라스의 문장은 독자들 마음속에 서서히 깃들다가 느낌과 생각의 융합으로 힘껏 폭발한다. _뉴욕 타임스 북 리뷰
뒤라스의 언어와 글쓰기는 크리스털처럼 빛난다. _뉴요커